울 엄마 이야기(11) - 청년가장 아버지의 자랑이자 힘의 원천

박기철 승인 2021.01.24 14:00 | 최종 수정 2021.01.24 14:12 의견 0

아버지가 서울고등학교 3학년일 때, 엄마가 창덕여고 3학년일 때 두 분은 청파동에서 운명적 만남을 했다. 그리고 졸업 후에도 저렇게 사이좋게 길거리를 다녔으니 천생연분임을 서로 아셨던 것 같다.

이 사진을 찍은 것이 어떠한 상황이었는지 아버지께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드리고 전화로 아버지께 여쭈었다. 60여 년 전의 사진인데도 아버지는 정확하게 알고 계셨다. 아버지는 청파동으로부터 큰 행길 건너에 있는 남산 밑 후암동 친구들을 만나러 자주 갔다고 하셨다. 용산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하신다. 몇년 전 타계하신 용태 아저씨도 용산고 친구이셨다. 아버지는 용산고 친구들과 ‘바인’이라고 하는 모임을 조직하시며 회장까지 하셨다고 한다. 우정을 돋우는 친구 모임치고는 이름이 멋지다. 바인(vine)은 포도넝쿨이다. 무슨 뜻이냐고 여쭈었더니 포도넝쿨처럼 뻗어나라고 그렇게 지었단다. 아버지는 친구들 모임에 엄마를 가끔 데려 가셨다고 한다.

그 때 후암동 어디에선가 찍은 사진이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조실부모하며 매우 상실하실 시기였을 텐데도 모습이 활기차다. 특히 바바리를 입은 모습이 멋지시다. 마치 영화 카사블랑카 속의 주인공들 같다. 아버지가 저리도 표정이 밝은 이유는 모두 엄마 덕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확실분명하다. 엄마가 아니고서는 도무지 설명이 안 된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생명의 은인과 같은 존재였으리라. 북(北)에서 할아버지 따라 피난 내려와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듬해에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물려받은 유산이라곤 엄마 말씀대로라면 큰 김장 장독 하나였다는데, 참으로 가진 거라곤 아무 것도 없는 신세에, 게다가 어린 네 동생들이 줄줄이 있는 정말로 먹고 살기 힘든 처지에 저런 활기가 나오는 것은 온통 엄마 덕분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도 인정하신다. 특히 저리도 발랄하며 아름다운 여자 친구를 친구들 모임에 데리고 가니 얼마나 뿌듯하고 기분이 좋으셨을까? 아버지의 그런 마음이 아버지의 밝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결국 아버지는 엄마를 만나 기사회생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예쁜 모자를 쓴 엄마 역시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아버지 옆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다. 엄마 덕분에 아버지는 친구들 모임 이름인 포도넝쿨 ‘바인’처럼 뻗어나갈 수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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