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승인
2020.07.21 15:29 | 최종 수정 2020.07.2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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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설(夢說)을 연재하며
현상학에서는 사실의 세계보다 의미의 세계를 더 중시한다. 현실의 세계와 꿈의 세계는 사실의 세계와 의미의 세계로 규정지을 수도 있다. 현실이 사실의 영역이라면 꿈은 의미의 영역인 것이다. 결국 꿈은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또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꿈을 꾼다'라는 표현은 '의미를 품다'와 같은 것이다.
장자는 나비꿈을 꾸고 나서 그 꿈이 너무 선명하여 현실이 꿈인지 꿈이 현실이지 분간이 어렵다고 했다. 확실한 사실의 세계인 - 현실이 아무렇게나 쉽게 꿀 수 있는 꿈의 세계보다 못할 경우가 많다. 꿈만 잘 꾸면 얼마든지 현실의 삶에서 채울 수 없는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당나라 시절 한단이란 곳에 살던 노생이란 사람은 꿈에서 한 평생 얻어야 하는 성공과 실패, 부귀공명과 역경을 다 겪고서 그것을 교훈 삼아 인생을 다시 한 번 더 산 것처럼 산 유명한 고사가 있다.
꿈은 첨단과학의 시뮬레이션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전쟁을 하지 않고도 실제와 같은 상황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것처럼 확실치 않은 의식이나 정신세계를 현실화해서 보여준다. 그것을 계시라고 할 수 있다. 계시는 자신이 꿈을 이용해서 만드는 것이다. 영웅이나 큰일을 한 사람들은 대개 그런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 계시를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꿈의 활용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설이 현실의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 또는 문(門 )같은 역할을 한다면 꿈은 소설의 열쇠와 문이다. 사실 ‘현실-소설-꿈’ ‘소설-현실-꿈’ ‘꿈-소설-현실’은 분리가 어려운 관계이다. 꿈 이야기를 짧은 소설처럼 쓰고자 한다. 그래서 몽설(夢說)이라 명명했다. 꿈이야기(몽설)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을 보는 현실의 창(窓)이 되었으면 한다.
하의실종
모두 어디로 갔지?
여관에서 내가 선잠 든 사이에 일행들 모두가 없어졌다.
디 좋은 술집으로 갔을 것 같은데...
자는 나를 깨우지 않음이 괘심하다.
고개 너머 어디쯤 뒤쫓아 찾아갈 일이 막막하다.
일행을 찾아 나서기 위해 이불을 걷어차니
아랫도리가 허전하다.
아뿔싸...
누가 내 팬티를 입고 가버렸다.
나는 다시 이불을 덮고 곰곰이 생각해 본다.
누가 내 팬티를 입고 갔는지...
<그림=정응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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