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명호의 몽설(夢說) - 기차를 따라가다
박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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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2 16:03 | 최종 수정 2020.07.2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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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설(夢說)을 연재하며
현상학에서는 사실의 세계보다 의미의 세계를 더 중시한다. 현실의 세계와 꿈의 세계는 사실의 세계와 의미의 세계로 규정지을 수도 있다. 현실이 사실의 영역이라면 꿈은 의미의 영역인 것이다. 결국 꿈은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또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꿈을 꾼다'라는 표현은 '의미를 품다'와 같은 것이다.
장자는 나비꿈을 꾸고 나서 그 꿈이 너무 선명하여 현실이 꿈인지 꿈이 현실이지 분간이 어렵다고 했다. 확실한 사실의 세계인 - 현실이 아무렇게나 쉽게 꿀 수 있는 꿈의 세계보다 못할 경우가 많다. 꿈만 잘 꾸면 얼마든지 현실의 삶에서 채울 수 없는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당나라 시절 한단이란 곳에 살던 노생이란 사람은 꿈에서 한 평생 얻어야 하는 성공과 실패, 부귀공명과 역경을 다 겪고서 그것을 교훈 삼아 인생을 다시 한 번 더 산 것처럼 산 유명한 고사가 있다.
꿈은 첨단과학의 시뮬레이션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전쟁을 하지 않고도 실제와 같은 상황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것처럼 확실치 않은 의식이나 정신세계를 현실화해서 보여준다. 그것을 계시라고 할 수 있다. 계시는 자신이 꿈을 이용해서 만드는 것이다. 영웅이나 큰일을 한 사람들은 대개 그런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 계시를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꿈의 활용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설이 현실의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 또는 문(門 )같은 역할을 한다면 꿈은 소설의 열쇠와 문이다. 사실 ‘현실-소설-꿈’ ‘소설-현실-꿈’ ‘꿈-소설-현실’은 분리가 어려운 관계이다. 꿈 이야기를 짧은 소설처럼 쓰고자 한다. 그래서 몽설(夢說)이라 명명했다. 꿈이야기(몽설)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을 보는 현실의 창(窓)이 되었으면 한다.
기차를 따라가다
기차가 복잡한 역에 도착했다.
나는 무슨 이유인지 기차에 내려 있다.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내 자리를 찾아 기차를 타야 했다.
옆자리에 같이 온 남녀도 기차에서 내려 다정히 앉아 있다.
그들은 그곳이 목적지란다.
나는 내가 탔던 열차 칸 자리를 찾아간다.
너무 복잡하여 쉽게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기차가 떠나려 한다.
어디를 가는 기차냐? 물으니 '북악'이라고 한다.
북악이 어딘지 잘 알 수 없다.
일단 기차에서 다시 내렸다.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니 나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라탈 수도 안 탈 수도 없는 엉거주춤한 자세이다.
그러는 사이 기차는 떠난다.
그제야 타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 기차를 향해 뛰어간다.
기차는 빠르게 간다.
느리게 가는 것 같지만 내 뜀박질보다 빠르다.
<그림 = 정응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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