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명호의 몽설(夢說) - 낯선 집에서 하룻밤
박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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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4 18:13 | 최종 수정 2020.07.24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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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설(夢說)을 연재하며
현상학에서는 사실의 세계보다 의미의 세계를 더 중시한다. 현실의 세계와 꿈의 세계는 사실의 세계와 의미의 세계로 규정지을 수도 있다. 현실이 사실의 영역이라면 꿈은 의미의 영역인 것이다. 결국 꿈은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또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꿈을 꾼다'라는 표현은 '의미를 품다'와 같은 것이다.
장자는 나비꿈을 꾸고 나서 그 꿈이 너무 선명하여 현실이 꿈인지 꿈이 현실이지 분간이 어렵다고 했다. 확실한 사실의 세계인 - 현실이 아무렇게나 쉽게 꿀 수 있는 꿈의 세계보다 못할 경우가 많다. 꿈만 잘 꾸면 얼마든지 현실의 삶에서 채울 수 없는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당나라 시절 한단이란 곳에 살던 노생이란 사람은 꿈에서 한 평생 얻어야 하는 성공과 실패, 부귀공명과 역경을 다 겪고서 그것을 교훈 삼아 인생을 다시 한 번 더 산 것처럼 산 유명한 고사가 있다.
꿈은 첨단과학의 시뮬레이션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전쟁을 하지 않고도 실제와 같은 상황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것처럼 확실치 않은 의식이나 정신세계를 현실화해서 보여준다. 그것을 계시라고 할 수 있다. 계시는 자신이 꿈을 이용해서 만드는 것이다. 영웅이나 큰일을 한 사람들은 대개 그런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 계시를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꿈의 활용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설이 현실의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 또는 문(門 )같은 역할을 한다면 꿈은 소설의 열쇠와 문이다. 사실 ‘현실-소설-꿈’ ‘소설-현실-꿈’ ‘꿈-소설-현실’은 분리가 어려운 관계이다. 꿈 이야기를 짧은 소설처럼 쓰고자 한다. 그래서 몽설(夢說)이라 명명했다. 꿈이야기(몽설)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을 보는 현실의 창(窓)이 되었으면 한다.
낯선 집에서 하룻밤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일어나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왔다.
마당에 낯선 여자 둘이 나를 보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그녀들은 분재나무를 옮겨놓고 있었다.
건너 방에서 음악소리가 크게 들린다. 팝송이다.
누가 틀어놓고 깜빡 한 것 같았다.
라디오를 끄고 보니 어떤 남자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고 있었다.
마루로 다시 나오니 그 여자들은 보이지 않고 뒷간 쪽에 염소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있다.
문득 이상했다.
우리 집이 아니었다.
아니 간밤에 어떻게 내가 남의 집에 하룻밤을 자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일단 위기를 피해야 한다.
도망가려니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마루 밑에 게다가 있었다.
반질반질했다.
게다를 신고 소리 나지 않게 조심조심 문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게다 소리는 생각보다 크게 났고 나는 소리를 죽이며 고양이처럼 기어 나왔다.
거리였다.
휴, 한숨을 쉬고 나니 도대체 여기가 어디며 오늘이 며칠인지 알 수 없었다.
저만큼 가게에 소녀들이 있었다.
오늘이 며칠이냐?
7월 5일. 소녀는 또박또박 말을 한다.
여기가 무슨 동네고?
걸레, 소녀는 걸레라고 한다.
참 이상한 이름이네라는 표정으로 옆을 살피니 어떤 아줌마가 올바른 동네 이름을 말해준다.
가게를 벗어나 옆길로 가면서 나는 동네이름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수첩을 끄집어내어 메모하려 한다.
그러나 차들이 쌩쌩 지나쳐 불편했다.
길가로 내려가니 바위가 보였다.
바위 위로 가까스로 올라가니 편한 자리가 있었다.
거기서 급하게 메모하려는데 바위에는 여러 사람들이 앉아 쉬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아주 여유가 있었고, 평화로워 보였다.
<그림 = 정응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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