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명호의 몽설(夢說) - 목욕탕에서

박명호 승인 2020.08.07 15:44 | 최종 수정 2020.08.07 15:51 의견 0
ⓒ정응수

따스한 목욕탕에 턱을 베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있다.
시간이야 가든지 말든지...
물이 가져다 주는 간지러움과 같은 부드러움과 온기를 마음껏 감각하면서
여유를 즐기고 있다.

갑자기 앗차,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 수업을 깜빡한 것이다.
아이들은 선생님 찾다가 없으니 그냥 조용히 자습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비난하며 대체 수업을 하고 있을까?

아무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빨리 학교에 가서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
욕탕을 나와 물기를 닦고 옷장을 열려고 하니
열쇠가 말을 듣지 않는다.

급한 김에 주먹으로도 쳐보지만 별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주먹을 칠 게 아니라 주인에게 인터폰을 치라 한다.
인터폰의 주인은 여자였다.
기술자가 와야 하니 기다리라고 한다.

주인이라도 와서 빨리 고쳐야할 게 아니냐? 내가 목소리를 높인다.
여자이기 때문에 남탕에 갈 수 없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게 급한데 남자, 여자가 무슨 문제가고 나는 목소리를 더 높인다.
여자 주인은 한결 부드럽고 섹시하고 여유로운 목소리로
그래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나는 알몸으로 옷장 앞에서 발만 동동 굴린다.

<그림 = 정응수 작가>

정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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