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명호의 몽설(夢說) - 젊은 자판기

박명호 승인 2020.08.01 16:49 | 최종 수정 2020.08.01 16:59 의견 0

몽설(夢說)을 연재하며

현상학에서는 사실의 세계보다 의미의 세계를 더 중시한다. 현실의 세계와 꿈의 세계는 사실의 세계와 의미의 세계로 규정지을 수도 있다. 현실이 사실의 영역이라면 꿈은 의미의 영역인 것이다. 결국 꿈은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또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꿈을 꾼다'라는 표현은 '의미를 품다'와 같은 것이다.

장자는 나비꿈을 꾸고 나서 그 꿈이 너무 선명하여 현실이 꿈인지 꿈이 현실이지 분간이 어렵다고 했다. 확실한 사실의 세계인 - 현실이 아무렇게나 쉽게 꿀 수 있는 꿈의 세계보다 못할 경우가 많다. 꿈만 잘 꾸면 얼마든지 현실의 삶에서 채울 수 없는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당나라 시절 한단이란 곳에 살던 노생이란 사람은 꿈에서 한 평생 얻어야 하는 성공과 실패, 부귀공명과 역경을 다 겪고서 그것을 교훈 삼아 인생을 다시 한 번 더 산 것처럼 산 유명한 고사가 있다.

꿈은 첨단과학의 시뮬레이션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전쟁을 하지 않고도 실제와 같은 상황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것처럼 확실치 않은 의식이나 정신세계를 현실화해서 보여준다. 그것을 계시라고 할 수 있다. 계시는 자신이 꿈을 이용해서 만드는 것이다. 영웅이나 큰일을 한 사람들은 대개 그런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 계시를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꿈의 활용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설이 현실의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 또는 문(門 )같은 역할을 한다면 꿈은 소설의 열쇠와 문이다. 사실 ‘현실-소설-꿈’ ‘소설-현실-꿈’ ‘꿈-소설-현실’은 분리가 어려운 관계이다. 꿈 이야기를 짧은 소설처럼 쓰고자 한다. 그래서 몽설(夢說)이라 명명했다. 꿈이야기(몽설)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을 보는 현실의 창(窓)이 되었으면 한다.

ⓒ정응수

여행출발 시간이 좀 남아서 역전 광장으로 나왔다.
커피를 뽑아 담배를 피울 요량이었다.
마침 광장 한 쪽에 자판기가 우두커니 서 있다.
동전을 밀어 넣고 버턴을 눌렀다.

가만히 보니 자판기가 아니라 젊은 사내였다.
나는 청년의 귀에 동전을 넣고 남방의 단추를 누른 것이었다.
미안하다고 쓴 웃음을 짓자
청년은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청년의 가슴팍에 열려진 남방 사이로 종이컵이 보인다.
청년은 잘못하다 들킨 듯이 쑥스러워한다.
내가 얼른 끄집어낸다.

따뜻한 커피다.

<그림 = 정응수 작가>

정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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