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창간호-특집 : 쇠의 바다, 경남 김해와 고성】 문학전통 - 현실의 고통을 이겨낼 천국 선물, 아동문학가 심군식에 대하여

최 미 선 | 동화작가문학평론가

장소시학 승인 2022.12.26 14:37 | 최종 수정 2022.12.30 11:53 의견 0

1.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빚어낸 아동문학 세계 

아동문학가이자 종교인 심군식 목사의 신앙 사역 활동은 부산 지역에서, 그리고 기독교 교단(예장 고신)내에서 그 명성이 알려져 있지만, 아동문학 작가로 조명 받은 예는 거의 없다. 이 글에서는 아동문학가 심군식 작가의 동화세계를 알아보기 위해 작가론적 관점으로 그의 일대기를 먼저 살펴 본다.

심군식 목사는 한국 개혁주의협회 회원으로 복음주의 목회를 실천하였고, 1978년부터 시작된 통일 찬송가 작업에도 참여하여 현재 사용하고 있는 통일 찬송가가 만들어지는데 기여하였다. 
그의 목회 활동 중 부산 용호동의 음성나환자촌 교회 사역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칭송받는 일 중의 하나다. 그리고 또 하나 1978년부터 한국교회 초교파적으로 시작된 찬송가 통일작업에 참여한 업적이다. 찬송가 통일작업은 ‘새찬송’, ‘개편찬송’, ‘합동찬송’을 하나로 만드는 일로, 그 때까지 각 교단(교파)별로 각기 다른 찬송가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초교단적으로 합의하여 하나의 찬송가를 편찬하는 작업이었다. 

심군식 목사는 찬송가 가사분과위원장을 맡아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찬송가 통일 작업을 했다. 여기에는 김정준 박사, 박봉배 박사와 같은 한국의 대표적 목회자가 함께 하였지만 심 목사는 아동문학 작가라는 직책 덕으로 분과위원장을 맡게 된다. 그는 매주 수요 예배를 마치고 부산에서 밤 열차로 상경하여 새벽에 기독교서회 사무실에 도착해, 업무를 해 나갔다.

고신대학교 명예문학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조카들과 함께,2000년 2월
고신대학교 명예문학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조카들과 함께, 2000년 2월

심군식은 1933년 8월 1일 경남 고성군 회화면 배둔리 449번지에서 부친 심경수 씨와 모친 유일남 씨 사이에서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회화초등(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진영 한울중학교를 거쳐 1955년 동아대학교 정경학과에 입학했으나 진로를 바꾸게 된다. 일반대학에서 신학교로 전환이다. 그의 가족 대부분이 기독교 신앙을 가졌던 배경을 고려해 볼 때 신학교로 전환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심군식은 1965년 12월 부산 칼빈대학 신학과를 졸업하고 1968년 12월 부산 고려신학대학원(고려신학교 본과, 현 고신대학 전신)을 졸업하게 된다. 신학교 졸업 이후 본격적인 목회자로서의 삶을 살게 되고 기독교 교단의 중직(총무, 총회장, 기독교보 편집국장)까지 맡아 교회 일치와 연합을 위해 헌신한다.

동화집으로 『잃어버린 왕자』(1970), 『바이얼린 할아버지』(1975), 『웃음을 찾은 마을』(1978), 『솜사탕 장수 할아버지』(1981), 『조랑말 수레』(1985), 『꼬마 손님의 선물』(1992), 『소년과 꿀벌 붕붕』(1993) 등이 있고, 단편으로 「바이얼린 할아버지」, 「엿장수 선생님」, 「할머니의 소망」, 「진달래 시에서 온 소년」, 「행복한 할아버지」, 「난장이 아저씨」 등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동요집 《하늘과 땅에도》 등을 비롯 동화와 어린이를 위한 책 56권을 남겼다. 목회자이자 신앙인, 기독교적 그의 세계관은 심군식의 동화 대부분이 박애, 봉사, 헌신, 사랑으로 주제화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2. 가난했던 시기, 다독의 시간 

심군식은 고성군 회화초등학교에 입학에서 6학년 되던 해 8월 15일 광복을 맞았다. 그때까지 한글은 몰랐고, 일본 말과 글에만 능했다. 초등(국민)학교를 졸업했지만, 중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되지 않아 산에 나무하러 다녀야 했다. 그때 우연히 김해 한얼중학교 입학 요강을 보게 된다. 수업료가 저렴하고, 학교에 기숙사도 있다고 하여 입학 시험에 응시했는데, 합격이 되어 진영으로 가게 된다. 한얼중학교는 농촌계몽가 강성갑 목사가부임해 1947년 이후 교장을 역임했다.*  
   
한얼중학교는 방학도 없는 학교였다. 학생들이 흙을 이겨 벽돌을 굽고, 학교를 만들어가는 정도였다. 대학생들이 방학 때에 서울에서 내려와 봉사활동을 했는데,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한신대 학생들이었다. 대학생들이 봉사활동을 오는 때가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그때 만난 분들이 이규호(전 문교부 장관), 문상희(전 연세대 신학대학장), 김동길 교수(전 국회의원) 등이었고, 가끔 교수들도 찾아왔는데, 최현배 교수에게 ‘말본’을 공부했고, 나운영 교수는 한얼중학교 교가를 지어주었으며, 음악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소년 심군식을 문학과 신앙으로 이끈 책 한 권은 천로역정이다. 학교 장독대에서 발견한 하늘 가는 길(천로역정 번안 제목) 한영 대역판에 빠져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천로역정을 읽고 소년 심군식은 ‘하늘나라’와 ‘문학’에 빠져들게 되면서 손에 잡히는 책은 잠을 줄여가며 읽어나가게 된 것이다.  

그는 거의 모든 시간을 교회당에서 지냈다. 새벽에는 교회 종을 쳤고, 골방에서 새벽이 되도록 책을 읽었다. 6.25 전쟁이 발발했고, 어느새 한얼 고등학생으로 성장하게 된다. 

지방 대학으로 진학은 했으나 등록금을 낼 수 없어서 소설 습작을 시작한다. 등단만을 목표로 하여 학교도 포기하고 매일 독서와 습작의 나날을 보내면서 문학 역량을 닦은 것이다. 

그는 천부적인 이야기꾼이었다. 군 복무를 대체하는 ‘국토건설단’에 복무할 때는 동료들에게 이야기해주는 대가로 낮시간 근무 대신 ‘이야기를 만드는 시간’으로 보낼 정도였다. 1961년 군 미필자를 구제하는 방법으로 ‘국토건설단’이 만들어졌고, 심군식은 울산공업단지 조성에 투입돼 산업도로 굴착 작업단에서 병역의 의무를 하게 된다. 일과를 마친 이등병 사병들이 밤에는 번갈아 가며 자기 이야기를 풀어 놓는 시간이었다. 처음 얼마간은 돌아가며 세상 살아온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지만, 그것도 금방 끝이 나버리고 입담이 좋은 누군가가 그 일을 도맡게 된다. 그 역을 맡은 사람이 이등병 심군식이었다. 그는 어른들로부터 들은 옛이야기, 소설이야기, 영화이야기 알고 있는 모든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그의 이야기를 자장가로 들으며 노역의 피로를 풀었다. 심지어는 인근 극장에 좋은 영화가 상영되면 대표로 보고 와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입장료를 걷어 주는 일도 생겼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그의 큰 장점이었다. 성경의 많은 에피소드와 사건을 동화로 엮어낸 능력은 아마도 그의 타고난 능력으로 보인다.       

심군식은 1971은 한국아동문학가 협회지에 동화를 발표하면서 아동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이재철, 김성도, 이원수와의 교유로 아동문단에 입문하게 된다. 아동문학가 김성도 장로를 통하여 이재철 박사를 만나게 됐고, 이원수 당시 한국아동문학인회 회장과도 인연이 되어 동화를 발표하게 된다. 

아동문단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서 부산아동문학회를 재건하고 정진채 회장 이후에 계속 부산아동문학회를 맡으면서 『부산 아동문학』을 펴냈고, 『기독교 문예』에도 꾸준히 글을 발표했다. 당시의 자료를 보면 현재 부산 아동 문단을 대표하는 ‘선용’, ‘공재동’ 작가의 이름도 확인이 된다.    

3. 성경 이야기, 사색적 문학세계 

심군식은 동요와 동화에 주력하며 그의 문학적 역량을 펴나갔다. 특히 성경을 토대로 신앙에 기반한 스토리를 동화로 엮어 어린이들이 쉽게 신앙의 세계를 경험 할 수 있도록 했다. 성경은 실제로 많은 비유와 예화를 담고 있는데, 여러 에피소드를 동화 형식으로 엮어서 성경을 전하려고 했다. 천국의 모형을 동화를 통해 보여주려 했고, 하늘나라의 비밀을 이야기로 풀어내려고 했다. 

「진달래시에서 온 소년」(이후 ‘진달래 시’로 교차 사용함)은 기독교적인 천국의 모형을 ‘진달래 시市’라는 판타지 공간을 통해서 보여 준다. 진달래 시에는 분쟁이나 다툼이 없다. 추돌 직전의 교통사고가 발생해도 운전자들은 차에서 내려 서로 자신의 잘못이라고 시인하고 서로에게 용서를 구한다. 또 ‘진달래 시’에는 신분의 격차로 인한 차별도 없다. 고급 관리건 가난한 아이건 모두 버스를 타고 다닌다. 모든 시민이 버스를 이용한다는 것으로 평등을 구현한다. 게다가 그 도시에서 가장 높임을 받는 대상은 다름아닌 ‘어린이’다. 이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누구든디 어린아이 같지 않고는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구절과 다르지 않으며, 천국에서는 이 땅에서 거지로 살았던 나사로가 하나님의 품에 안겨 있더는 복음서 말씀과 같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 구분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드러냈다. 평등한 세상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의 모형이다.

“이 시엔 도적도 강도도 없나?”
“물론 없습니다. 그래서, 형무소가 없지요. 검사나 판사나 변호사 없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있던데… 들어오는 정문 입구에 보초 서 있는 분들이 순경이 아니었니?”
“맞아요. 경찰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는 5명 뿐입니다. 경찰은 다만 정문 입구를 지키는 일만 교대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의 경찰이 하는 일이란, 악한 사람들이 우리 시에 못 들어오도록 막는 일만이 전부입니다.”
“응…”
아저씨는 길게 숨을 내뿜었습니다.
 -『진달래 시에서 온 소년』 중에서

아저씨와 아이의 대화에서 기독교적인 천국의 모형이 제시되어 있다. ‘도적이나 강도가 없는 도시’, 그래서 판사나 검사, 심지어 경찰마저도 질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인력을 제외하곤 필요가 없는 도시, 기독교에서 추구하는 ‘사자와 아이가 함께 뛰 놀수 있는 공간’이다. 싸움과 부정이 소거된 천국인 것이다. 

작중 화자 ‘아저씨’는 작가와 거의 동일시되어 있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천국의 도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신앙인으로 살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천국으로 만들어 보려는 작가 심군식의 의지가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나 있다.***

『진달래 시에서 온 소년』은 판타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진달래 시’에서는 버스를 타고 달리다가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데, 판타지의 경계가 분명하고 판타지 세계로 도입이 매우 자연스럽고 탄탄하다.

판타지 동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제는 판타지 세계로의 도입이 얼마나 자연스러우며 탄탄한가에 있다. 이 점이 판타지 동화의 성공 관건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진달래 시’에서는 도로표지판을 지나면 자연스럽게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도록 장치가 되어 있다. 속도감이나 현실감 모두를 충족시키는 판타지 세계의 도입 구성이다.  

「바이얼린 할아버지」 또한 에덴동산에 교회보다 먼저 아담과 하와를 통해 가정을 세워 가정의 중요함을 말하고 있는 기독교의 원리를 강조한 동화다.

할아버지의 눈 언저리에 촉촉이 물기가 젖어 갔습니다.

“사람은 역시 가정을 지니고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해. 자유가 없지만 그것이 참 자유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다니며 사는 게 좋은 것 같지만 실은 그게 아니라고, 사람은 바람일 수도 없고 구름일 수도 없어. 공중의 새일 수도 없어. 사람은 사람일 뿐이야. 사람은 일을 하면서 가정 속에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란 말이야.”
바람이 소슬했습니다. 
밤이 깊어갑니다. 할아버지 눈은 여전히 섬뼉였습니다.
- 「바이얼린 할아버지」 중에서****
 
위 인용문의 핵심은 ‘사람에게는 가정과 일이 필요하다’라는 중요한 명제다. 바이얼린을 벗삼아 전국 팔도를 돌며 혼자 살아온 노인네의 회한에 젖은 말이다. 그것은 단순한 푸념이나 넋두리가 아니라 인간은 가정 공동체로부터 힘을 얻는다는 고백이다. 

「난장이 아저씨」」 심군식의 기독교 세계관을 그 어느 작품보다 선명하게 보여 주었다. 난장이 아저씨는 어릴 때 다친 뒤로 ‘곱추’라는 신체장애를 가지게 되고, 다른 사람의 신발을 수선해 주는 일로 겨우 연명하고 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만족하고, 신발수선 직업을 하나님이 주신 일로 알면서 이웃에게 소망과 희망을 전해주고, 범죄를 구상하는 젊은이를 교화시키기도 한다. 

‘난장이 아저씨’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악을 선으로 교화하는 사도使徒의 역할이다. 야훼가 소돔과 고모라 땅을 멸망시키기 전에 의인 열 명을 찾았다. 그러나 한 도시 안에 열 명의 의인을 구할 수 없었다. ‘난장이 아저씨’는 이 사회에서는 가장 약자이지만,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어둔 세상을 밝히는 작은 불씨와 같은, 톨스토이 우화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성서에 찾는 의인일 것이다. 게다가 ‘난장이’는 예수님을 보려고 나무 위에 올라간 성서 속의 인물 ‘삭게오’와 이미지에서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삭게오’도 사람들로부터 멸시당하고, 무시되기도 했지만, 예수님을 만난 뒤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세상을 밝혀 나가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심군식은 성서의 사건과 에피소드를 동화로 엮어서 종교 이야기로 승화했다. 무엇보다 작품 곳곳에 회화면의 실제 지명을 사용했다. ‘석전골’, ‘새터’ 등은 회화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익숙한 지명이기도 하거니와, 어느 마을이나 있을 법한 일반적인 지명을 사용하고 있다. 성경의 신학적 내용을 이야기로 풀어 전달하면서 어느 마을에나 있을 법한 지명을 그대로 차용하였는데, 이런 장치는 동화를 읽는 동안 친숙함을 더해 준다.    

심군식의 문학세계에서 ‘고향’이나 혹은 ‘어머니’가 유독 빈번하게 등장한다. 작가에게 ‘어머니’는 가난한 시절 삯바느질로 학업을 뒷바라지 해준 배경이고, ‘고향’이란 이생에서 숙명처럼 ‘나그네’로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본향을 그리워하듯, 언젠가는 마침내 가야 할 정신적 안식처이며 신앙적 본향인 것이다.       

수필 「혈청소 가는 길」에는 가난한 고학생이 시간이 날 때마다 언덕에 올라가 ‘혈청소’로 가는 구불구불한 흙길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는 화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언덕에 서서 하염없이 혈청소로 가는 길을 보노라면 이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걷고 있다. …(줄임)… 해변을 구불구불 돌아 저 길은 어디까지 뻗어 있는 것일까. 저 길은 어디까지 뻗어 있는 것일까. 저 길의 끝은 어디일까. 혈청소는 어떻게 생긴 곳일까. …(줄임)… 나는 혼자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가보고 싶다. …(줄임)… 그러나 다시는 저 길을 그리워하고 동경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면 거기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는 욕심장이 존재이기 때문이다.
- 「혈청소 가는 길」 중에서*****


심군식의 수필은 사색적이다. 무엇을 열망하기보다는 오직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소리를 높이기보다는 낮은 음색으로, 반성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내면을 깊숙하게 들여다 보면서 현재 자신의 탐색하는 잔잔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혈청소가는 길」은 인간의 덧없는 욕심을 더 이상 가지지 않겠다는 신앙인의 절제와 겸허한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4. 선택과 결정

심군식 동화에서는 ‘평화’, ‘자비, 희생, 사랑, 박애를 나타내는 것을 오직 목적으로 삼고 있다. 기독교적 사랑을 드러내려는 목적의식이 앞선 나머지 그런 사상들은 은유와 함축이 되지 못하고 전면에 드러난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는 동화라는 도구를 통해 천국을 보여주면서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는데 힘을 얻게 하려는 의지가 문맥에 넘쳐 난다.  

심군식 목사는 음성나환자촌 교회 사역하면서 과로로 간경화 판정을 받고 회복이 어려운 소생불능의 판정을 받기도 했지만,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모든 것을 포기하였던 때에 신앙적으로 신령한 체험으로 회복하는 기적의 체험도 가진 체험적 신앙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기도 하였다.

젊은 시절 헌책방을 열겠다고 하는 후배를 위해 2천여 권의 장서를 아낌없이 희사했다. 그 결정에는 어려운 후배를 도우려는 좋은 의도도 있었지만, 새로운 길로 결단하기 위한 또 다른 하나의 단호함이었다. 소설가로 등단하려 했던 꿈을 접고 복음을 위해 신학을 선택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신학이 문학과 양립해서는 안 되겠다는 젊은 시절의 단호한 열정을 보여주는 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심군식
심군식 목사

인생의 길이란 대부분의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하나를 버릴 수밖에 없는 삶의 과정에서 최우선의 것이 아니면 단호하게 버려야 할 결단을 보여준 원리이다. 

심군식의 아동문학세계는 한국 아동문학사에서 어떠한 분기점을 마련하는 정도의 업적은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신앙에 의거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역하는 동안 소외된 사람, 가난한 사람, 수 많은 약자들을 위해, 그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었고, 장차 가게 될 하늘나라를 약속하였던 것처럼,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만들고 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약한 사람들, 어린이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위로의 전언을 남기려는 것에 삶의 목표를 둔 것으로 보인다. 

세상적인 성공에 집착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작동하는 영역인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목회자 심군식은 소위 목회자로서 성공으로 치부되기도 하는 ‘대형 교회’, ‘큰 교회’ 사역을 정중히 거절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보통의 사람들이 보여주기 어려운 결정이다. 대형교회에서 집요하게 초청이 왔고, 수락하기를 거듭 요청하였는데 그는 거절하고 만다. 그는 여기에 대해 『언제나 내가 좋은 대로 살 수 없다.』는 말로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 크고 좋은 곳으로만 달려가는 현상이 심화되고, 그래서 사회 갈등이 더 깊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와 반대의 결정을 할 수 있었던 아동문학가이자 목회자 심군식을 지금 돌아보는 것이다. 고신대학교 도서관에는 아동문학가이자 종교인 심군식 목사의 저서가 남아 있다. 

 

<주>

*강성갑 교장에 대한 기사는 오마이뉴스 2020년 11월 6일자 기사에 ‘나눔의 교육자’로 상세 소개
**심군식, 「역경의 열매」,『국민일보』, 1994,8,23.
***졸고, 「아이들에게 준 천국의 선물」, 『고성문학』 제20호, 2004, 106-108쪽.
****심군식, 『바이얼린 할아버지』, 『부산아동문학』 제2호, 1974, 7-10쪽. 
*****심군식, 「혈청소 가는 길」, 『基督敎文藝』 제2집, 1971,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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