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호킹 박사가 2008년 4월 미항공우주국(NASA) 창립 50주년 행사에 참석해 ‘왜 우리는 우주로 가려 하는가?’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오른쪽은 그의 딸 루시 호킹. 출처 NASA(Paul E. Alers)
블랙홀, 빅뱅, 시간의 시작 등 우주의 근원을 탐구해온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14일 타계했다.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물리학자라는 평가를 받은 호킹은 물리학계에 적지 않은 학문적 유산을 남겼다.
뉴사이언티스트(NewScientist)를 비롯한 유력 과학전문 매체들은 일제히 호킹의 과학적 유산들을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인저리타임은 이들 과학전문 매체들을 인용해 스티븐 호킹의 추모 특집 ‘호킹의 유산’을 마련했다. 다음은 뉴사이언티스트의 14일자 A brief history of Stephen Hawking: A legacy of paradox를 번역, 편집한 내용이다.
스티븐 호킹의 유산 <1>호킹의 짧은 역사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박사가 14일 별세했다. 향년 76세. 루게릭병에 걸린 지 55년. 슬하에 딸 루시(Lucy)와 로버트(Robert)와 팀(Tim) 등 두 아들을 두었다.
호킹은 훌륭한 과학자이자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의 업적과 유산은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호킹은 불치의 병마와 싸우면서도 결코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의 용기, 총명함과 유머를 잃지 않는 인내심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세계는 우리시대 가장 유명한 과학자이자 우상을 잃은 슬픔에 애도의 물결이 흐른다. 호킹의 저서 ‘시간의 역사’는 1988년 출판 된 이래 3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1000만부 이상 팔렸다. 그는 영화 ‘스타 트렉’에 출연했으며, 2014년 개봉된 자전적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Theory of Everything)’을 통해 그의 삶은 재조명되기도 했다. 호킹 역의 에드미 레드메인(Edmie Redmayne)은 오스카 상을 수상했다.
호킹은 시간 여행과 외계인 생활에서부터 중동 정치와 사악한 로봇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안에 관한 자문을 의뢰받는 게 일상이었다. 그는 사랑스러운 유머 감각과 단호한 태도를 지녔다. 초인적인 마음과 결합된 인간의 특성 덕분에 호킹은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이 같은 미디어에 의한 대중적 인기와 장애는 종종 그의 과학적 성취와 유산을 가린다. 호킹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향상시켰고, 지난 40년간 물리학 체계를 형성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으며,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 그의 통찰력은 오늘날 기초물리학의 발전을 계속 이끈다.
빅뱅(big bang)을 조롱한 프레드 호일을 만나지 않은 게 다행
호킹은 물리학 연구는 실망으로 시작되었다. 1962년 케임브리지대학교 박사과정에 입학한 호킹은 프레드 호일(Fred Hoyle)을 지도교수로 삼아 함께 연구하고 싶었으나 다른 학생들에게 밀려 ‘컷 탈락’했다. 당시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인 프레드 호일은 야심찬 학생이라면 누구나 끌리는 강력한 ‘자석’이었다.
호킹은 그래서 전혀 알지 못하는 데니스 시아머(Dennis Sciama)와 함께 연구하게 되었다. 박사과정 입학 1년만(21세)에 호킹은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일명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2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들었다.
호킹은 학위 과정 2년 동안 걷거나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병세는 다행히도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는 천천히 진행되었다. 그의 육체는 약해졌지만 지력은 날카로운 상태를 유지했다. 제인 와일드(Jane Wilde)와의 약혼은 학업에 실질적인 진전을 이룰 수 있을 만큼 힘을 불어넣어주었다.
시아머와의 연구는 의외로 장점이 있었다. 호일은 명성으로 인해 학과를 비우는 경우가 다반사였지만 시아머는 늘 호킹 주변에 있었고 대화상대가 되어주었다. 시아머와의 토론은 젊은 호킹에게 과학적 비전을 추구하도록 자극했다. 호일은 빅뱅 이론을 극렬히 반대했다. (사실, 빅뱅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사람이 호일인데, 그는 이를 조롱의 의미로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반면 시아머는 호킹이 시간의 시작을 연구하는 것에 기뻐했다.
펜로즈와 특이점 정리(singularity theorem)
호킹은 로저 펜로즈(Roser Penrose)의 연구를 공부했다. 호킹은 펜로즈와 함께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옳다면 모든 블랙홀은 중심에 공간과 시간이 파괴되는 특이점(singularity)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이른바 특이점 정리(singularity theorem)이다.
여기서 한 발 나아가, 호킹은 시간의 화살이 바뀌면 같은 추론이 우주 전체에 적용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아머의 격려 아래, 그는 수학적으로 그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특이점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호킹은 아인슈타인이 ‘우주는 특이점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었다. 거대한 규모의 공간과 시간을 묘사하는 일반상대성이론은 미시세계 물질의 기묘한 행태를 기술하는 양자역학을 고려하지 않는다. 두 가지 이론을 하나로 결합하기 위해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만물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 필요했다. 호킹에게 우주의 시작인 특이점은 공간과 시간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특이점은 양자중력(quantum gravity)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다행스럽게도 호킹은 펜로즈의 특이점과 빅뱅의 특이점 사이를 연결함으로써 양자중력 이론을 향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만약 물리학자들이 우주의 기원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호킹은 그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곳, 즉 블랙홀을 정확히 보여주었을 것이다.
블랙홀은 1970년대 초 익숙한 연구 주제였다. 칼 슈바르츠실트가 1915년에 일반상대성이론의 방정식에 숨어있는 ‘마술의 구(magic sphere)’를 발견했는데, 이론물리학자들은 그것을 단순한 수학적 기형으로 여기고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기를 꺼렸다.
비록 무섭지만, 그들의 행동은 합리적으로 간단하다. 블랙홀은 강한 중력장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것도, 심지어 빛조차도 벗어날 수 없다. 블랙홀에 빠진 모든 물질은 영원히 외부 세계로부터 유실된다. 그러나 이것은 열역학을 위협한다.
열역학 제2법칙은 가장 잘 정립된 자연 법칙 중 하나이다. 이것은 시스템에서 엔트로피(entropy) 또는 무질서 수준이 항상 증가한다고 말한다. 이 법칙은 얼음 조각이 녹아 물웅덩이로 떨어지지만 물웅덩이의 물이 절대 자발적으로 얼음 덩어리로 변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모든 물질은 엔트로피를 포함하기 때문에 물질이 블랙홀에 떨어질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엔트로피도 물질과 함께 손실될까? 만약 그렇다면 우주의 총 엔트로피는 감소하고, 따라서 블랙홀은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배하게 될 것이다.
베켄슈타인-호킹 엔트로피(Bekenstein-Hawking Entropy)
호킹은 프랑스 레후세 스키리조트에서 열린 1972 물리학 여름학교에서 연구 동반자를 만났다. 프린스턴대학 대학원생인 자콥 베켄슈타인(Jacob Bekenstein)인데, 그는 열역학 제2법칙은 블랙홀에서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베켄슈타인은 엔트로피 문제를 연구해왔고, 호킹의 초기 통찰 덕분에 가능한 솔루션에 도달했다.
블랙홀은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son)’으로 알려진 경계로 특이점을 숨긴다.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가면 외부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호킹의 연구는 사건의 지평선 면적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코 감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물질이 블랙홀에 빠지면 사건의 지평선이 넓어진다.
베켄슈타인은 이것이 엔트로피 문제의 핵심이라고 깨달았다. 블랙홀이 물질을 삼킬 때마다 엔트로피가 손실된 것처럼 보이고 동시에 사건의 지평선은 커진다. 그렇다면 열역학 제2법칙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보이는 듯했다. 베켄슈타인은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넓이 자체가 엔트로피의 양’이라는 과감한 제안을 내놓았다.
호킹은 베켄슈타인의 제안에 즉각 거부감을 느꼈다. 자신의 연구가 결함 투성이의 개념을 지원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화를 냈다. 엔트로피는 열을 갖지만, 블랙홀은 열을 발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블랙홀의 중력 때문에 아무것도 탈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호킹이 이처럼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내자 젊은 베켄슈타인은 괴로웠다.
호킹은 케임브리지로 돌아오자마자 베켄슈타인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 과정에서 호킹은 의도와는 달리 엔트로피와 블래홀 지평선 간의 정확한 수학적 관계식을 발견했다. 베켄슈타인의 제안을 파괴하기보다 오히려 옳다고 확인해준 것이다. 이른바 블랙홀 면적에 관한 ‘호킹 면적 정리(Hawking's area theorem)’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호킹의 가장 위대한 성취 중 하나가 되었다.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
호킹은 열역학이 블랙홀에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을 받아들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추론했다. 엔트로피를 가진 것은 무엇이든 온도를 갖는다. 그리고 온도를 갖는 것은 무엇이든 에너지를 내뿜을 수 있다.
블랙홀 호킹 복사(왼쪽)와 블랙홀 방화벽 개념도. 출처:뉴사이언티스트
호킹은 당초 자신의 실수가 블랙홀을 연구하면서 일반상대성이론만을 고려한 데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입자나 열을 비롯해 아무것도 블랙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양자역학이 개입하자 모든 것이 변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입자와 반입자 쌍은 빈 우주공간에서 끊임없이 생겼다가 순식간에 소멸한다.
이런 현상이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 일어나면 입자-반입자 쌍은 분리될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블랙홀의 지평선 안으로 떨어지고 다른 하나는 탈출한다면, 이들은 영원히 만나지 못해 소멸되지 않는다. 고아 입자는 블랙홀의 가장자리에서 에너지 복사처럼 흘러나온다. 양자 생성의 무작위성은 열의 무작위성이 된다.
칼텍(Caltech)의 이론물리학자인 시언 캐롤(Sean Caroll)은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호킹의 가장 큰 공헌은 블랙홀 복사 예측이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라며 “호킹의 예측이 맞다는 실험적 증거는 아직 없지만 거의 모든 전문가는 호킹이 옳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호킹의 예측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은 블랙홀이 거대할수록 온도가 낮기 때문에 매우 어렵다. 블랙홀에서 방출되는 온도를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호킹은 평소 자신은 ‘결코 노벨상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예측은 호킹을 과학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올려주었으며, 블랙홀의 가장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양자 입자는 영원히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로 불릴 것이다.
어떤 이들은 호킹 복사를 ‘베켄슈타인-호킹 복사’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제안했지만 정작 베켄슈타인 자신은 이를 거부한다. 베켄슈타인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블랙홀의 엔트로피는 베켄슈타인-호킹 엔트로피라고 불리는데, 그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이디어를 먼저 썼고, 호킹이 수식을 찾았으므로 우리 두 사람이 지금의 공식을 공동으로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호킹 복사는 순전히 호킹의 작업이다. 나는 블랙홀이 열과 에너지를 방출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호킹은 그것을 매우 분명하게 밝혀냈다. 그래서 그것은 호킹 복사라고 불려야 마땅하다."
블랙홀 정보 패러독스(Blackhole Information Paradox)
호킹은 베켄슈타인-호킹(Bekenstein-Hawking) 엔트로피 방정식을 자신의 묘비에 새겨달라고 요청했다. 이 방정식은 뉴턴 상수, 플랑크 상수, 빛의 속도, 그리고 볼츠만 상수를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상수의 존재는 모든 물리학이 통일되는 ‘만물의 이론’ 가능성을 암시한다. 더욱이 이것은 블랙홀 이해가 더 깊은 이론을 열어주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호킹의 원래 예감을 강력히 뒷받침했다.
호킹의 획기적인 성취는 엔트로피 문제를 해결했을지 모르지만 그 결과로 더욱 어려운 문제를 야기했다. 블랙홀이 에너지를 방출한다면, 블랙홀은 결국 증발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블랙홀 안에 들어간 모든 정보는 어떻게 될까? 그것은 역시 사라지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양자역학의 중심 교리를 위반하게 될 것이다. 반면 정보가 블랙홀에서 빠져 나오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위반하게 된다. 호킹은 블랙홀 복사 발견으로 물리학의 궁극적인 법칙을 서로 대립하게 만들었다. 블랙홀 정보 손실 패러독스(Blackhole Information Paradox)가 탄생한 것이다.
1980년대 스티븐 호킹. 출처: 위키피디아
호킹은 1976년 물리학 학술저널 피지컬 리뷰 D(Physical Review D)에 발표한 ‘중력 붕괴 예측 가능성의 실패(Breakdown of predictability in gravitational collapse)’라는 제목의 획기적이면서 논쟁적인 논문을 통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블랙홀이 그 질량을 방출할 때, 비록 양자역학은 명시적으로 정보손실을 금지하지만, 모든 정보도 함께 방출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물리학자들은 호킹의 견해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나뉘어 논쟁을 시작했고,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정보 손실’을 양자중력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시급한 장애물이라고 느낀다.
UC(버클리)의 라파엘 부소(Raphael Bousso)는 “블랙홀이 정보를 잃는다는 호킹의 1976년 주장은 괄목할 만한 성과이며, 아마도 그 주제가 발명된 이래 물리학의 이론적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결과 중 하나”라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 끈 이론(String Theory)에서 나온 결과는 대부분의 이론물리학자들로 하여금 호킹의 정보 손실이 틀렸다고 확신하게 만들었다. 완고함으로 정평이 난 호킹은 자신의 입장을 고수했다. 2004년 되어서야 그는 마음을 바꾸었다. 호킹은 더블린 회의에서 극적으로 나타나 자신의 종래 견해를 수정해 발표했다. 블랙홀은 정보를 잃을 수 없다.
만물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을 향한 꿈
그러나 오늘날에는 방화벽 역설(Firewall Paradox)으로 알려진 새로운 역설이 모든 것을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호킹이 제기한 질문은 양자 중력 탐구의 핵심임은 분명하다.
캐롤은 "블랙홀 복사는 여전히 우리가 이해하기가 힘든 심각한 수수께끼를 제기한다"면서 “호킹 복사는 양자역학과 중력의 궁극적의 화해를 위한 단 하나의 단서이자, 오늘날 이론물리학이 직면한 가장 위대한 도전이라는 논평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또 부소는 “호킹의 유산은 ‘만물의 이론’ 연구를 위한 핵심 난제를 정확히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호킹은 평생 동안 이론물리학의 경계를 믿기 힘든 속도로 밀어 붙였다. 그는 양자역학이 우주 전체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이해하는 방향으로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고, 양자우주론(Quantum Cosmology)으로 알려진 이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호킹의 진행성 질병은 놀라운 직감을 이용한 새로운 방식으로 연구에 매진하도록 해주었다. 이를테면, 호킹은 길고 복잡한 방정식을 쓰는 능력을 잃자 기하학적 형태로 문제를 재해석하여 해결하는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호킹은 이전의 아인슈타인이 그랬듯이 초기만큼 혁명적인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Carroll은 "Hawking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는 젊었을 때인 1970년대에 이루어졌지만, 이것은 쇠약해지는 뉴런 질환에 걸리지 않은 물리학자에게조차도 완전히 표준"이라고 말했다.
스티븐 호킹과 같은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칼텍의 시언 캐럴은 호킹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스티븐 호킹은 아인슈타인 이후의 어느 누구보다도 중력 이해를 높이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세계의 선도적인 이론물리학자였으며, 중력과 양자 역학의 교차점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 세계 최고였습니다. 더욱이 끔찍한 질병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해냈습니다. 그는 영감 있는 인물이며, 역사는 분명히 그렇게 그를 기억할 것입니다. "
#기사 출처 :
NewScien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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