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big bang)’이란 용어를 처음 말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대폭발 우주론(빅뱅 이론)을 강력 반대한 영국의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Fred Hoyle, 1915-2001)입니다. 호일은 '정상우주론(Steady-State Cosmology)‘을 주창한 인물로, 우주는 정적(State)이고 무한한 시간(Steady) 속에 존재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호일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들(대폭발 우주론의 지지자들)의 말에 의하면 현재의 우주가 어느 순간 한 곳에서의 대폭발(Big Bang)로 생겨났다는 건가요?”라고 반문했다고 합니다. ‘대폭발 우주론은 얼토당토않은 소리’라는 의미로 말입니다. 하지만 이후 호일의 본의와는 관계없이 ‘빅뱅(bigbang)’이란 용어는 대폭발 우주론을 일컫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됐습니다.
그러고 보면 빅뱅이란 용어는 탄생부터 논란을 잉태한 셈입니다.
최근 해외 우주론 연구를 보면 우주의 시작으로서 빅뱅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 대안을 제시한 논문들이 제법 나옵니다. 얼마 전 소개한 ‘급팽창(인플레이션)이 빅뱅보다 먼저 일어났다고?!’라는 제목의 기사도 그 중 하나입니다. MIT(케니언 칼리지)의 물리학자들이 초기 우주를 컴퓨터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한 결과 빅뱅에 앞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는 게 요지입니다. 연구팀은 우주 초기 매우 짧은 시간 급팽창이 진행됐고, 그 마지막 단계의 ‘재가열(reheating)’을 거쳐 마침내 빅뱅이 일어났다고 설명합니다.
최근 영국의 권위 있는 과학전문매체 뉴사이언티스트(NewScientist)는 ‘다시 듣는 빅뱅(big bang) : 우주 탄생에 관한 이야기 속의 괴상한 뒤틀림들’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새로운 빅뱅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빅뱅은 분명 크지 않았고, 아마 ‘빵’하고 큰 소리를 내지도 않았을 것
빅뱅이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묻지 말라. 뉴욕 버팔로대학의 우주론학자인 윌리엄 킨니(William Kinney)는 "가장 흔한 오해는 빅뱅이 특정 장소에서 폭발했다는 것"이라며 "그건 완전히 틀린 얘기"라고 말한다.
빅뱅의 가장 좋은 증거는 우리 주위의 모든 곳에 있는 우주배경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이다. 이것은 우주가 원자가 형성될 수 있을 만큼 냉각되었을 때 방출된 방사선으로 우주 나이 약 38만 년쯤에 나온 것이다. 이것이 말해주는 핵심은 바로 ‘오늘날 우주의 모든 곳이 바로 빅뱅이 일어났던 곳’이라는 사실이다.
미국 일리노이주 페르미연구소의 댄 후퍼(Dan Hooper)는 "빅뱅이란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우연히 점유한 공간을 포함해 모든 곳에서 일어난 어떤 일"이라고 말한다.
우주론자들이 빅뱅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은 약 138억 년 전에 존재했던 극히 높은 밀도의 뜨거운 상태를 얘기한다. 그 이후 팽창하면서 식어 오늘날의 우주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주가 빅뱅 ‘특이점’으로 알려진 무한히 작은 하나의 점으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생각은 팽창하고 냉각된 우주의 역사 영상을 되감기 해보는 데서 비롯됐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의 현재의 물리학 이론은 그렇게 무한히 작은 규모의 공간과 시간을 다룰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우주가 하나의 점이었던 순간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빅뱅은 어디선가 일어난 게 아니라 곳곳에서 일어났어."
우리는 1980년대부터 우주배경복사 지도를 통해 우주 곳곳 물질들의 온도와 밀도가 놀랍도록 매끄럽다는 사실에 놀랐다. 우리는 양자요동이 밀도와 온도가 다른 지역들을 만들어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따라서 만약 빅뱅이 개시했다면, 폭발은 완벽하게 균일한 팽창이어야 한다. 일반적인 폭발처럼 사물들이 무작위로 흩날리는 식의 폭발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걸 두고 대폭발(big bang)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우주 전체가 균일하게 매끄럽다는 관찰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은 인플레이션(inflation)라고 급팽창 단계를 고안했는데, 이 단계는 우주를 너무 빨리 팽창시켜 주름을 펴고 매우 평탄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우주 초기 역사에 관한 표준이론은 빅뱅 이후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킨니가 보기에 인플레이션이 빅뱅보다 먼저 있었다는 게 합리적이다. 인플레이션을 통해 뜨겁고 높은 밀도의 수프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팽창하고 냉각하면서 원자와 별과 행성을 가진 오늘날 우주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킨니는 "우리가 생각하는 우주의 시작, 즉 138억 년 전의 뜨거운 평형상태는 사실 인플레이션의 끝"이었다고 킨니는 말한다.
후퍼는 인플레이션의 ‘급팽창’(big stretch)은 빅뱅과 분리된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빅뱅의 일부 혹은 빅뱅과 같은 꾸러미로 생각하는 게 옳다고 말한다.
한편, 모든 사람이 인플레이션을 믿는 건 아닌데, 그 이유는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우주론자들은 우주가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바운스(bounce) 우주론을 선호한다. 이것은 물리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특이점을 없애줄 뿐 아니라 빅뱅에 대한 불가피하면서도 곤란한 질문에 답을 주기 때문이다. 그 질문이란 바로 ‘빅뱅 이전에 무엇이었는가’(혹은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가)이다.
# 기사 출처 : Newscientist, Big bang retold: The weird twists in the story of the universe's birth
https://www.newscientist.com/article/mg24432601-200-big-bang-retold-the-weird-twists-in-the-story-of-the-universes-birth/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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