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원조는 낭비라고 비웃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해외 원조 문제는 뜨거운 논란거리다. 많은 미국인들이 평균 25%가 넘는 국가 예산을 해외 원조라는 형태로 기부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실제로 그런 추측은 그냥 틀리기만 한 게 아니라 어처구니없는 착각이다. 해외 원조 예산은 미국 전체 지출의 0.75%도 안 되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겨우 5%의 미국인들만이 이런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다. 심지어 열 명 중 한 명은 무려 미국 예산의 절반이, 즉 수조 달러가 다른 나라로 빠져나간다고 잘못 알고 있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외 원조 금액이 얼마든, 곧바로 현금으로 교환 가능한 수표로 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틀렸다. 사실상 해외 원조는 미국 내의 일자리 창출 계획으로까지 인정받는다. 음식에서 군용 비행기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현물로 제공되며, 그 현물은 정부가 미국인들로부터 구매해서 다른 국가로 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¹⁾²⁾
((1)편에 이어서)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반세기 전에 역사가 리처드 호프스타터Richard Hofstadter는, 현대생활이 복잡해짐에 따라 일반 시민이 스스로 세상일에 대해 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능이 꾸준히 감퇴하여 왔다고 썼다.
애초 미국 대중의 구미에 맞는 꿈에서는, 보통 사람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기본적이고 필요불가결한 일이었다. 특별한 준비를 하지 않아도, 전문직에 종사할 수 있고 정부를 운영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 보통 시민은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는 아침 식사도 마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기구는 전문가가 자신의 멋대로 만든 것인데 보통 시민에게는 다소간 불가사의한 물건이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중요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는 조간신문을 읽는다. 솔직한 보통 시민은 그런 문제들의 대부분에 대해 판단할 능력이 자신에게 없음을 인정한다.
호프스타터는 1963년에 이런 압도적인 복잡성으로 말미암아 시민들은 자신들이 점점 더 약아빠진 엘리트들의 손아귀에 휘둘리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무력감과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지적인 정규교육에 대해 농담조로 가볍게 조롱하던 것이 전문가로서 능력을 갖춘 지식인에 대한 악의적인 분개로 변했다. 예전에는 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지식인은 점잖게 조롱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지식인이 너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들은 격렬한 분개의 대상이 되었다” 고 호프스타터는 말했다.
2015년 법학교수 일야 소민Ilya Somin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 문제는 지속되고 심지어는 전이轉移되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크기와 복잡성은 제한된 지식을 가진 유권자가 정부의 수많은 행위들을 감시하거나 평가하는 것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들었다. 그 결과, 민주국가는 국민이 종종 책임감 있고 효과적으로 주권을 행사할 수 없는 정치 체제가 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교육과 기술 그리고 인생의 기회에서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유권자들은 호프스타터 시절보다 공공정책을 이끌 능력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면에서 그럴 능력은 심지어 줄어들었다.
이 문제는 정치, 계급 또는 지리 문제로 단순화할 수 없다. 오늘날, 확립된 지식에 반대하는 운동은 더 잘 알기 위해 필요한 모든 도구(수단)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종종 주도 된다. 이 현상에 대한 현대의 전형적인 사례인 백신 반대 운동을 보자. 이 운동은 샌프란시스코 외곽 마린 카운티의 교육 받은 교외거주자들한테서 가장 큰 영향력을 얻었다. 2012년 광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거의 8%의 부모들이 학교에 등록하기 전에 자녀들에게 예방접종을 해야 하는 의무에 대해 개인적인 믿음으로 인한 면제를 요구했다.
이 부모들은 의료전문가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확립된 의학지식에 도전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충분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자녀들과 그 밖의 모든 어린이들의 건강을 희생해 가면서도 그렇게 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많이 알지 말라
전문가란 특별한 직업에 관련된 기술과 지식에 정통하고 일과를 그 기술과 지식에 의존하는 사람으로 느슨하게 정의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전문가는 특정 주제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상당히 더 많이 아는 사람이고, 우리들은 보통 그들에게 그 주제에 대해 교육이나 충고를 구한다. 그들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며, 항상 옳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전문가는 어떤 주제에 대한 그들의 견해가 일반 대중의 견해보다 훨씬 옳은 것 같다고 여겨지는 권위 있는 소수자들이다.
우리는 누가 전문가인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부분적으로는, 직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정규 훈련, 교육, 그리고 전문가로서의 경험으로 알 수 있다. 교사, 간호사, 배관공 등은 그들의 기술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이 자격증은 그들의 능력이 동료들에 의해 검증을 받았고, 능력이 기본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표지이다.
자격증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 동업조합은 수익을 창출하거나 불필요한 진입장벽으로 자신들의 영지領地를 보호하는 데 자격증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자격증주의(credentialism)는 실제적인 지식과 전문능력을 반영할 수 있으며, 진짜 전문가와 아마추어나 돌팔이를 구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자격증보다 더 위에 있는 게 타고난 재능이다. 재능이야말로 전문가 공동체 내에서까지 지위에 차이를 만들어내는 불변하고 진정한 자질이다. 자격증과 재능 위에 사고방식이 존재한다. 특정한 주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항상 전념하는,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도 포함된 더 넓은 전문가 공동체에 기꺼이 회원이 되는 마음가짐이다.
전문가는 다른 전문가의 평가와 교정을 받아들인다. 모든 전문직 단체와 전문가 공동체에는 감시자와 인가하는 사람, 그리고 인증기관이 있다. 그들이 맡은 일은 회원들을 단속하고, 회원들이 유능하고 전공의 수준을 유지하게 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전문가도 종종 잘못을 저지른다. 그러나 훌륭한 전문가는 먼저 그 잘못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전문가 자신들의 전문분야는 완벽한 지식과 능력이라는 이상理想이 아니라, 잘못을 확인하고 그 잘못을 고쳐나가는 끊임없는 과정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궁극적으로 지적 진보를 이끌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일반대중은 전문가의 잘못을 찾아 나서고, 그 잘못을 발견하고는 기뻐한다. 이해력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전문가의 잘못을 발견한 일반대중은 자신들이 좋아하지 않는 전문가의 충고를 무시해도 좋다는 면허증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일부는 전문가가 아닌데도 자신들이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우리는 회원들 중에서 가장 지식이 적은 사람이 행세하는 모임에 갇혀 있다. 그 최소 지식인은 진부하고 잘못된 정보를 다른 회원들에게 자신에 차서 강의를 한다. 이건 상상속의 일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이것을 실험심리학자 데이비드 더닝David Dunning과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의 이름을 따 “더닝-크루거 효과”라 부른다.
더닝-크루거 효과의 핵심은,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덜 숙련되었거나 덜 유능할수록, 자신은 실제로 잘하고 있다고 더욱더 자신감을 가진다는 것이다. 심리학자의 연구 결과는 이렇다. “그러한 사람들은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고 한심스런 선택을 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무능함으로 인해 잘못을 깨달을 능력까지도 없다.”
어느 정도까지는, 이런 일은 모든 사람에게도 사실이다. 유머 감각이 형편없다거나 성격이 별로 안 좋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명한 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기술에 대해서 남들이 평가하는 것보다 스스로를 훨씬 더 높게 평가한다.(작가 개리슨 케일러Garrison Kekllor의 작품에 나오는 가상의 마을 워비곤 호수Lake Wobegon를 생각해 보자. 그 마을에서는 모든 어린이가 평균 이상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덜 유능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평가보다 자신을 더 과대평가한다는 것이다. 더닝은 2014년에 다음과 같이 썼다.
많은 연구를 통해, 주어진 일련의 인지적, 기술적, 사회적 기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기량과 성과를 심각하게 과대평가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문법, 정서적 지능, 논리적 추론, 총기 관리, 안전, 토론 또는 금융지식 등에 관계없이 그랬다. D나 F를 받을 시험지를 제출한 대학생들은 자신의 답안지가 훨씬 더 높은 등급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수下手인 체스 선수와 브리지 선수, 의대생 그리고 운전면허증 갱신을 신청한 노인들은 비슷하게 자신의 능력을 훨씬 더 과대평가했다.
이러한 이유는 “상위인지(metacognition)”라 부르는 자질의 결핍 때문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상위인지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자신의 인지과정을 똑바로 살펴보는 능력을 말한다. 훌륭한 가수는 자신이 노래 어느 부분에서 실수를 했는지를 알고, 훌륭한 감독은 영화 중의 어떤 장면이 좋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자기 자신을 아는 지적인 사람은 자신의 역량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안다.
이들보다 못한 가수, 영화감독, 지식인은 그런 것을 알 수가 없다. 그리하여 이들은 서툰 음악을 하고, 따분한 영화를 만들며, 미친 듯이 날뛰는 대화를 한다. 더욱 곤란하게도, 의심스러울 때는 그냥 입을 닥치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가장 능력이 적은 사람이 자기가 틀렸고 다른 사람이 옳다는 것을 가장 깨달지 못하는 사람이며, 가장 자기의 무지를 속이려 하는 사람이며, 배움의 능력이 가장 적은 사람임이 밝혀졌다.
(곧 (3)편으로 이어집니다)
※1)톰 니콜스/정혜윤 옮김, 『전문가와 강적들』(오르마, 2017), 57~58쪽. 2)번역, 연재 중인 「미국이 전문지식에 대한 믿음을 잃은 이유」와 『전문가와 강적들』의 저자는 동일인이다. 『전문가와 강적들』의 원제는 ‘THE DEATH OF EXPERTISE’ 곧 ‘전문지식의 죽음’이다.
<칼럼니스트·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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