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민주 시민의 자격이 있는가(5,끝)

조송원 승인 2018.09.02 21:48 | 최종 수정 2018.09.02 22:36 의견 0

미국의 코미디언 지미 키멜Jimmy Kimmel이 한 차례 짓궂은 장난을 쳤다. 길을 가던 사람을 멈춰 세우고,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제안한 조세계획 가운데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인터뷰 대상이 된 사람들은 키멜이 클린턴과 트럼프의 조세계획을 바꿔치기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였다. 사람들의 답변은 지지하는 후보에 따라서 달라졌다. “클린턴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클린턴의 숙적인 트럼프가 내놓은 조세계획이 훌륭하다고 단언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허핑턴포스트Huffinton Post》의 여론조사 책임자인 에드워즈 레비Edwards Levy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정치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건 간에 미국인들한테는,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모든 사안들에 관해서 분명한 의견이 없다. 특히 복잡하거나 모호한 주제라면 더 그렇다. 당연히 사람들은 당파적 신호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가가 어떤 법안에 찬성하면 그 법안이 좋은 법안이라고 생각하며, 반대하면 나쁜 법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레비는 키멜의 장난을 좀 더 공식적인 방법으로 수행했고, 똑같은 결론을 얻었다. 의료보장, 이란 문제, 차별 철폐 법안 등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에 강하게 반대하던 공화당 지지자들이, 같은 정책이 도널드 트럼프의 정책이라고 생각할 경우에는 훨씬 덜 반대했다. 민주당 지지자 역시 역방향으로 마찬가지였다.¹⁾

톰 니콜스 교수가 이탈리아  LUISS대학에서 '전문지식의 죽음'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유튜브]
톰 니콜스 교수가 이탈리아 LUISS대학에서 '전문지식의 죽음'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유튜브]

((4)편에 이어서)전문가와 시민들 사이의 관계는 상호 존중과 신뢰의 토대 위에 구축된다. 이 토대가 무너지면, 전문가와 일반인은 서로 적대하는 파벌이 된다. 그 결과 민주주의 그 자체가 희생자가 되어, 폭도 통치나 엘리트 테그노크라시²⁾로 타락하게 된다. 기계장치와 한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편리한 도구와 오락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 살면서, 미국인들(그리고 많은 유럽인들)은 스스로를 다스리거나 자신들에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이끌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배우기를 어린아이들처럼 거부하고 있다. 이것은 기능적 시민권의 붕괴이며, 이로 인해 많은 다른 재앙적인 결과를 낳게 한다.

예를 들어, 지식과 정보를 가진 시민들이 없어지기 되면, 행정과 지식 엘리트들이 사실상 국가와 사회의 방향을 대신 결정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예크Friedrich Hayek는 1960년에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날 자유에 가장 큰 위험은, 현대 정부에서 가장 필요로 하고 가장 막강한 권한들 가진 사람들, 곧 자신들이 공익이라고 여기는 것에만 전적으로 관심이 있는 가장 효율적인 전문 관리자들로부터 온다.”

이 말에는 많은 진실이 담겨 있다. 많은 분야에서 선출되지 않은 관료와 정책전문가들이 미국인들의 일상적인 삶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상황은 설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무 불이행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포퓰리즘은 실제로 이 엘리트주의를 강화한다. 왜냐하면, 무지를 칭찬해서는 통신위성을 발사할 수도 없고, 해외 미국 시민의 권리를 협상할 수도 없으며, 효과적인 의료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대부분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게 되면, 전문가들은 대중들과 분리되어, 주로 전문가들끼리 대화를 하게 된다.

반면에,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시스템이 제공해 줄 것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점점 더 높여왔다. 그리고 이러한 특권의식은 계속적인 실망과 분노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가난을 종식시키거나 테러리즘을 방지하거나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보기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눈을 흘긴다. 그러한 일에 대한 복잡성을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하지 않는다. 대신에 자신들의 삶을 장악하고 있다고 엘리트들을 부루퉁하게 비난한다.

“공화국, 여러분이 그것을 지킬 수 있다면.”

전문가는 오직 제안만 한다. 결정은 선출된 지도자의 몫이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그들 앞에 놓인, 결정을 해야 하는 수많은 주제들의 일부에 대해서만 아주 드물게 전문가들이다. 정의定義상, 어느 누구도 동시에 중국 정책과 건강관리와 기후변화와 이민과 세금문제에 전문가가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의회 청문회에서는 권위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선출된 문외한에게 조언하기 위해 실제 전문가를 부른다.

1787년,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헌법 회의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공화국, 여러분이 그것을 지킬 수 있다면.” 프랭클린은 대답했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정부형태가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 집단적 결정으로 운영되도록 고안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는다. 물론 소수의 테크노크라트나 전문가가 통치하도록 고안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식 있는 유권자들이 자신들을 대표할 사람들을 선택하고,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빠르게 대처하며, 공중公衆을 위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수단으로서 고안된 것이었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판단할 능력이 없을 때는, 이러한 대의 민주주의의 작동은 급격하게 더 어려워지게 된다. 일반인들은 전문가의 통치에 대해 불평하고, 복잡한 국가 문제에 더 많은 참여를 요구한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국가 운영 과정에서 자신들의 중요한 역할을 포기하고 난 후에야 분노를 표현하고 참여 요구를 한다는 것이다. 그 중요한 역할이란, 자신들을 위해 현명하게 행동할 대표자를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지식과 정치적 소양을 갖추는 일이다.

법학 교수 소민Somin이 썼듯이, “우리가 무지에 기초하여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선출하면, 그들은 찍어준 유권자들 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권력을 행사할 때, 우리는 최소한 우리가 알고 있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그렇게 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가진다.” 백신 반대 운동을 한 부모들처럼, 무식한 유권자는 자신의 잘못 때문에 사회 전체를 벌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란 모두가 선거권을 가지며 법의 관점에서 평등하다는 정치적 평등의 의미를 이해하는 시민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들은 민주주의를 실제적인 평등의 상태라고 생각한다. 곧, 어떤 의견이든 논리나 증거가 되는 근거와 상관없이 다른 의견만큼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공화국이 작동하는 방식이 아니다. 미국 사회가 교육받은 엘리트들과 그들 주변의 사회 사이의, 생산적인 관계를 위한 새로운 기본 규칙을 빨리 제정하면 할수록, 더 좋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민주 사회와 공화국 정부의 봉사자임을 항상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의 주인인 시민들도 스스로를 교육할 뿐 아니라, 국가의 운영에 계속 참여하는 시민의 미덕을 갖추어야 한다. 일반인들은 전문가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일반인은 증오심을 갖지 않고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거부권이 아니라 발언할 기회를 갖는 것이며, 자신들의 조언이 항상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시스템을 함께 묶는 유대는 위험할 정도로 손상되어 있다. 어떤 종류의 신뢰와 상호 존중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대중 담론은 근거 없는 의견을 부적절하게 존경함으로써 오염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환경에서는, 민주주의와 공화국 정부 자체의 종말을 포함하여 어떤 일이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끝>

※1)톰 니콜스/정혜윤 옮김, 『전문가와 강적들』(오르마, 2017), 398~399쪽. 2)Technocracy. 기술(technology)과 관료(bureaucracy)의 합성어로, 전문 지식이나 과학기술 등에 의한 지배를 말한다. 과학기술의 영향과 역할이 비약적으로 증대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과학적 지식·기술의 소유 자체가 ‘권력’에 중요한 접근 경로가 되므로, 이것을 소유하는 자가 사회를 관리·운영·조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시사경제용어사전)

<칼럼니스트·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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