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08) 초승달의 위로, 조현석

손현숙 승인 2023.11.17 15:31 | 최종 수정 2023.11.22 21:58 의견 0

초승달의 위로
                               조현석

 

바람 잦아들어 어스름 돋아날 때
어떤 음악소리 들릴까
해가 지는 걸 보며 콧소리는
어떻게 흥얼거려야 좋을까

야트막한 산등선 위
하늘을 붉게 물들인 저 빛은
산과 맞닿아
어떤 메아리를 울려 퍼지게 할까

전깃줄 오선지 위에 떠서
조금씩 채워지는 초승달은
언제 어두운 침묵으로 사라질까

한때 소리였을 바람은
어떤 그림을 그리며 지나버릴까
어떻게 허공에 맴돌고 있을까

조현석 시인. 1963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198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 스케치〉로 등단했다. 여러 출판사에서 단행본 기획과 편집을 맡아 일했으며 중앙일보사 출판국의 '문예중앙'과 시사월간지 '월간중앙'에서 근무했다. 이후 경향신문 편집국으로 옮겨간 뒤 섹션(매거진X) 취재기자를 끝으로 직장생활을 정리했다.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스케치》, 《불법,…체류자》 등 2권의 개인시집과 『사랑을 말하다』 등 여러 권의 엔솔로지에 참여했다. 현재 도서출판 북인 대표이다.

조현석 시집 《차마고도 외전外傳》을 읽었다. ‘북인’ 2023.

우리는 시를 읽거나 쓸 때 두 가지의 방식을 생각한다. 의미의 시와 정서의 시. 그 두 가지 방법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시의 효용성이나 무용지용을 두고 따져 묻는 일은 의미가 없다. 예술의 본질은 아름다움에 있으므로 두뇌를 통과하지 않고 감각적으로, 즉 신경시스템을 건드리면서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시는 어떤 시일까. 위의 시에서는 시인이 자기 정서를 악착 같이 끌고 갔을 때 보여주는 비경이 보인다. 화자는 지금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어딘가에 시선을 얹어놓고 있다. 그리고 가만가만 감각을 열기 시작한다. 시간과 공간과 장소를 모두 바람과 허공에 걸어놓고 사람보다 먼저 살아있던 소리에 관한 생각을 한다. 모든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한 순간, 시인은 어떤 자세로 저 아름다움을 마주하게 되는가. 해가 지고 초승달이 떴다. 자, 이 간단한 한 장면 속에서 시인의 감각은 얼마나 쓸쓸한가, 아름다운가. 어느 가인의 노랫말이 이리도 아름다운가.   

 

◇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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