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 이야기(31) - 엄마가 보아서 나도 보았던 엘비스

소락 승인 2021.02.12 15:20 | 최종 수정 2021.02.13 14:41 의견 0
나의 엘비스 따라 부르기
고교 소풍 때 엘비스 프레슬리 노래를 부르는 필자

엘비스(Elvis Presley, 1935~1977)! 이 사람은 그냥 한 명의 인기가수로 여기기에는 엄청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백인이었지만 흑인풍으로 불렀다. 엘비스가 처음 데뷔한 1956년은 백인들이 스탠다드팝을 젊잖게 부를 때였다. 록앤롤 음악들이 있긴 했어도 선풍적 인기를 끌지 못했을 때였다. 흑인들은 자기들의 리듬앤블루스와 백인들의 칸츄리앤웨스턴을 배합한 록앤롤을 신나게 연주했지만 척 베리 등이 아직 덜익은 듯한 거칠고 투박한 연주와 노래를 할 때였다.

이 때 엘비스라는 백인은 점잖음을 내던져 버리고 흑인을 흉내내며 건들건들 달콤새콤한 록앤롤 감성으로 불렀다. 그는 작곡능력이 없는 가수였고 척 베리처럼 현란하게 기타를 치지 못했지만 타고난 천성에 따라 흑인처럼 거칠고 투박한 듯하면서도 부드럽고 감미롭게 불렀다. 짜릿하게. 인류역사 이래로 누구도 1956년에 엘비스가 부른 ‘Heartbreak Hotel' 스타일처럼 부른 적이 없었다. 결국 그는 팝 역사를 완전히 대중적으로 바꾸었다. 비틀즈조차 초기에 엘비스를 카피했다. 진정한 팝(Popular Song)의 시작은 엘비스부터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수많은 팝 음악인들이 엘비스의 후예들이다.

나 역시도 감히 엘비스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그를 본 것은 1973년 1월 14일에 하와이에 이루어진 그의 공연을 통해서다. 당시에 인공위성으로 TV로 생중계를 했다. 서민들로서는 대단한 초유의 일이었다. 우리나라 가수도 아니고 미국가수의 공연을 생중계하다니 1970년대 초에는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그 공연실황을 엄마도 틀림없이 보았을 것이다. 나도 엄마를 따라 보았을 것이다. 당시 중학교 1학년 아이가 무슨 미국 팝송을 알았겠냐만은 나는 그 공연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나중에 기타를 배우고 고등학생 때 소풍을 가면 전교생 앞에서 불렀던 노래가 바로 엘비스의 ‘Burning Love'와 'My Boy'였다.

그러니 내가 고등학생 때 '엘비스박', 좀 비하해서는 딴따라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그 근원을 따라가자면 엄마가 엘비스 실황공연을 본 것에 기인한다고도 할 수 있다.

<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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