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 이야기(32) - 서슬퍼런 정국 속에서의 엄마
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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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3 14:07 | 최종 수정 2021.02.14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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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와 나는 두 살 터울이니까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이 지난 후 누나는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지금은 남녀 공학인 행당중학교로 바뀌었는데 누나가 다닐 때는 행당여자중학교였다. 졸업사진 뒤로 보이는 ‘역군이 되어 역사를 창조하자’는 표어가 눈에 띈다. 어린 소녀들이 공부하는 여자중학교에 걸린 표어치고 너무 웅장하다. 그래도 1970년대 초반에 저런 식의 표어는 약과였다. 더 웅장한 표어들이 자연스럽게 난무하던 때다.
아마도 이 사진은 1973년 2월에 찍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되어 제4공화국이 막 탄생하였을 때니 정국이 꽁꽁 얼어붙었었던 때다. 그러니 당국의 지시에 의하여 새로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창조하자는 표어가 어린 소녀들이 공부하는 여자 중학교에까지 저리 나붙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그런 정치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이 사셨을 것이다. 오로지 3남매를 어떻게 잘 키울지 생각하며 사셨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는 늘 포근한 엄마였다. 비록 저런 웅장하고 딱딱하고 차가운 표어 앞에서 사진이 우연히 찍혔지만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시듯 울엄마도 딱딱함이나 차가움과는 거리가 먼 부드럽고 따뜻한 엄마였다. 학교갔다 집에 오면 늘 밥을 차려주시는 엄마였다.
<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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