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 이야기(34) - 환한 웃음 속의 억척스러움

소락 승인 2021.02.15 17:05 | 최종 수정 2021.02.15 23:51 의견 0
두 딸과 함께
두 딸과 함께

밥상보를 만들어 파는 가내수공업으로 약간의 종자돈을 마련하신 엄마 덕분에 우리 식구는 같은 행당동 고개 너머의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내가 중학교 사춘기 들어서고 변성기가 지나며 코 밑에 까만 솜털이 조금씩 났을 때였다. 예전에 살던 행당동 128번지 집보다 컸어도 그리 정이 가는 집은 아니었다.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이었던 기억만 난다. 오래 살지도 않았다. 1년도 안 되어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갔다.

가만히 따져보니 내 중학생 시절에 우리 식구는 행당동 같은 동네에서 세 번이나 이사를 갔었다. 사진을 찍은 이 집말고도 사진 기록이 하나도 없는 두 개의 집이 또 있었다. 하나는 철로변에서 조금 올라가는 집이었고 또 하나는 행당동 윗동네에 위치한 양옥집이었다. 그 집들은 산(buy) 것이 아니라 전세로 산(live) 것이었다. 우리 식구는 왜 그렇게 이사를 자주 갔을까? 내 짐작으로는 종자돈을 마련하신 엄마가 그 돈을 어찌어찌 불리려고 이사를 자주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힘들게 이사 다닌 덕분에 엄마는 좀 더 큰 돈을 만질 수 있었던 듯하다. 기껏해야 조그만 집을 사는 것이었지만 엄마의 부동산 이재(理財) 감각은 탁월하셨던 것 같다. 햇볕이 잘 드는 어느 날 누나가 저렇게 사진을 찍었을 것 같다. 하얀 치아를 가지런히 드러내시며 웃는 엄마의 환한 미소는 여전하시다. 그 미소 속에 좀 더 잘 살아 보려는 엄마의 억척스러움도 살아 있었다.

<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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