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 (30)】 칼 - 윤영기
조승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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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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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윤 영 기
칼은 제집에서만 운다
칼집에 머리를 묻고 울다 잠이 든다
칼집은 칼이 한껏 울게 공명하며 속으로 운다
그래서 칼은 울음 속 울음을 또 운다
고요하고 어두운 칼집에서 잠들었다가
벼린 얼굴에 날을 세우고 집을 나서는
칼의 눈은 맑고 깊다
칼은 칼의 집에서 쉬어야한다
집 없는 칼을 생각해보라
명검名劍이라도 비에 녹슬고
볼품없이 아무데나 뒹굴어 발길에 차일 것이다
뻣뻣이 고개 쳐든 잡풀 아래
머리를 박고 묻혀버릴 것이다
칼이 칼 같을 때
스스로를 겨눌 때
무대에서 춤출 때
집을 생각 한다
칼은 돌아가기 위해서
칼집에서 울다 잠들고 싶어서
집에서 나오는 것이다
- 『시와 소금』, 2022년 봄호
그냥 두면 한낱 쇠붙이에 불과했을 것을 불에 달구고 수만 번 망치질하고 물에 식히고 다시 불에 달구고 모양을 다듬어 장인이 명검을 탄생시켰고, 그 명검이 쉴 수 있는 집도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시인은 여기서 칼을 의인화하여 ‘칼은 제집에서만 운다/칼집에 머리를 묻고 울다 잠이 든다/칼집은 칼이 한껏 울게 공명하며 속으로 운다/그래서 칼은 울음 속 울음을 또 운다’라고 한다.
칼집 안에서의 울음은 무엇인가, 외출 잘 하고 밖에서 제 할 일 다 하고 와서 왜 우는가, 그런데 실컷 울고 난 뒤의 칼이 ‘고요하고 어두운 칼집에서 잠들었다가/벼린 얼굴에 날을 세우고 집을 나서는/칼의 눈은 맑고 깊다’고 했다. 새로운 결의를 보이는 것 같다. 강을 거슬러 올라 가는 듯한 경쟁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명검名劍이라도 비에 녹슬고/볼품없이 아무데나 뒹굴어 발길에 차일 것이다/뻣뻣이 고개 쳐든 잡풀 아래 머리를 박고 묻혀버릴 것이’라서 때로는 에너지 재충전을 위해서 충분한 휴식 즉, ‘칼은 칼의 집에서 쉬어야 한다’ 는 것이다. 머무를 곳이 없는 ‘집 없는 칼’은 참회도 자아 성찰도 아주 힘들 것이라고 추정한다.
버거운 하루를 보내면서 칼의 일상 같은 현대인들은 생활 터전인 ‘무대에서 춤출 때/집을 생각 한다’ 는 것. ‘칼은 돌아가기 위해서/칼집에서 울다 잠들고 싶어서/집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역설적으로 집을 나서는 이유를 꼬집는다.
이해타산에 연관된 타인들이 없는 곳에 돌아가서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싶은 사람(칼)의 소망, 어쩌면 집도 없는 유랑인에게도 그 꿈은 있을 것이다.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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