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 (29)】 버림과 비움 - 주설자
조승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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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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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과 비움
주 설 자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몇 년 동안 쓰지 않은 것들을
재활용 용구에 넣는 순간
불현 듯 앞으로의 인생길이 생각나서
그 불안한 길이 환해짐을 느낀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을
괜스레 걱정하며 살아왔구나
버려도 아무 염려 없었을
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왔구나
내 가슴에 꽉 채운 온갖 번뇌들
그동안 얼마나 무거워 힘들었을까
이제는 집도 마음도
조금씩 비우며 살아가야겠다
가벼우면 높이 날 수가 있다고 하듯이
남은 시간도 무겁게 살진 말아야지
- 『동행문학』 2022년 창간호
주설자 시인의 시, ‘버림과 비움’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산 속의 맑은 공기를 마시는 등산가의 마음 같다. 고목나무는 제 뿌리를 강한 닻처럼 심고 파도에 출렁이는 배처럼 바람에 가지를 흔들리면서 제자리를 고수하였으나 종래에는 호흡이 필요 없는 세상으로 가야 하듯이 사람도 떠날 때가 있다.
주 시인은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수년 동안 쓰임새가 없는 물건들을 정리하였고 내가 아니라도 쓸 수 있는 것들은 ‘재활용 용구’에 담는 순간 ‘앞으로의 인생길이’, ‘그 불안한 길이 환해짐’을 느꼈다. 박경리 작가의 말, ‘버릴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라는 표현과 공감이었을 것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을 괜스레 걱정하며 살아왔구나’ 바로 이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버려도 아무 염려 없었을 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 온 것이다.
인생에서 이사가 큰 고통 중의 하나라고 한다. 거주지 환경이 바뀌면 필요한 것들도 바뀌고 차곡차곡 쌓아 부피만 커진 물질들은 이동 준비를 하면서 진정 필요한 것인가를 되돌아 보고 처분을 하게 된다. 주 시인은 ‘꽉 채운 온갖 번뇌들’ 때문에 ‘내 가슴이’ ‘얼마나 무거워 힘들었을까’라고 마치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듯 내 마음을 위로한다.
이제는 ‘집’에 속하는 물질도 ‘마음’에 속하는 집착도 ‘조금씩 비우며 살아가야겠다’고 물질과 집착으로 내린 문어발 같은 닻을 거둘수록 가벼워져서 ‘높이 날 수가’ 있을 것이므로 ‘남은 시간도 무겁게 살진 말아야지’ 한다. 버리고 비워서 처음 가는 거기 이사 갈 때는 다 두고 마음 하나 잘 닦아서 가면 될 것 아니냐는 주시인의 일상의 언어로 쓴 깊은 소리이다.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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