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1일은 일본 후쿠시마원전 대참사가 일어난 지 13년 되는 날이었다. 이날 고리2호기수명연장·핵폐기장반대범시민운동본부가 주최한 ‘3·11 후쿠시마핵발전소 참사 13주기 안전한 부산 기원 낭독극 <집으로> & 인디밴드 ACT 공연’이 부산 연제구 지하철3호선 배산역 2번 출구앞 효로인디아트홀 소극장에서 있었다.
‘극단 새벽’과 ‘책과콩나무’가 함께 한 이날 공연은 원자력발전소 건설로 인해 마을이 사라지는 안타까움을 담은 탈핵동화인 ‘집으로’를 낭독극으로 구성한 것이었다.
원작 동화 『집으로(Home Coming)』는 영국의 대표적인 동화작가인 마이클 모퍼고(Michael Morpurgo)의 작품이다 2012년 국내 번역본이 나왔는데 2017년에는 제목을 『우리 마을에 원자력 발전소가 생긴대요』(책과콩나무)로 바꿔 출판됐다. 1943년 영국 허트포드셔주에서 태어난 모퍼고는 전직 교사이자 시인·아동문학가이며 150여편의 동화를 쓴 영국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영국 아동문학계에 가장 뛰어난 작가에게 주는 ‘영국 계관 아동문학가’로 선정됐고 프랑스에서 주는 ‘예술문학훈장’도 받았다. 그의 작품 중 ‘워 호스(War Horse)’는 전쟁의 참상 속에 생명 존중과 인간과 동물의 우정을 그린 것으로 2012년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화해 더 유명해졌다. 우리나라에 출간된 책만 해도 『켄즈케 왕국』, 『워 호스』, 『오늘 아침에 고래를 만났습니다』, 『굿바이, 찰리 피스풀』, 『우리 마을에 원자력 발전소가 생긴대요』 등이 있다.
이날 낭독극 ‘집으로’는 범시민운동본부가 옥회 집회 대신 극단새벽과 공동기획을 한 것으로사전 티켓판매를 통해 활동기금을 모으기로 해 500장의 티켓을 판매하였으며, 이날 공연에는 110여석의 소극장 객석을 가득 채웠다.
낭독극 ‘집으로’는 노년에 들어선 주인공 마이클이 50여년 만에 브래드웰의 고향집을 방문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 중에서도 페티그루 아주머니 생각이 가장 마음 아프다. 고향 마을이 가까워질수록 마이클은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린다. 못된 동네 아이들에게 떠밀려 도랑에 빠진 마이클은 지나가던 페티그루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는다. 그 일을 계기로 마이클은 바닷가 너른 습지 위 기차 객차를 고친 집에서 당나귀 한 마리와 개 세 마리를 데리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페티그루 아주머니와 친해지고, 그곳에서 인간과 동식물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페티그루 아주머니는 다정한 남편 아서가 자가 발전기를 손 보다 숨진 뒤 홀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에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나타나 이곳 습지에 원자력발전소를 짓겠다고 선언하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평화로웠던 주민들 사이에 공청회에서 찬반 분열이 일어나고 페티그루 아주머니는 반대에 나선다. 처음에 아주머니 편에 섰던 마을 사람들이 찬성 쪽으로 돌아서자 페티그루 아주머니는 객차집을 불사르고 여동생이 사는 태국으로 돌아간다. 마이클도 그 뒤 고향을 떠났다. 50여년 만에 찾은 고향 마을에서 주인공 마이클은 묘지관리인으로부터 페티그루 아주머니의 옛날 이야기와 겨우 4년 남짓 가동되다 문제가 생겨 흉물로 남게 된 브래드웰 원전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영국 브래드웰원전 이야기로 1964년에 준공돼 20년간 가동되다 문제점이 생겨 1984년 폐쇄되고 1999년 해체에 들어갔는데 향후 완전폐쇄는 2083년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이날 낭독극은 배경에 책과콩출판사의 그림책 ‘집으로’의 장면들이 화면에 비치고 6명의 배우가 다양한 몸짓과 목소리 연기로 몰입감을 배가 시켰다. 해설자 겸 브래드웰 런던전력 영업과장 스미드 역을 맡은 변현주 배우는 “우리 주변에도 수명을 다한 원전이 있다”며 “브래드웰원전의 경우 발전의 대가가 무엇인지, 그것은 수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고, 이 이야기는 가상의 동화가 아니 실화”라고 이야기했다. 주인공 마이클 역은 김기백 배우가, 마이클 엄마역은 전상미 배우가, 페티그루 아주머니 역은 김다애 배우가, 묘지관리인 역은 이현식 배우가, 당나귀와 개 등 동물 목소리와 원전 찬성 주민 역은 정선욱 배우가 맡았다.
낭독극 ‘집으로’ 공연에 이어 ‘인디밴드 ACT 공연’으로 무대가 전환됐다. 바로 앞서 연기를 한 배우들이 이제는 ‘인디밴드 ACT’ 단원으로 기타를 치고 드럼을 두드렸다.
첫곡은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양희은의 ‘아름다운 것들’이다. ‘꽃잎 끝에 달려있는 작은이슬 방울들/ 빗줄기 이들을 찾아와서 음 어디로 데려갈까/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엄마 잃고 다리도 없는 가엾은 작은새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 음 어디로 가야할까/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유미희 보컬은 “‘아름다운 것들’이 예전에는 MT가서 박수치며 즐겁게 노래했던 곡이지만 가사를 깊이 생각해보면 결코 박수치고 즐길 노래가 아니라 오늘날 생태위기를 노래한 아픈 곡으로 재해석이 되기도 해 저희 밴드는 생태파괴를 막기 위해 이 노래를 첫곡으로 소개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인디밴드 ACT의 자작곡인 ‘신기루’가 연주됐다. ‘당신들은 뭘 보았나요/ 이곳은 희망의 나라가 아니랍니다/ 인간보다 이윤이 먼저인 세상/ 보세요, 여기는 자본의 나라/ 요람에서 무덤까지 돈이 지배하는 곳/ 당신들의 꿈은 여기 없어요/ 여긴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에요/ 그것 거짓 허상 신기루에요~’
이어서 꽃다지의 ‘강철 새잎’을 불렀다. ‘저기를 보아라/ 새잎이 돋아온다/ 아가의 여린 손마냥/ 따사론 봄 볕에/ 실눈을 부비면서/ 고목에 새록새록/ 새순이 돋아온다/ 아 연두빛 새이파리/ 네가 바로 강철이구나/ 엄혹한 겨울도 두터운 껍질도/ 자신의 힘으로/ 보드라움으로 이겼으니/ 썩어가는 것들/ 크게 썩은 바로 그 곳에서/ 분노처럼 불끈불끈/ 새싹이 돋는구나/ 부드런만큼 강하게/ 여린만큼 우람하게/ 아 썩어진 고목에 새록새록/ 새순이 돋는구나/강철 새잎이 돋는다~’.
유미희 보컬은 “체제는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의 힘이 미미해도 지금만 보지 말고 긴 역사를 되돌아보면 체제는 늘 바뀌었습니다. 자본주의체제로 너무 많은 소중한 것들이 파괴됐습니다. 그렇지만 삶의 방식을 바꾸려고 행동하는 시민이 있는 한, 다르게 살기 위해 결심하고 행동한다면 우리는 잘못된 체제를 올바르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앵콜곡 김광석의 ‘일어나’를 다함께 불렀다. 객석에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이날 공연이 펼쳐진 효로인디아트홀은 극단새벽이 직접 지어 지난해 4월에 개관했다.
행사 마지막에 범시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인 오문범 부산YMCA 사무총장이 인사말을 했다.
“먼저 이렇게 함께 해 주셔셔 감사합니다. 아시다시피 오늘이 후쿠시마원전사고 13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체르노빌원전사고도 있지만 원전기술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일본의 안전신화가 무참히 무너져 내린 날입니다. 그 후 1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사회는 안전한 사회가 못됩니다. 설계수명이 지난 고리2,3,4호를 10년 더 연장하겠다니 우리 부울경 시민들 마음은 조마조마 합니다. 오늘 후쿠시마원전참사 13주기를 맞아 시민사회와 함께 ‘집으로’ 공연을 보면서 안전에 대한 결의를 다지는 시간이 됐을 줄 압니다. 원전 위험에서 안전한 도시, 그런 부산을 함께 만들어나가도록 우리 시민사회가 앞장서 노력하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객석에서 카드섹션이 이뤄졌다. “영구 핵폐기장 결사반대” “수명연장 핵폐기장 반대” “안전한 부산 만들자” “잘가라 고리 3,4호기”.
이날 고리2호기수명연장·핵폐기장반대범시민운동본부는 ‘후쿠시마 핵사고 13년 결의문’도 내놓았다. ‘안전과 생명을 향한 길에 의지를 모아 역사를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부산시민의 뜻과 힘으로 “고리2호기 수명연장 저지! 핵폐기장 반대!”
‘(전략) 우리는 후쿠시마 핵참사를 통해 발전이란 이름으로 걸어온 길이 얼마나 반자연적이고 위험할 수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고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안전이 우선이고 생명이 가장 중요한 가치여야 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노후화된 위험한 원전이 아니라 평화로운 생명, 아름다운 미래를 물려줄 수 있습니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이 미래의 비전입니다. 시민의 안전과 신뢰가 최고의 정치이고 정책입니다. 고리2호기 수명연장과 영구화될 고준위 핵폐기장 계획은 반드시 막아내야 합니다. 절차적 정당성도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하려는 권위주위와 권력으로부터 우리의 미래와 공동체를 지켜내야 합니다. 생명을 향한 진보에 우리의 의지를 모아 나갑시다. 부산시민의 하나 된 목소리가 생명의 역사를 앞당길 수 있습니다. 고리2호기수명연장·핵폐기장반대범시민운동본부 167개 시민사회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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