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8. 신주와 미호④
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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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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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8-4. 미국으로 이민간 신주
뭐 무서운 얘기가 펼쳐질 거 같다. 도화살로 인한 엄청난 사건! 근데 니 혼자 너무 많은 얘기했어. 도화살 얘기는 나중에… 내 얘기도 좀 하자.
아! 그래 그게 좋겠다. 나도 그 얘기 하려니 떨려서 좀 쉬면서 네 얘기 들을게. 근데 너 얌전하고 점잖게 생겼는데… 사고치면서 살았을 스타일이 전혀 아닌데 우째 여기 온 거야.
뭐 무서운 얘기가 펼쳐질 거 같다. 도화살로 인한 엄청난 사건! 근데 좀 쉬어. 나는 너처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하면서 시작할 수 없어. 난 그냥 평범한 학자였어. 네가 본 그대로야. 그런 내가 기라성 같은 인물들로 즐비한 여기에 감히 오게 되다니… 나도 내가 그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아무튼 내 살아온 이야기하자면… 난 이과적 머리가 좋았나봐. 유럽에서 지금도 명문대학교로 꼽히는 대학의 화학과를 졸업했어. 그 대학의 표어가 시시하지 않았어. 뻔하지 않았어. “담대하게 발상하라!” 난 그 말을 좋아했어. 그 말의 뜻을 실천하려고 노력했지. 그렇게 난 대학원까지 다니며 21세에 우등으로 졸업했어. 졸업 후 20대 젊은 나이에 화학과 교수가 되었어. 운도 좋았지. 승승장구할 것 같은 시절이었어. 결혼도 했지. 그러다 미국이라는 나라로 학술교류 여행을 갔는데 이 여행이 내 인생을 전환하게 하지. 난 여행갔다가 그냥 그 나라가 좋아서 그 나라 국민이 되었어. 여행하면서 나랑 친하게 된 교수가 날 보고 그냥 이 나라에서 사는 게 좋겠다고 제안하는 바람에 난 덜컥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거지. 나로서는 아주 잘한 선택이었어. 내가 살던 나라는 나중에 참혹한 1차대전을 겪는데 나는 미국으로 이민가면서 그 전쟁을 피하며 살게 된 거잖아. 내가 이민 가지 않았다면 나도 죽었을지 몰라. 내 인생은 완전히 다르게 전개되었을 거야. 내가 이민 간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 때 떠오르는 태양 같은 나라였어. 물건을 만드는 기업들이 매우 발전하고 있었어. 그래서 나는 교수가 되기보다 내 전공인 화학을 다루는 회사에 들어갔어.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요즘 말로 R&D였어. 연구(Research)와 개발(Development)을 하는 거지. 쉽게 말하면 뭔가를 새롭게 만드는 발명하는 일이야. 몇몇 발명한 걸 가지고 특허를 얻고 하면서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주었지. 그러다가 나는 아예 내 회사를 차렸어. 내 이름 비슷하게 회사 이름도 지었지. 그런데 그 회사에서 내가 발명한 것은 나중에 그야말로 엄청난 물건이 되지. 아마로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킨 물건 첫 번째에 오를 대단한 물건이지. 아니 물질이지. 내가 만든 그게 뭔지 알겠어?
뭐 그런 게 한두 가지여야지. 요즘 사람들 사는 거 보면 나 때 없었던 것들이 하도 많아서 잘 모르겠는데… 나 생각 없은 여자인 거 알지? 뭘 나한테 어려운 질문하고 그래. 그냥 말해.
내 니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쉬운 질문인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해서… 그럼 내가 객관식으로 질문할 테니 알아 맞쳐봐. 그래도 모르겠으면 그냥 열 개 중에서 연필 굴려서 하나 골라도 되. ①전기 ②자동차 ③비행기 ④TV ⑤무선통신 ⑥원자폭탄 ⑦반도체 ⑧인공위성 ⑨컴퓨터 ⑩인터넷.
거 참 계속해서 골치 아프게 하네. 나 이런 문제 싫어하는데, 연필 굴리래니까 굴려 볼게. 자… ⑥번 나왔네. 원자폭탄.
땡! 그렇다고 의기소침하지마. 예쁜 미호야! 나 신주가 그냥 재미로 낸 문제야. 여기에는 정답이 없어. 10개 중에 어느 하나도 내가 만들어낸 발명품보다는 못해. 내가 만들어낸 발명품은 그 어떤 10대 발명품들이라고 선정된 것들을 압도하고 능가해. 실로 대단하고 엄청나지. 원자폭탄도 내가 만든 거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인 ‘새 발의 피’ 밖에 안돼. 고 가느다란 새의 발에서 피가 나봤자 얼마나 나겠어. 하찮은 정도로 극히 적은 분랑이겠지.
아니, 나 땐 없었으니 잘 모르겠는데 그 무지막지한 원자폭탄도 네가 만든 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이 되? 도대체 뭘 만들었다고 나대는 건지? 거 참…
힌트 하나 줄까? 내가 화학을 연구하는 학자라고 했잖아. 그렇다면 화학제품이겠지. 아까 열 개 중에는 화학제품이 없잖아. 그럼 뭘지 생각해봐. 생각해 보면 정답을 생각할 수 있어.
거참 나 생각 없다고 했지. 뭘 자꾸 문제를 내고 그래. 신경질 나려고 하네. 아 짜증나. 너랑 말 안할래.
거 참… 그렇다고 뭘 그리 토라져. 토라지니 귀엽네. 알았어 알았어. 문제 안낼게.
아무리 내가 부드러운 여자라고 해도 나도 사람이니까 화날 때가 있는 거야. 특히 난 어려운 질문하고 그러면 제일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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