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CBS : 조송현의 과학 토픽】피터 힉스, 인류의 우주관을 바꾼 수줍은 남자

조송현 승인 2024.05.04 16:00 의견 0

Q1. 오늘 주제가 ‘피터 힉스 - 우리의 우주관을 바꾼 수줍은 남자’라도 돼 있는데, 어떤 얘기인가요, 먼저 개요를 말씀해주시죠?

--> ‘신의 입자’라는 말을 들어보셨죠? 현대물리학 사상 가장 위대한 성과 중 하나인 힉스 입자를 예언, 201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피터 힉스 교수가 향년 94세로 이달 8일 영국 에딘버러 자택에서 별세했습니다. 힉스 교수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삶과 그의 학문적 성과와 유산을 청취자와 공유하려 합니다.

Q2. ‘신의 입자’를 발견했다는 얘기를 들어보긴 했습니다만, 현대 물리학의 가장 위대한 성과인 힉스 입자를 예언했고 우리의 우주관을 바꿨다, 굉장한 과학자인데 우리가 아직 몰랐군요.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생애와 업적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 과학토픽 시간에 퍽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힉스 교수의 삶을 살펴볼까요?

--> 피터 힉스는 1929년 영국 뉴캐슬어폰타인에서 태어나 위대한 물리학자 폴 디랙이 다녔던 커담 그래머스쿨(고교)를 졸업했고, 17세 때인 1946년 런던시티스쿨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이듬해 킹스칼리지 런던에 입학, 50년 수석으로 졸업했고요, 54년 같은 대학에서 분자진동이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60년부터 에든버러대학교 수리물리학과 교수를 거쳐 1980년부터 이론물리학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성격은 굉장이 겸손하고 수줍어하는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힉스 교수는 1964년에 힉스 보존의 존재를 예상하고 표준모형의 중요한 부분인 힉스 메커니즘을 제안했습니다. 이 메커니즘은 기본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2012년 7월 4일 유럽핵물리연구소 CERN의 강입자가속기(검출기 아틀라스)에서 힉스 보존과 비슷한 입자를 발견했다고 발표했고, 이듬해 3월 14일 힉스 보존의 발견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신의 입자 발견! 전 세계 언론이 대서특필했죠. 이듬해 노벨상위원회는 그를 프랑수아 앙글레르(벨기에)와 함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발표합니다. 2006년 교단에서 은퇴한 힉스 교수는 에든버러 대학의 명예교수, 왕립학회 및 에든버러 왕립학회의 펠로우이자 영국물리학회(IoP) 명예회원, 컴패니언 오브 아너(Companions of Honour) 서훈을 받는 등 생전에 영국 물리학자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습니다. 무엇보다 힉스 교수는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다준 물리학자로 평가받았습니다.

Q3. 힉스 교수의 최대 업적인 힉스 입자, 힉스 보존이 뭔지 궁금합니다.

--> 힉스 보존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이름이죠. 근데 힉스 보존의 중요성을 이해하려면 먼저 표준모형이 뭔지부터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순수 이론물리학 내용이어서 좀 어렵겠지만, 조금 관심을 갖고 들으시면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표준모형이란 우주를 구성하는 ‘표준 틀’로 이해할 수 있는데,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기본입자와 이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상호작용)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표준모형에서 규정하는 우리 우주의 기본입자는 페르미온(물질 구성입자) 12개와 보존(힘 매개입자) 5개 등 총 17개입니다. 페레미온은 쿼크 6개와 전자, 뮤온, 뉴트리노(중성미자) 같은 렙톤 6개 총 12개로 구성되고요. 보존은 질량은 없고 힘을 매개하는 입자인데, 글루온, 포톤(광자), Z보존, W보존 그리고 힉스 보존 등 총 5개가 있습니다. 글루온은 쿼크를 묶는 강한 상호작용, 포톤은 전자기력을 매개하고, W보존, Z보존은 원자핵을 붕괴시키는 약력으로 불립니다. 물론 제4의 힘 중력도 있으나 중력은 미시세계에서는 무시해도 될 만큼 너무 작아 표준모형에서 제외되었죠.

Q4. 표준모형에 따르면, 우주에는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 12개와 이들 입자 간 힘을 매개하는 보존이 5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힉스 보존이다, 이렇게 이해하겠습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표준모형의 마지막 퍼즐, 힉스 보존에 관해 알아볼 차례인데요, 힉스는 어떻게 힉스 보존을 예언할 수 있었나요?

--> 힉스 교수는 박사학위를 받고 에딘버그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자신에게 계속 질문을 했는데, 그건 바로 이거였습니다. “왜 어떤 입자는 질량을 갖고 어떤 입자는 질량을 갖지 않는 걸까?” 마침내 그는 이런 의문과 발상을 바탕으로 논문을 완성했어요. 근데 이 논문을 받아주는 학술지가 없어 한동안 애를 먹었답니다. 마침내 1964년 미국의 물리학 학술지 피지컬 리뷰에 'Broken Symmetries and the Masses of Gauge Bosons’ 제목으로 게재됐는데, 이 논문은 힉스 메커니즘, 즉 입자들이 어떻게 질량을 갖게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다른 입자들한테 질량을 부여하고 사라지는 ‘입자의 존재’, 다른 말로 ‘스칼라 보존’을 이론적으로 예언하죠. 그게 바로 훗날 힉스 입자, 힉스 보존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데, ‘신의 입자’라는 이름으로 더욱 유명세를 갖게 됐죠.

Q5. 남에게 질량을 선사하는 입자라, 참 신기한 입자인데 1960년대 초반에는 물리학자들에게도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었군요. 근데 중요한 건 이게 실제로 존재한다는 게 발견되었다는 사실이겠지요. 그 과정을 소개해주시죠.

--> 12개의 소립자와 5개의 매개입자(보존) 간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표준이론은 1967년 와인버거-살람 이론을 시작으로 개발되기 시작해 힉스-보존을 제외하고 1980년대에 완성되었어요. 그러자 물리학계는 마지막 퍼즐 찾기에 몰두하기 시작하면서 유럽입자물리연구소 CERN은 1991년 대형강입자충돌기(LHC) 건설을 시작합니다. 2008년 가동된 LHC는 둘레 27km로 세계 최대인데, 100억 달러(약 13조 원) 이상 비용이 투입됐다고 합니다.

힉스입자는 발견된 뒤 붙여진 이름인데, 이게 하도 발견되지 않아 붙여진 게 바로 ‘신의 입자’로 이와 관련된 재미난 일화가 있습니다. 중성미자를 발견해 1988년 노벨상을 수상한 레온 레더먼이 소립자물리학에 관한 교양과학서를 펴냈는데, 그 책 원고에 힉스입자를 가리켜 ‘도무지 발견이 안 된다고 푸념하듯이 ’갓뎀 파티클‘(God damn particle)이라고 표기했는데, 출판사 편집장이 ‘갓뎀’의 상스러운 어감이 걸린다며 그냥 ‘댐’을 빼고 God particle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해서 신의 입자, God Particle이라는 용어가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힉스와 물리학자들은 이 단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과학의 본질을 오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죠.

참, 힉스 교수가 가상으로 추정한 이 입자가 ‘힉스 입자’로 불리게 된 것은 한국 출신의 입자물리학자 고 이휘소 박사 때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박사가 1972년 발표한 논문에서 맨 처음 ‘힉스 입자’라는 용어를 썼기 때문이죠. 힉스 자신은 이 연구에 기여한 6명의 이름의 첫 글자를 따 부르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2008년 대형강입자충돌기가 가동되면서 물리학계는 힉스입자 찾기에 몰두했는데, 마침내 2012년 7월 4일 비슷한 입자를 발견했고, 검토 끝에 이듬해 3월 14일 CERN은 그게 그토록 찾아헤맨 힉스 입자임을 공식 확인했습니다. 이로써 표준모형이 완성되었죠.

Q6. ‘신의 입자’ 일화가 재밌네요. 그렇게 찾기 힘들었던 입자를 힉스 교수 생전에 발견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네요. 노벨상은 생존자에게만 수여된다죠? 수상 소식에 대한 그의 반응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네요.

--> CENR은 힉스입자를 발견한 뒤 가진 첫 세미나를 힉스 교수를 초청장을 보냈죠. 힉스는 “오랜 기다림이었다. 내 생애 안에 이런 발견이 이뤄질지 정말 몰랐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해요. 또 기자가 묻자 “때때로 옳은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고 했다는군요. 1년 후 스웨덴왕립과학원이 노벨상 수상자 통보차 전화를 했는데, 휴대전화조차 없던 힉스 교수는 전화를 못 받았죠. 한 이웃이 길에서 힉스 교수에게 수상 소식을 전했다고 합니다. 수상확정 소식 소감으로 그는 “기다림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힉스 교수는 평생 TV도, 휴대폰도 없이 살았다고 해요. 수줍음이 많고 절제된 성격으로 명성보다 연구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Q7. 끝으로 힉스 교수가 과학계에 미친 영향과 유산을 정리해주시죠.

--> 그의 영향가 유산을 정리해보면, 첫째, 그가 이론적 예언, 즉 물질에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의 존재는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 혁명이나 마찬가지였죠. 그 혁명은 표준이론 완성으로 이어졌고요.

둘째, 그의 이론적 예언은 49년 만에 확인되었는데, 이은 수많은 과학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후세에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는 부고에서 “힉스 교수는 우주에 대한 인류의 이해에 혁명을 일으킨 인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그는 일종의 걸어다니는 과학 기념비이자 에든버러의 관광명소였다”고 했습니다. 힉스 교수가 그의 학문적 업적과 인간성으로 인해 과학계와 에든버러 시민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음을 말해주죠.

힉스 교수가 예언한 ‘힉스보존’의 발견을 고대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물리학도로서 힉스 교수의 영혼이 평온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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