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서방이 꾸뻑 고개를 숙여 보이며 술을 따랐다. 종업원 채용문제는 둘째 처제 영신씨가 무료하기도 하고 아이들 결혼비용을 모을 계획으로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그 이튿날부터 나오라고 연락을 했다. 이윽고 아이들이 돌아가자
“당신 와 만두는 안 묵고 김치하고 술을 묵소? 속 안 아프요?”
영순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글쎄. 별로 안 땡기네.”
열찬씨가 애매한 표정으로 웃었다.
18. 만두가게 개업(13)
바야흐로 강추위가 몰아쳤지만 밖으로는 개업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안으로는 갓난애 현서가 무럭무럭 자라나 모두가 바쁘고 들뜬 연말이었다.
만두가게의 종업원으로 일하기로 한 처제 영신씨는 첫 출근을 하자말자 유니폼을 찾아 슬비내외를 당황시켰다. 개업도 안 했는데 무슨 유니폼이냐니까
“행인들이 지나가는 가게 안에서 직접 만두를 빚으면서 하얀 유니폼을 입지 않으면 누가 만두를 사려하겠나? 음식장사는 청결이 기본이야.”
해서 부랴사랴 유니폼 세벌을 사와서 하나씩 입고 가게 청소를 하는데 아직 광이 번쩍번쩍한 새 기계와 식판 같은 식기를 모조리 다시 씻는 것은 물론 바닥까지 물청소를 하고서야 멈췄다. 그리고 셋이 나란히 앉아 만두와 빵을 빚는 연습을 하는데 도연씨는 손가락이 굵은 남자라 그런지 속도가 나지 않고 얼굴도 몸매도 손가락도 다 날렵하게 생긴 영신씨가 이외로 반죽을 쥐고 꼬물거리기만 하는 것처럼 진도가 나지 않고 모양도 그렇게 예쁘지 않아
“이모는 만사에 완벽하려고 하니 진도가 안 나는 거야. 오늘 처음 만들면서 사흘째인 나처럼 속도가 나거나 모양이 예쁠 리가 없지. 대체로 너무 청결하거나 완벽하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한 집착이나 과욕 때문에 조급하거나 졸렬하기가 쉽지. 그냥 마음 편히 천천히 해.”
하면서 슬슬 손을 놀리는 슬비씨가 속도가 훨씬 빨라 두 사람 몫을 하고 모양도 예쁘게 빚었다. 개업전날,
“큰일 났다. 이러다간 내가 없으면 만두물량을 다 못 채우겠다. 손님이 오고 안 오고가 문제가 아니라 만두를 빚고 못 빚고 감당이 문제겠다.”
슬비씨가 이마에 수심을 가득 띠며
“이러다가 직장에 나갈 엄두도 못 내고 만두가게 안주인으로 주저앉는 거 아냐?”
했고 도연씨는 개업식 날 사은품으로 줄 로또복권 천 원짜리를 100장이나 사왔다. 그리고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는 세모를 울렁거리는 가슴으로 샌 내외는 아침 일찍 가게로 나가 우선 만두 찌는 기계에 스팀을 잔뜩 피워 올려 행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오전 10시 가게를 오픈하기 전부터 미리 물건을 팔면 안 되겠느냐고 그간 이 가게에서 무엇을 할 지 궁금하다가 만두가게 간판이 걸리면서 얼마나 맛이 좋을지 너무나 기대가 컸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대동병원이나 보험회사 등 인근의 사무실에 나가거나 가게 앞길을 자주 지나다니는 행인들이었다. 응원군 영아씨까지 도착한 10시에 오픈을 하자 만두가 날개 달린 듯이 팔려나갔다. 간간이 나이든 노인들이 사가던 찐빵도 점심시간이 가까워오면서 매출이 늘어나는 것이 점심대용으로 나가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노인네들이나 다이어트 하는 아가씨들의 한 끼 식사대용이 충분한 크기였다.
가게에서 앉아 먹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봉지에 담아 파는 지라 즉석에서 만두 맛의 평가를 듣기가 어려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만두 맛이 너무 좋아 다시 왔다는 아줌마가 있었는데 대동병원에 간병을 하러가는 사람이었고 기왕에 사는 김에 같은 병실사람들과 간호사실에 넣어줄 것까지 넉넉히 사갔는데 조금 지나 만두 맛이 너무 좋다며 하얀 가운을 입은 간호사가 직접 사러오기도 했다.
열두 시 반경에 어떤 할머니 하나가 진열대에 전시된 만두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이건 김치만두. 이건 고기만두, 저건 찐빵이란 말이지.”
하고 한참이나 머뭇거리더니 영아씨를 보고
“아가씨, 이 만두가 얼마나 맛이 좋은지 몰라도 조그만 거 하나에 천오백원이면 너무 비싸지 않아?”
하면서 호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하나와 동전 두개를 꺼내
“천이백 원에 하나만 주면 안 되나?”
하자 마음이 약한 영아씨가 어쩔 줄을 몰라 슬비씨를 바라보는데
“할머니, 오늘이 개업 날인데 누구는 천오백 원에 주고 누구는 천이백 원에 줄 수가 없어요.”
웃어 보이면서도 단호하게 말하자
“아가씨는 착하게 생겼는데 말 뽄새가 여간이 아니네.”
뭔가 아쉽기보다는 너무나 만두가 먹고 싶은 얼굴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도 문제지만 가게가 원칙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차라리 공짜로 드렸으면 드렸지 깎아주지는 못 합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우리할머니라 생각해서 하나 쪄드릴 게요.”
하니 또 한참이나 호주머니를 뒤적거리다 만 원짜리 하나를 꺼내주며
“아가씨가 입도 참 야무네. 만 원에는 몇 개지?”
“예. 만 원어치를 한꺼번에 살 때는 오백 원을 깎아서 일곱 개를 드립니다.”
“그럼 딱 됐네. 우리 영감에 아들에 며느리에 손자 셋에 딱 하나씩 돌아가네.”
하고 합죽하게 웃었다. 점심 먹을 틈도 없어 쩔쩔 매는 판에 오후 세 시경 처남 갑린씨의 아내 소정씨도 일손을 돕기 위해 들이닥쳤다.
“아이구, 외숙모가 우짠 일로? 회사근무시간 아니가?”
슬비씨가 반색을 하는데
“가게 잘 되느냐고 전화 오기에 바빠서 숨도 못 쉰다고 내가 불렀다.”
영신씨가 나서며
“올캐야, 인사는 나중에 하고 우선 이 만두 좀 덥혀라.”
하며 좁은 공간에 다섯 명이 법석을 부렸다. 오후 다섯 시경 물건이 거의 동이 나자
“도연씨!”
슬비씨가 남편을 불러
“만두피 반죽 좀 더 치소. 아무래도 더 만들어야겠다.”
“아이고, 힘들어 죽겠는데. 그만 하지. 만두소도 없이 반죽만 치면 되는 것도 아니고...”
난색을 표하는데
“명색 개업 날 해도 지기 전에 물건이 떨어지면 우짜노? 오늘 한 사람이라도 손님을 더 받고 그 사람들 입소문이 나야 가게가 잘 되지.”
하는 순간 미성만두사장이
“야, 장사 죽이는데.”
하면서 만두소배달을 왔다. 도연씨의 성격을 잘 아는 슬비씨가 미리 소를 부탁해 꼼짝달싹 못 하게 한 것이었다. 그렇게 저녁 여덟 시가 넘어서야 가게를 마무리하면서 한참 떨어진 돼지국밥집에 저녁을 시켜먹었다. 낮에는 모두들 찐빵이나 왕만두 한두 개 씩으로 점심을 때운 것이었다.
“매일 이렇게만 장사되면 금방 부자 되겠어.”
슬비씨와 둘이 금고를 열어 열심히 돈을 세던 영신씨가 입이 헤벌어졌다.
“이모님, 얼만데요? 100만 원 넘어요?”
“응, 큰돈만 백만 원 넘네. 천 원짜리 하고 동전보태면 한 20만원 더 되겠네.”
“예. 그 천 원짜리 하고 오백 원짜리 동전을 합해 십만 원은 장사밑천으로 미리 넣은 건데요.”
“그거 빼고도 10만 원은 넘겠네. 백십만 원 매출!”
하면서 와아, 박수를 치는데
“이 집에 장사 좀 했나?”
빙글빙글 웃으며 반여동 황서방이 들어서자
“엄마야, 당신 오늘 일찍 마쳤는가베?”
“그래. 얼마나 장사가 잘 되는지 궁금해서 일이 되어야지.”
하는 순간
“영아야, 나도 왔지롱.”
차복씨도 소주를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나타나고
“우리 슬비가 이라다가 벼락부자 되는 거 아이가?”
외삼촌 갑린씨도 나타난 것이 셋이 미리 약속을 한 것 같았다. 가게 문을 반쯤 걸어 장사가 끝남을 알리고 남은 만두를 쪄 만두 빚는 테이블에 술판을 벌려 도연씨까지 넷이 축하주를 마셨다.
그 시간
“이만하면 만두 맛은 엔간한데 장사는 좀 되는가 모르겠네?”
“설마 만든 물건이야 다 팔겠지. 개업 날인데.”
만두와 찐빵 몇 개를 놓고 영순씨와 순란씨 모녀가 하나가 궁금하다면 응수를 하고 시간이 한참 지나면 또 반대로 묻고 대답을 하더니 마침 운동을 나갔다 돌아온 열찬씨에게
“참 팔자도 좋소. 당신은 궁금하지도 않소? 장사가 어떤지 딸네미가 밥은 안 굶을지?”
영순씨의 힐난에
“원래 딸네 집 이사하고 개업에 친정아버지는 안가는 거야.”
시치미를 떼지만 궁금하기는 마찬가진데 낮에 여보산악회의 강해순씨와 백춘기씨가 만두가게에 들러 만두를 넉넉히 사서 두 집 내외는 물론 세창운수직원 7명에게 두루 먹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영순씨가
“언니, 맛은 어떻데?”
“응, 김치만두, 고기만두가 다 맛이 좋데. 찐빵은 없는 사람 요기용이라 좀 퍽퍽하고 그렇지만.”
“그럼 먹을 만 하다는 말이네.”
“그렇지. 그런데 음식보다는?”
“응? 누가 불친절하거나 무슨 불만이 있던가?”
“그게 아니고 가게도 깨끗하고 종업원들이 하나같이 젊은 미남에 미인들이라는 거지.”
“응. 그 거사 개업집이라 새 인테리어에 새 유니폼을 입어서 그렇지.”
“응. 그래도 이모들 인물이 출중해. 사위도 보통 미남이 아니고.”
“응, 우리 홍씨자매들 인물이 좀 그렇지. 우리 도연씨도 보통 버틀이 아니고. 그런데 우리 슬비 예쁘다는 사람은 없어?”
“슬비는 아직 학생같이 어리고 귀엽데.”
“그런가?”
개업의 여운이 남은 이튿날은 한 80만 원 정도를 팔고 그 이튿날은 70만 원, 다음날은 60만 원으로 매상이 떨어지더니 마침내 50만 원을 겨우 채우게 되면서 슬비씨의 얼굴에 먹구름이 끼었다.
“안 되는데. 최소한 50만 원은 넘어야 장사 밑지지는 않는데.”
평소에 대범한 성격에도 애가 타는 모양이라 각종비용 중에서 인건비가 제일 부담일 것이라는 생각에
“설마 내일은 장사가 좀 되겠지. 어제 그제는 너무 날씨가 추웠잖아? 행인도 적고.”
결백주의 영순씨도 애가 바싹바싹 타는데 다행히 이튿날은 날씨도 풀리고 매상도 올라가 70만 원선이 넘었다. 장사가 끝나면 잔돈 10만 원을 빼고 모든 현금을 집에 들고 와 슬비씨가 장부를 정리하고 도연씨가 농협에 예금시키는데 늘 매상액이 궁금한 영순씨가
“오늘은 좀 어땠나?”
딸에게 조심스레 물으면
“그럭저럭.”
“아이구 답답어라. 그럭저럭이 얼매고?”
“그냥 밥 묵을 만큼.”
궁금하기는 하되 굳이 샅샅이 알고는 싶지 않아 선문답하듯 하고
“당신은 참 속도 좋소. 딸네미 개업해서 장사가 되는지 안 되는지, 밥은 묵을지 못 묵을지 애가 바싹바싹 타는데 당신은 그냥 천하태평이니 말이요?”
영순씨의 채근에
“하루아침에 배부른 장사가 있나? 다 세월이 지나고 단골이 붙어야 되지.”
하고 산책을 한다고 나와 천천히 수영강을 걸어 온천천으로 꺾었다. 아직 찬바람이 생생 불지만 잔디밭위로 노란 햇살이 비치다 아파트 그늘로 끊어지기를 반복하는 온천천변을 한참이나 걸어 농구장을 지나고 세병교에 닿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쉼 호흡을 했다. 사실 겉으로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라며 대범한 척 해도 그 놈의 순진하고 소심한 본성이 조그만 일에도 단번에 얼굴표정으로 나타나는 열찬씨가 개업당일부터 손님은 얼마나 있는지, 처음 하는 장사에 당황하거나 큰 차질은 없는지 궁금해 저도 몰래 발길이 언덕에서 가게가 보이는 지하철 동래역 쪽으로 향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가게에서 일하는 딸이나 사위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또 손님이 하나도 없어 한참이나 파리를 날리는 모습이면 어쩌나 싶어 번번이 세병교아래서 발길을 돌리는 것이었다.
내 오늘은 기어이 현장을 보고 오리라 결심한 열찬씨가 또 한참을 걸어 마침내 인공폭포와 벽천(壁泉)을 지나 온천천언덕으로 올라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가게 쪽을 바라보니 아직 가게 앞에는 행인도 거의 없고 안쪽에는 한참 만두를 만들고 가게 앞에는 딸만 가끔 고개를 내밀어 행인을 살피다 도로 들어가는지라
(아이쿠!)
저렇게 손님이 없어서 어떻게 밥을 먹나 싶으면서 시계를 보니 아직 오전 열시반이라 배고픈 시간이 아니라 손님이 없겠지 하면서 발길을 돌리는데 그만 눈앞이 캄캄하며
(내 이래서 우리 가열찬패밀리 중에는 사업이나 장사하는 사람이 없이 그냥 월급쟁이로 살자고 했는데, 이 무슨 꼴이야?)
하다
(전들 어쩌랴? 회사가 문을 닫아 그런 걸...)
하며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언짢았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영순씨가
“당신 출출한데 만두 쪄서 소주 한 잔 할랑교?”
하며 가스레인지를 켜는데
“나는 당분간 만두 안 묵는다! 당신이나 먹어.”
“안 묵으면 그만이지 와 그래 성을 내요?”
“...”
뭐라 말 할 수도 없이 울컥한 기분이 되어 서재에 들어가 문을 쾅 닫아버렸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