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79)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9장 물만골의 으뜸 농부(6)

이득수 승인 2024.08.13 16:53 의견 0

김씨성을 가진 통장님과 육군중위 출신으로 월남전을 다녀온 것을 세상최고의 영예로 아는 이호열씨와 아주 평범하고 소심한 윤씨, 이 세 사람이 지금까지 교장선생을 도와 물망골 꼭대기 400여 평의 농사를 짓는 중심세력이었다. 그들은 수시로 교장선생의 호출을 받아 밭에 물을 주고 식수로까지 사용하는 개울물을 300미터도 넘게 비닐파이프로 끌어와 오각정을 가득 채우고 자연스레 흘러넘치게 하는 일, 진입로오솔길의 풀을 벤다든지 무너진 밭둑이나 도랑둑을 보수하는 일 등을 맡았고 어떤 때 파이프에 물이 나오지 않으면 오각정에서 취수구가 있는 작은 폭포 밑에까지 어디 선이 끊어졌는지 뒤틀어져 막혔는지 또 취수구의 입구가 흙이나 낙엽으로 막혔는지 점검을 하고 고쳐야 되는데 재미있는 건 파이프가 막히는 대부분의 사고가 주로 1급수에 산다는 지표 종(種) 가재가 들어가서 막힌다는 점이었다. 거기다 봄에 씨를 뿌리기전에 삽으로 밭을 파야 되는데 삽질을 하던 교장선생이 자꾸만

“아이구, 허리야. 한해 두해가 다르네.”

하고 세 사람이 막걸리를 마시거나 통장님의 부인과 친구한 명과 윤호열씨가 점에 10원 고스톱을 치는 위쪽의 막사를 힐끗힐끗 쳐다보면 직선적인 성격에 입까지 건 이호열씨가

“쳐다보지 말고 모른 척 해. 자기 누님이 농사지을 땐 지세한 푼 받지 않고도 조그만 일이 있거나 삽질 몇 번만 해 줘도 삼겹살파티, 닭백숙파티를 벌이고 막걸리를 권하고 했는데 저 양반은 실컷 일을 시키고 다문 국수 한 그릇도 자기가 얻어먹기만 하지 골아터진 밀감 한 알을 주는 법이라고 없으니.”

하며 아래쪽을 쳐다보지도 말자면서 묵묵히 술을 마시는데 어느새 교장선생 부인이 살금살금 올라와서

“아이구, 우리 미나리 밭이 새파랗게 보기도 좋네.”

들으라는 듯 말하자

“사모님, 오셨어요? 파전이라도 한 점 하실랍니까?”

통장님과 부인은 나이가 교장선생내외와 두세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도 깍듯이 말을 높이는데

“내가 시방 파전이 목에 넘어가겠어요? 팔순노인 영감이 삽질을 한다고 날숨들숨 숨이 넘어가는 판에.”

하며 세 남자를 차례로 훑어보며

“하기는 한 나이라도 젊을 때 먹고 마시고 놀아야지. 우리 같이 늙어지면 무슨 소용이 있나?”

염장을 지르자 마음이 여린 윤호열씨가 화투장을 놓고 통장님을 바라보자

“교장선생님 올라오시라 하지요. 파전이나 좀 자시고 있으면 이따 우리 셋이 삽질을 해주겠다고 말입니다.”

하니 아직도 못마땅한 얼굴의 이호열씨가

“교장선생님! 교장선생님!”

우렁우렁 굵은 목소리로 외쳐 불렀다. 이윽고 교장선생이 올라오자

“교장선생님, 파전이라도 한 점 하시지요.”

자리를 내어주며 젓가락을 건네는 이호열씨를 보고

“젊은 사람들 술안주 축낼 일도 아니고 술도 안 먹는 내가 괜히.”

하고 손을 내저으면서도 어느 새 나무젓가락을 찢어 우물우물 파전을 먹는 속도가 여간이 아니었다. 이윽고 목이 메는지 “그 막걸리를 소주잔으로 한 잔만 딱 주소.”

하고 내외가 부지런히 파전을 먹다 문득 교장선생이 씹기를 멈추더니 쾌액, 손바닥에 파전이 잔뜩 묻은 틀니를 뱉어 한참 들여다보더니

“그 찬물 한 바가지.”

해서 바가지에 틀니를 담가 슬슬 씻어서 다시 입안에 넣으며

“아이구, 이래서 늙으면 죽어야지.”

하며 딴청을 부리자 가뜩이나 비위가 약한 김여사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원두막 밖으로 나가는데

“그 땅세 말이야. 작년에 가국장이 우리 밭 귀퉁이 소나무그늘로 농사도 잘 안 되는 밭에 6만원을 줘서 올해는 박성철씨가 그만 둔 밭을 주면서 그대로 6만원을 받고 다른 사람도 그래 했는데 밭의 가치로 따지면 다른 사람들은 10만원을 내어도 싼 편이지. 내가 이국장에게 이야기 하면 한 4만원 안 올려줄 사람도 아니고.”

묘하게 사람의 염장을 긁더니

“단돈 6만 원을 내고 이 넓은 밭에 원두막까지 지어서 신선놀음을 한다면 그까짓 10만 원이야 껌 값이 아닌가?”

당장이라도 지세를 올릴 기센데

“이 국장이 올라오는 바람에 온 골짝 밭들이 모조리 소작료를 내는 판국인데 자꾸 올리면 누가 좋아하나? 우리가 농사지어 묵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좌우간 가

이 국장인가 나발인가 하나가 올라와서 골짜기 물을 다 베려놓네.”

얼굴이 벌개지며 이제 대신삽질을 해주려고 일어서는 윤씨의 팔을 잡아당겼다. 안 그래도 유방암에 걸린 아내를 먹이려 자기 밭에 가시오가피와 두충나무를 심은 이호열씨에게

“남의 땅에 농사를 지으면서 함부로 나무를 심는 것은 옛날부터 금기사항이지. 이렇게 주인 몰래 심어놓고 나중에 밭 내어놓으라면 나무 값 내어놓으라고 할 건 아니지?”

“설마 그럴 리가요? 집사람 찔레엄마가 몸이 아파서 어떻게 한번 살려보려고 그런 거지요.”

하고 겨우 모면했던 이호열씨나 방금 내외가 파전을 두 개나 먹고서 주인승인도 없이 무단히 원두막까지 지어 신선놀음을 한다고 윽박지르는 교장선생이 못 마땅해 장화까지 신어놓고도 선뜻 삽질을 하려 일어서지 않는데 마음이 여린 윤정균씨가 이미 도랑둑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하자 마지 못 해 일어나는데

“아이구, 우리 미나리가 오지기도 하제? 미나리 좀 주까?”

교장선생 부인이 말하자

“됐어요. 누가 뭐 미나리 못 먹어서 환장한 것도 아니고.”

얼굴이 벌개지며 핏대를 올리는 이호열씨를 통장님이 말렸다. 이호열씨가 화를 낼만도 한 것이 이호열씨 밭과 통장님의 원두막사이에 있는 원래 미나리꽝자리는 마치 고구마처럼 길쭉하고 가운데가 높은 바위가 하나 놓여 있어 그 바위에 의지해 깻묵을 넣어 띄우는 커다란 드럼통이나 농기구나 농약, 자루나 비닐 끈, 씨앗 따위를 넣어놓는 벌건 고무 통을 세워놓고 비 맞으면 녹이 쓸기 쉬운 삽이나 농기구를 세워놓고 갑바로 불리는 천막지로 덮어놓는 허드레공간이었는데 지난 해 자신의 밭 꼬리 일부를 열찬씨에게 세를 준 교장선생이 올라와

“갑자기 땅이 줄어드니 허전하네. 노인네들 소일할 거리도 마땅찮아 여게 미나리나 좀 심어볼 테니 이번 주까지 좀 정리해주소.”

하고는 날마다 올라와

“아직 안 치웠네. 사람 말이 말 같지 않나?”

독촉이 심해 각자 자기 밭의 귀퉁이로 치워주자 길쭉한 바위주변을 파헤쳐 둑을 만들고 물을 끌어들여 미나리를 심고는

“자, 이 미나리꽝 좀 봐. 옛날부터 동래미나리가 유명한데 이 미나리꽝은 생긴 것이 길쭉한 데다 가운데 한라산처럼 높다란 바위산이 있으니 제주도미나리꽝으로 부를 거야. 어때요? 제주도 미나리꽝이.”

가뜩이나 부아가 나는 이호열씨의 속을 한 번 더 긁었다. 그 이튿날 셋이 모여 막걸리를 마시면서

“우리 찔레아빠는 세상의 삼대심술을 아나?”

차분하고 점잖기로 소문난 통장님이 씨익 웃으며 말을 꺼내자

“내 3대 거짓말을 알아도 3대 심술이란 말은 처음인데요.”

“그럼 우선 3대 거짓말부터 복습을 하지?”

“예.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것하고 노인네가 죽고 싶다는 것하고 장사가 본전 밑지고 판다는 것 말이지요.”

“그럼 3대 심술은?”

“뭐 놀부심술, 옹고집심술, 자린고비심술인가?”

“아, 그건 심술이기보다는 욕심쟁이에 구두쇠이야기지. 자, 내가 이야기할 테니 잘 들어보라고.”

하고는

“먼저 며느리 갈구는 시어머니심술은 하늘이 내린다고 하잖아? 아무리 착하고 어진 시어머니도 며느리만 보면 여우가 되고 호랑이가 된다고.”

“맞아요. 전에 이 국장한테 들었는데 자기 처이몬가 누군가 언양의 안늙은이 하나가 며느리를 보자 자기아들이 자기를 대하는 것이 영 소홀하자 ‘이 노무 자식아, 니는 인자 하는 궁가리 생기니까 나온 궁가리는 쳐다보지도 않나?’라고 역정을 내었다고 말입니다.”

하는 순간

“아이구 입도 걸제? 찔레엄마는 저 욕쟁이 시궁창 옆에서 우째 평생을 살았노? 명색 교육자아버지란 사람이?”

끝내 초등학교교사인 딸까지 욕을 먹이는데

“그럼 두 번째는?”

이호열씨가 들은 척도 않고 묻자

“다음 장사꾼 동업자들 시샘이지. 장사꾼 시샘은 십 원을 두고 백리를 간다고 커다란 식당이나 가전제품대리점, 통닭집을 하는 점포 주인들도 그렇지만 장바닥에 전을 편 보따리 장사, 채소장사 할매들도 그렇게 시샘이 심하다고 하잖아?”

“그러게요. 다음 또 하나는?”

“그게 주인이 세준 사람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것이라네. 가게를 세준 건물주는 세입자가 돈을 잘 벌면 예외 없이 점포 세를 올리거나 점포를 비우라고 해서 자기가 경험도 없는 장사를 하다 가게도 망하고 집세도 도로 떨어뜨리기 일쑤지. 또 옛날 시골에서 자기 집에 머슴을 살거나 문간방이나 아래채에 섭포살이(夾戶)을 하던 사람이 팔자를 펴면 ‘지가 언제부터 저래 잘 나갔나? 남의 심부름이나 하던 근본도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그 시샘 중에서 가장 심한 것이 땅주인이 소작농에게 하는 시샘인데 소작인이 농사를 잘 못 지으면 소출의 반을 가르는 세곡이 적다고 짜증을 내는 정도지만 반대로 농사를 잘 지어 소출이 많으면 자기도 도조(賭租)를 더 받아 좋으련만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어 만약 세를 주지 않고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지으면 그보다 더 많이 소출을 올릴 것만 같아서 말이야.”

“그럼 우리 이 국장이 큰일이네. 올해 마늘과 양파가 엄청 잘 되었던데.”

“그러게 말이야. 거기다 교장선생의 마늘과 양파가 형편이 없으니 그게 더 걱정이지.”

“그야 당연한 결과지요. 가국장은 인터넷검색을 해서 마늘농사법을 보고 땅도 깊이 파고 거름도 많이 넣고 간격도 10센찌가 넘도록 하고 마늘종자도 굵은 걸 쓰는데 교장선생은 땅도 그냥 호미로 콕콕 쫒고 거름도 안 넣고 간격도 5센찌도 안 되는데다 마늘종자도 손톱만 한 걸로 심었으니.”

“그걸 알면 양반이지. 양파도 가국장 건 제법 굵던데 교장선생이나 우리는 대부분 말라죽고 살아남은 것도 양분이 없어 배배 틀렸으니 괜히 시샘만 터분을 하겠네.”

“그도 그렇지만 같은 밭에 나란히 심은 고추도 차이가 많이 나던데?”

“보다 못해 이 국장이 밭도 뒤져주고 농약도 같이 쳐주는데 고추 묘는 하늘과 땅 사이잖아? 이국장 당신이 이 골짝에서 생전처음 분무기까지 사서 농약을 치며 제대로 된 고추농사를 처음 시작하는데 교장선생고추는 왜 저모양이냐고 물어보니 자기는 종묘사에서 개당 300원짜리 튼튼하고 소독도 잘 된 고추 묘를 샀는데 교장선생은 시장바닥에서 100원짜리 놀놀하게 비루먹은 걸로 사서 그렇다고 말이야.”

“아무튼 가국장이 참 딱해. 점잖은 부인도 그렇고. 사십이 되기 전에 동장부인으로 사모님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이 교장선생내외를 대하는 것이 마치 친딸 같다 잖아. 날마다 커피를 끓여주고 우유와 만두를 대접하고 다문 컵라면이라도 점심을 대접하지 못 하면 꼭 식당에서 사먹인다 잖아?”

“그러게 말이야. 이튿날 꼭 우리에게 이빨이 안 좋아 씹지를 못 한다고 연한 고기 보신탕이나 곰탕을 사줘서 잘 먹었다고 자랑이 늘어지는데 그게 우리보고도 사달라는 소리도 같고.”

“좌우지간 욕심은 많고 염치는 없지. 자기아들이 울산에서 병원 개업할 때 우리들에게 초청장 보낸 거 봐? 우리야 바쁘다는 핑계로 5만 원씩 봉투에 넣어 미리 보냈는데 박성철씨가 아무 기미가 없자 저녁마다 전화를 해서 압박을 넣었다잖아? 당신하고 나하고가 그럴 사이냐? 내 밭을 무료로 경작한 햇수가 얼마냐고 따져 가고는 싶지만 차편이 없다고 하니까 자기차로 태워준다고 데리고 가면서 박성철씨가 5만 원짜리 봉투를 주니까 적다고 아우성을 쳐 기어이 10만원을 받았는데 지난 번 지대(地代)를 내라고 할 때 그 일을 생각한 박성철씨부인이 그렇게 계속 끌려가다가 나중엔 땅세를 2,30만 원씩 요구할까 싶어 경작포기를 했다는 구먼.”

“그랬지.”

“그런데 재미있는 건 농사를 그만두고 거름통이랑 농기구를 치우지 않자 그걸 빨리 안 치운다고 정 안치우면 업무방해로 민사소송을 건다고 협박을 했다더군.”

“좌우간 대단해. 교장선생까지 지낸 분이 어째 그리 인색하고 포용력이 없는지.”

“아무튼 우리 이국장이 사람만 좋아 제 것 주고 뺨 맞는다고 앞으로 고초가 클 거야.”

“그러게 말이야.”

입 살이 보살이라고 마침내 세 사람의 걱정이 조금씩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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