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물권색 이야기가 있는 저곳의 다섯 특징
1. 일찍 들어오고 늦게 들어오고 선후배 없이 다 똑같은 동등한 존재다. 존대말 없이 서로 말을 터도 된다.
2. 살아생전에 언제 어디서 살았던 다른 지역에 대해 대충은 안다. 시공간 초월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다.
3. 이승에서의 집착을 다 비워 버려야 하지만 아직 미련이 있다. 물권색 욕망이 강한 인간의 관성 때문이다.
4. 한 방에서 이성끼리 대화하다 방이 바뀌며 이성 상대가 바뀐다. 덕분에 저곳에서의 생기가 은근히 살아난다.
5. 저곳에서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최종 정착지가 정해진다. 그러니 저곳은 중간 경유지가 된다.
22. 을식과 유경
나 을식은 내가 보기에도 엄청난 대단한 남자야. 난 천민 출신이야. 아버지가 양반이더라도 어머니의 신분에 따른다는 종모법에 따라 아버지는 양반이었지만 내 어머니께서 천민이었기에 나는 양민 엄마의 아들인 서자보다 못한 얼자로 태어났어. 최하 밑바닥 계층이었지. 아무리 똑똑해도 신분상승을 할 수 없었어. 하지만 나는 신분상승의 의지와 욕구가 아주 컸어. 얼자 신분을 벗어나려면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그야말로 열심히 살았어. 그러다 나는 기적과 같은 행운으로 왕의 신임을 받게 되었어.
내가 보기에도 너는 전혀 천민 출신으로 보이지 않은데 천민으로 태어났구만. 거참, 희한한 요상한 제도 때문에. 아니 아버지가 양반이더라도 어머니가 천민이면 천민이라고…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딨어. 제기랄! 아버지는 아무리 천민 여자를 통해 나은 아들이라고 해도 자기 씨를 받은 아들이니까 정이 갈텐데… 갈 수 밖에 없는데… 그러니 이왕이면 자기 자식을 양반으로 할텐데. 양반이 아니면 양반 애래 천민 위인 양민(良民)으로라도 할텐데… 세상에 어디 그런 개콧구녕같은 제도가 생겼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네. 내가 너보다 무려 2300여년 전에 살았는데 우리 때는 그런 게 없었어. 누가 그런 개떡같은 제도를 맏들었대? 말이 안되? 그런데 아무튼 너 참 대단하다. 어떻게 그런 신분천장을 뚫을 수 있었지.
나는 천민으로 태어나 왕 중심의 권력층 상층부에 도달했는데 그 상승된 신분을 오랫동안 유지했다는 게 더 대단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사 시간에 꼭 외우는 게 있는데 왕의 시호 앞글자를 연달아 부르는 것이야.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면광인효현숙경영정순헌철고순. 1392년 조선이라는 나라의 창업부터 1910년 대한제국 멸망까지 전주 이씨 성을 가진 왕들이 지배한 518년 기간 동안 27명의 왕들이야. 나는 이 중에서 7번째 왕인 세조 때 발탁되었어. 얼자가 왕의 신임을 받아 발탁된 거지. 11대 중종 때까지 유지했어. 그게 어떻게 가능했냐 하면? 좀 옆으로 빠지는데 이 얘긴 하고 지나 가야겠다. 당시에 저 북쪽 지방에서 난이 있었는데 나는 궁궐문을 지키는 갑사 주제에 왕한테 상소문을 올렸어. 내가 어떤 양반을 위험에서 구해주었는데 그래서 나를 비호(庇護)하는 그 양반 덕분에 그 상소문이 왕한테까지 올라갔어. 왕은 내가 올린 상소문을 보고 감탄했대. 나는 난을 진압하는 공도 세웠어. 이후 왕은 얼자인 나를 적극 비호하기 시작했어. 당연히 양반들은 반대했지. 하지만 상남자였던 왕은 나를 감쌌어. 덕분에 나는 얼자 주제에 무반도 아닌 문반 과거시험도 보고 왕의 특별한 배려로 급제했어. 벼슬을 한 나는 이후 씽씽 훨훨 날았지. 그런데 나를 보호하던 왕이 죽자 나는 다음 왕의 총애도 받았어.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데도 장군이 된 남이란 사람을 역모죄로 모함해서 죽게 했어. 왕이 그를 싫어 했었는데 내가 꾸민 모함으로 그가 죽었으니 왕은 나를 좋아했지. 내가 날 보기에도 난 엄청난 놈이야. 아무튼 늘 항상 언제나 그런 식으로 나는 왕의 총애를 받으면서 11대 왕인 중종 때까지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뀔 40여년 동안 권력을 누렸어. 내가 그 놈의 양반들 틈에서 살아나려면 그럴 수 밖에 없었어. 나는 생존술의 대가였지. 말년 때는 내가 그리도 증오하였던 양반들의 모함을 받아 유배지로 귀향을 가게 되면서 5년 동안 고생하면서 병으로 죽고 말았지만 내 인생은 파란만장했어. 그 기고만장한 양반 놈들 틈에서 나를 지켜 나가려면 어떻게 했는지, 아!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벼라별 걸 다 했어. 정치적 줄타기의 명수가 되었지. 양반 놈들은 내가 천민 출신이란 걸 알고 깔보았지만 나는 그들을 엿먹이기도 했지. 내가 머리를 교묘하게 써서 죽임을 당한 사대부 양반 놈들이 수백명이나 되. 사대부들이 죽임을 당한 사건을 사화(士禍)라고 하는데 조선 시대에 네 번이나 있었어. 무오사화, 갑자사회, 기묘사회, 을사사회인데 한국사를 배우는 학생들은 무조건 외우는 거야. 쉽게 말하면 시험에 나오는 거지. 이 네 번에 걸친 사화 중 최초의 것은 내가 주도적으로 일으킨 거야. 최고 권력자인 왕한데 고자질을 해서… 그러니 양반 놈들은 나를 얼마나 밉게 보았겠어. 그렇다고 왕이 나를 총애하니 어찌 손볼 수도 없고… 나는 오로지 왕한테만 잘 보이도록 민첩하게 처세했어. 나의 처세술은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어. 그렇게 나는 40여년 동안 그 놈의 양반 놈들과 대적하며 살아 남았지. 물론 말년 5년 동안에 그 양반 놈들 때문에 귀향을 가서 유배지에서 살았지만 그 전까지 나는 짱짱했어.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못했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얼굴없는 여가수인 시아(Sia)가 부른 ‘Unstoppable’이란 노래가 있는데 나는 그 노래 가사대로 멈출 수 없었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러고 싶은 마음이었지. “I'm unstoppable. I'm a Porsche with no brakes. I'm invincible Yeah, I win every single game I'm so powerful I don't need batteries to play I'm so confident Yeah, I'm unstoppable today.” 정말로 나는 이 가사대로 브레이크 없는 포르쉐였고 무적이었으며 모든 게임에서 이겼고 강력했고 자부심 충만했어. 권력을 향한 나의 행동을 멈출 수 없었어. 말년에 멈추긴 했지만 나는 그 전까지 70평생을 화끈하게 살았어. 내 인생을 다 연소하며 살았지. 대충 살지 않았어. 너 유경이도 나 만큼 치열하게 살았을까?
네 말만 들어도 네가 엄청난 인간이라는 게 전해져 오네. 느껴져. 대단한 남자네. 가장 밑바닥에서 쳐올라간 인생! 멋지다. 그런데 그렇게 올라간 네 자리를 지키려는 게 무지 힘들었겠다.
그 힘든 건 말도 못해. 고귀하신 양반 놈들이 보기에 내가 얼마나 꼴보기 싫었겠어. 특히 공부를 많이 하신 먹물들인 선비들이 보기에 나는 한마디로 개같은 놈이었을 거야. 어떻게 없어지면 좋겠는데 왕이 하도 총애를 하니까 어찌 할 수 없는 그런 놈… 내 하나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줄까? 내가 고을의 사또들인 군수들의 행정을 감찰하는 관찰사를 지낼 때 어느 고을에 들렀어. 거기 풍광이 좋은 정자가 있길래 내가 시를 하나 근사하게 지어서 정자 안에 현판으로 걸도록 했지. 내가 끗빨이 있을 때니 고을 사또는 내 분부대로 시행했지. 그런데 나중에 부임한 고을 사또는 어떤 꼰대같은 작자였다지. 그는 내가 쓴 시를 보더니 그게 미천한 내가 쓴 시라는 걸 알고는 이런 식으로 말했대. “얼자 출신 쌍놈 주제에 미천한 놈이 감히 내 나와바리에 와서 건방을 떨었어!” 그렇게 불같이 노발대발 화를 냈대. 내가 쓴 시가 담긴 현판을 당장 내리라고 지시했대. 그리고 현판이 당장 아궁이에 불태워져 버렸다는 소리를 들었어. 그 시의 내용이 마음에 안들어서가 아니라 그 시를 쓴 장본인이 미천한 얼자 출신의 나라는 점이 싫어서 그렇게 했던 거겠지. 나는 그 현판이 불태워졌다는 얘길 듣고는 부들부들 떨었어. 그 자는 나보다 나이가 여덟 살이나 많았지만 관찰사였던 나보다 벼슬이 낮았던 처지라 내가 당장 어떻게 손볼 수는 있었지만 꾹 참았지. 조용히 복수의 칼날을 갈았지. 그 작자만 그런 게 아니라 조정에서 대감들은 그런 식으로 날 멸시하는 자들이 많았어. 내가 벼슬이 높으니까 대놓고 내 앞에서 그런진 못하더라도 속으로는 딴데서는 다 그렇게 나를 천하다고 깔보았겠지. 그런 속에서 내가 살아 남으려니 나는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러다 기회가 왔어. 나는 작은 단서라도 하나 붙잡으면 그 걸 어떻게 요리해서 나한테 유리하게 만들고 내가 복수할 놈들한테 치명적으로 만드는지 알아. 그 방면에서 나는 아마 세계 1위일 껄. 원래부터의 타고난 천부적 재능은 아니고 먹고 먹히는 죽고 죽이는 처절한 권력 세계에서 자연발생한 나의 후천적 재능이겠지.
아! 을식이 네가 그런 걸 잘 하는구나. 모함이라고 하지. 좋은 건 아닌데… 그런데 너를 욕보인 놈을 모함하는 거는 어쩔 수 없겠다. 그래 너는 어떻게 모함을 했는데?
맞아. 나는 모함(謀陷)의 천재야. 나쁜 꾀를 써서 남을 어려운 처지에 빠뜨리게 하는 모함 일에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어. 내가 어떤 모함을 했냐 하면? 나는 왕이었던 어린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된 왕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조정은 그런 왕을 처음부터 지지하며 비호하여 공을 세웠던 기존 훈구(勳舊) 세력과 시골 촌에서 글이나 읽다 발탁되어 벼슬을 한 신진 사림(士林)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어. 나는 훈구 세력과 가까웠지. 그 훈구 세력에 속한 어느 양반과 대화를 나누다가 나는 뭔가 큰 모함을 꾸밀 만한 단서를 알게 되었어. 그 양반은 조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는 사관(史官)과 사이가 좋지 않았어. 그 사관은 사림 세력과 가까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그 사관이 나를 총애했던 왕과 관련될 법한 글을 실록에 실었는데, 거기에 내가 쓴 시 현판을 불태워 버렸던 그 자의 글이 실려 있다는 거야. 그 글은 과거에 있었던 어떤 역사적 사건을 비유하여 나를 총애하던 왕을 교묘하게 비난하는 글이라는 거야. 그 글의 자세한 이야기는 복잡하니 몰라도 되. 그냥 나는 나를 멸시하며 깔보는 사림파 촌놈들을 족칠 엄청난 껀수를 발견한 거야. 당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무시무시한 권력을 행사하던 왕이 건방진 사림파 양반 놈들을 족치려고 눈 부릅뜨고 있을 때였지. 그 왕은 자신의 증조 할아버지인 왕이 사림파 놈들로부터 비난받았다고 하면 누구든 다 쳐죽이고도 남을 무서운 연산군이었어. 결국 나는 그 사실을 왕한테 고했어. 고자질한 거지. 왕은 불같이 화를 내며 내 예상대로 즉각 행동에 들어갔어. 사관(史官)이 쓰는 사초(史草)의 기록에 관여한 놈들은 다 죽였어. 그 자의 제자들을 포함해 6명이 참형에 처해졌어. 살얼음 능(凌)에 늦을 지(遲)을 쓰는데 살얼음처럼 얇게 살을 발라 치료약을 먹여 가며 며칠씩이나 최대한 늦게 죽이는 능지처참은 아니었어. 또 31명이 유배가고 14명이 파직 좌천되었어. 다 합해서 희생자가 51명이야. 사림들이 화을 입었다는 사화(士禍)의 시작은 내가 일으킨 거야. 왕으로서는 늘 자기한테 쓴 소리나 하는 그 꼬장꼬장한 사람파 놈들이 꼴보기 싫었는데 내가 고자질을 하니까 그 놈들을 숙청할 명분이 생긴 거고… 그렇게 자신의 권력을 더욱 무시무시하게 무섭게 굳히게 되었지. 물론 그런 권력의 말로는 안좋았지만. 일단 나는 내가 계획했던 복수를 했어. 왕을 분개토록 한 글을 쓴 자는 내가 쓴 시 현판을 불태운 자였는데 그는 무덤에서 끄집어 내졌어. 무덤 속 관을 쪼개 시체를 베는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했지. 그 때 얼마나 통쾌하던지… 그런데 희한한 게 그렇게 부관참시되어 죽었다 또 죽은 그 자가 나중에 사림의 영수로 추대되는데…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얼마나 부화가 치밀던지. 그런데 100여년 후 허균이라는 양반이 그런 꼴을 보다못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는데, 아! 내 맘에 딱 들어. 하도 나한테 위로가 되는 글이라 그 글에서 가장 중요한 마지막 대목을 직접 옮길게. 좀 길지만 들어봐. 정말로 허균은 엄청나 대단해!
“그러나 세상에서는 지금까지 계속하여 그 사람을 칭찬하고 있으니, 무엇 때문일까? 내가 가만히 그의 사람됨을 살펴보았더니, 가학(家學)을 주워모으고 문장 공부를 해서 스스로 발신했던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하고 마음은 교활하여 그의 명망을 높이려고 한 세상 사람을 용동시켰고, 임금의 들음을 미혹되게 하여 이록을 훔치는 바탕으로 삼았다. 이미 그러한 꾀를 부렸지만 자기의 재능을 헤아리니 백성을 편하게 하고 구제하기에는 부족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넉넉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하고는 자신의 졸렬을 감추는 수단으로 하였으니 그것 또한 공교로웠다. 그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짓고 주시(酒詩)를 기술했던 것은 더욱 가소로운 일이다. 이미 벼슬을 했다면 임금의 은총을 얻었건만, 온 힘을 기울여 임금을 꾸짖기나 하였으니 그의 죄는 더욱 무겁다. 죽은 뒤에 화란을 당했던 것은 불행해서가 아니라 하늘이 그의 간사하고 교활했던 것에 화내서 사람의 손을 빌어다가 명백하게 살륙한 것이 아닐는지? 나는 세상 사람들이 그의 형적(形迹)은 살펴보지 않고, 괜스레 그의 명성만 숭상하여 지금까지 치켜 올려 대유(大儒)로 여기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때문에 특별히 나타내어 기록한다.”
허균은 이 글로 인해 나중에 사람의 후예들로부터 엄청난 욕을 듣게 되지. 사림파 놈들은 허균의 살을 뜯어 먹어도 도무지 그 분이 풀리지 않는다고 맹비난했지. 그런데 나한테는 그를 아무리 칭송해도 과하지 않아. 허균은 양반이면서도 서자나 얼자들하고 친하게 지냈어. 나중에 그 일로 역모죄로 말려 말로가 처참했지만…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허균은 다 하고 있어. 눈물나게 고마워. 내 여기서 만날 수 있다면 나보다 나중에 태어난 사람이라도 엎드려 넙죽 절할 거야. 고맙고 고맙다고… 허균성님! 사랑해요.
아무리 고맙기로서니 너보다 후세에 태어난 사람한테 성님이라니, 사랑이라니! 너도 참 특이하다. 희한하다. 참 별나네.
난 원래 그런 사람이야. 나한테 잘 한 사람한테는 엄청 잘 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한테는 꼭 복수해. 난 파워풀한 남자야. 비록 말년에 귀향을 가서 시력을 잃으며 어렵게 살았지만 나는 오랫 세월 동안 권력의 최상층부에서 떵떵거리며 살던 사람이었어. 나를 싫어하는 양반놈들이 죽고죽이느라 드글드글대는 정글에서…
아무튼 여하간 여하튼 좌우지간 애니웨이 너의 그토록 강인한 생존력에 박수를 치고 싶다. 네가 선한지 악한지를 막론하고!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뀔 만한 긴 세월에 다섯 명의 왕을 거치며 얼마나 모질고 끈질긴 사연이 많았을까? 그런데 을식이 너는 너의 모함으로 죽어간 사람들한테 용서를 구하는 마음은 없는 거야?
여기 들어와서 그런 마음이 조금 들긴 했지만 나 살아생전에 그런 마음은 추호(秋毫)도, 일도 없었어. 그 놈들이 날 죽이려고 얼마나 날 못살게 굴었는데. 그렇지만 나랑 거의 동년배인 남이 장군한텐 미안해. 여기 없지? 날 보면 나 맞아 죽을 텐데... 아차! 나 죽은 몸이지. 헷갈려! 그런데 여기서 우리 어떻게 되는 거야?
도무지 모르겠어. 난 너보다 2000년 훨씬 넘게 먼저 들어왔는데도 몰라. 나중에 알게 되겠지. 아무튼 나 유경은 처참한 상태에서 여기 들어 왔어. 왕이었던 남편이 죽자 아들이 왕이 되었지. 난 왕비에서 왕대비가 되었지. 근데 쿠테타가 일어났어. 반란군은 내가 살던 성 안으로 쳐들어와 닥치는 대로 죽였어. 29살 아들인 왕도 죽이고 59세이던 나도 죽였어. 60년 세월을 한 바퀴 삥 돌기 2년 전에 죽었으니 살 만큰 살았어. 그래서 억울하진 않아도 죽고 난 이후 억울해. 놈들이 나를 성 위에서 아래로 던져서 나는 그대로 땅에 떨어져 즉사했지. 사람은 죽으면 다 억울해. 내가 아무리 나쁜 일을 저질렀다고 해도 나를 죽인 저 놈들은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까? 저 놈들은 지들이 이겼다고 우리 쪽 사람들을 천 명 가까이 마구 죽인 사람들이었어. 나를 죽이기 이전에도… 극악무도한 놈들이지. 그런데 역사에는 나만 나쁜 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그게 제일 억울해. 날 인류 최고의 악녀라는데 어이가 없어. 내 딸 얘기 좀 할께. 그런데 밖이 소란스럽네. 잠깐만!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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