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종, 마지막 숨소리
이 용 희
앓고 있는 지구를 본다
엊그제 수북했던 쑥밭에서
서걱거리는 갈대를 본다
침범한 외계생명체
이름표도 없이 반짝이는 눈 알
그 앞에 서서
이제 숨 쉬는 것들의
마지막이라는 숨소리를 듣는다
어머니 누우시던 그날같이
시간은 달처럼 미끄러져 바다에 빠지고
생명은 연기되어 머리를 풀 텐데
누구도 사라지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마지막 지구는
눈이 부시어 바라볼 수 없는 해가 된다
내 눈의 반이 감기는 날
쓰러진 들꽃 일으켜 주고
휘어진 나무 가지 잡을 수 있다면
그 이별의 숨소리를 뒤로 물리고
끝 종 치는 시곗바늘 잡을 수 있을지 몰라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어머니의 고무신
되돌려 놓아 드릴 수 있을지도 몰라
- 시와사람, 2025. 봄 115
시 해설
올가미에 잡혀 있거나 앓고 있는 생명체를 보면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주는 사람들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굳이 성선설로 설명하지 않고도 남의 아픔에 동정을 가지는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안다. 시인의 시선은 ‘앓고 있는 지구를’ 향하고 있고 마지막 떠나신 분을 못 잊고 있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현상이겠지만 시인이 보는 ‘엊그제 수북했던 쑥밭에서 서걱거리는 갈대’는 자연계의 심각성을 나타내고 있고 미지의 생명체들에게 계속 위협받는 현실에 불안감을 느끼며 ‘마지막 숨소리’를 들은 시인의 마음이 편하지 않다.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도 연상하면서 생명을 품었던 시간은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연기처럼 사라짐을 본다.
우리가 울고 웃고 하는 이 지구는 언제쯤 종말이 올까, 아니 그러한 일이 정말 발생할까를 생각해 보지만 과학자들의 예측을 쉽게 발아들일 수가 없다. 곁에 있는 괘종시계의 마지막 종소리와 숨소리를 듣는 임종臨終 때에 기적처럼 기운이 되살아나서 들꽃도 세워주고 휘어진 나뭇가지를 잡을 수 있다면 종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 것이며 이별을 늦출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기적의 힘을 이어서 어머니의 마지막 숨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고 아기 같은 고른 숨을 쉬고 계신다면 그런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도 없어도 될 것인데 먼저 가신 어머니께 종소리를 다시 들여줄 방법이 없다.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