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란 시인의 양면일기 (12)무슨 마음이었을까

최정란 승인 2020.01.28 13:07 | 최종 수정 2020.02.05 12:09 의견 0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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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질문이 오래 남았다. 무슨 마음으로? 그는 왜 무심코 올린 한 장의 사진을 그토록 오래 곱씹으며 의문으로 간직했을까? 끝난 일이고, 그것도 일 년 전 일인데. 의도적으로 밉게 나온 사진을 다중에게 노출시키려는 사악한 마음이라도 가졌다고 생각한 것일까? 사진에 대해 곰곰 생각하게 된다.

더 이상 아무도 사진 찍히면 영혼이 빠져 나간다고 믿지 않는다. 사진은 사물과 사람 그리고 세계와 우주의 외면의 이미지를 기록한다. 그러나 사진은 결코 인간의 내면과 무관하지 않다. 사진은 단순한 외적 사실의 기록 이상이다.

특히 인물사진을 찍고 찍히는 것은 초상화 그리기를 대신하는 기술적 행위를 넘어선다. 정치적 행위이자 사회적 행위이며 상업적 행위이자 예술적 행위이다. 또한 일상적 행위이자 폭력적 행위이기도 하다. 호불호가 갈리는 모순적 행위이다. 많은 사진은 여러 성격이 겹쳐지거나 일부의 교집합을 지닌다.

정치적 의도에 따라 인물의 특정 표정과 상태를 드러낸 사진들이 노출된다. 상대적으로 비교되는 사진들이다. 정적의 사진은 가능한 사악하고 찌질하고 어두운 표정을 골라 방출한다. 지지하는 정치인의 사진은 가능한 자신 있고 아름답고 당당하고 환한 희망적 안색을 골라 보여준다. 필요하면 의상과 소품까지 함께. 정치적 사진은 자주 왜곡된다.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다. 진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진실을 은폐하기도 하므로 때로 기만적이다. 정해진 프레임에 따라 잘라 보여주는 편집을 통해 때로 진실이 때로 거짓이 잘려나간다. 때로 진실과 거짓은 뒤섞이고 뒤바뀐다.

사회적 의도를 반영하는 인물사진은 주로 발견된 순간의 포착이다. 변혁과 개량의 이슈가 된다. 부조리한 사회를 고발하기도 하고, 사회의 방향을 한 순간에 돌려놓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한다. 네이팜탄에 피폭된 거리를 발가벗고 달려가는 소녀의 공포에 질린 사진은 베트남전의 비극을 한 눈에 보여준다. 전쟁은 끝나야 한다. 최루탄이 머리에 박힌 채 진해 앞바다에서 발견된 청년 사진은 독재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일깨운다. 독재는 끝나야 한다.

터키 해변에서 엎어진 채 죽음으로 발견된 어린이의 사진은 살기 위해 탈주를 감행해야 하는 난민의 비극을 보여준다. 모든 이민자를 다 받아들여야 한다? 국가의 장벽을 무너뜨려야 한다? 이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인권, 가난, 내전, 이민, 장벽, 국가, 법이 뒤얽힌 문제의 복잡성은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 속에서 다시 뒤얽힌다. 이민자로 이루어진 나라인 미국 대통령의 태도 또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세계인의 인권은 쉽게 언급되지만, 동시에 자국민의 이익이 우선시된다. 브렉시트 후 영국에서 달리는 트럭 짐칸 포장을 찢고 탈출하는 두 이민자 사진은 해결책이 요원한 문제를 반복해 보여준다. 영국정부 입장에서는 단속하고 추방해야할 불법이민이지만, 이민자 입장에서는 목숨을 거는 위험하고 처절한 모험이다. 아이러니한 상황은 사회 도처에서 발생한다. 사회적 사진은 때로는 부조리하거나 아이러니하며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을 보여준다.

상업적 의도에 따라 쓰이는 얼굴 이미지는 환상과 욕망을 자극한다. 화장품 모델 사진은 그 의도가 바로 보인다. 광고하는 화장품을 사용하기 전의 얼굴과 사용하고 나서의 얼굴은 극적으로 달라진다. 그 과정에서 얼굴빛과 표정이 연출된다. 처진 입꼬리가 올라가고 우울하던 눈매가 환해진다. 광고는 짧은 시간에 욕망이 구매욕구를 움직일 만큼 강하게 인상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구매자의 내면의 환상과 욕망을 자극한다. 제품을 팔기 위한 물건의 이미지는 매출과 직결되므로 환상을 그려 보이는 사전 계획과 각본과 연출이 요구된다. 기업이미지를 위한 상징이나 기호가 얼굴사진에 덧붙여진다. 브랜드 밸류, 네임 밸류가 함께 소비된다. 정치적 사진과 마찬가지로 비교되는 사진이 자주 쓰인다. 정치인 사진은 자주 외부 정치인과 비교되어 쓰여지고, 화장품 모델 사진은 한 사람을 사용전과 사용후 시간상 순서로 비교한다.

예술적 의도의 얼굴사진은 궁극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기록된 진실로서의 아름다움이 있다. 아름다움의 정의는 다양하다. 지금은 추ugliness도 미학에 포함하니 아름다움은 포괄적이고 범위가 넓다. 얼굴의 팽팽함 못지않게 늘어진 주름살도 아름다움이다. 오드리 헵번의 컴퓨터 칼날로 깎은 듯 단아한 젊은 날 프로필 사진 못지않게 노년의 주름살 많은 얼굴도 아름다움이다.

한국전쟁 전후의 국제시장을 비롯한 부산 전역에서 건져 올린 최민식의 얼굴사진들은 폐허의 절대빈곤의 한 시대를 관통하는 목소리가 된다. 정신과의사 사진작가 백성욱이 찍은 우울한 얼굴들은 이 시대의 우울과 트라우마를 증언한다. 진실의 아름다움은 시대의 급소를 찌르는 푼크툼이 된다. 나아가 한 개인의 기록을 넘어 한 시대의 기록이 된다.

무슨 마음 이었을까? 당연히 정치적 의도도, 사회적 의도도, 상업적 의도도, 예술적 의도도 없다.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굳이 이유라면 시간에 쫓긴 어설픈 책임감이었을까. 시간에 쫓겨서 하는 일은 안하느니만 못할 때가 있다. 책임감에 하는 일은 안하느니만 못할 때가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욕심이 되기도 한다.

일상의 기록이 폭력이 되기도 한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모두 폭력이다. 현대인에게 사진은 일상이다. 스마트폰에 장착된 간편한 자동사진기 덕분에 누구나 기록사진사, 사진예술가, 사진기자가 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누르기만 하면 훌륭한 사진이 생성된다. 그러나 일상이 된 것들은 주의하지 않으면 무심하게 되고 남발하게 되고 과잉이 된다. 천덕꾸러기가 되어 떠도는 쓰레기 사진이 많다. 드물어야 귀하다. 쓸데없는 말을 내뱉지 못하도록 혀끝을 단속하고 삼가듯,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끝도 단속하고 삼가야 할 끝의 리스트에 포함시킨다.

무심코 하는 일상행동들을 돌아본다. 일상에서 무심히 하는 행동으로 상처 준 일은 없는지. 무심코 던진 돌이 개구리에게는 치명적 한 방이 된다. 타인에게 무심함은 악이 된다. 무심한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기계적인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굳이 끌어오지 않더라도, 사유하지 않는 것에는 악이 쉽게 깃든다. 무심은 증오보다 더 나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뇌의 일인 동시에 가슴의 일이다. 더불어 사는 삶은 무심해야 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유심해야 할 것이다. 원효대사께서는 호불호를 포함한 세상사가 모두 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하시지만, 나는 다른 방향에서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유심에 한동안 더 머물러야 한다.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 무슨 마음으로? 두고 마음에 간직할 질문 하나를 얻는다.

최정란
최정란

◇최정란 시인은

▷경북 상주 출생
▷계명대 영어영문학과 계명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사슴목발애인< 입술거울> <여우장갑> <장미키스>
▷제7회 시산맥작품상, 2017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제19회 최계락문학상
cjr1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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