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란 시인의 양면일기 (13)프로필 사진

최정란 승인 2020.02.04 19:18 | 최종 수정 2020.02.05 12:08 의견 0
어떤 소녀의 프로필. 출처 : 픽사베이.

이따금 얼굴사진의 피사체가 된다. 사진을 대하는 태도는 때로 주체적 때로 타자적이다. 주민등록증, 여권, 운전면허증 사진은 사회적 신분을 증명한다. 신분증 사진은 공적인 기능을 가진다. 법적보호의 효력을 발휘한다. 모자를 벗고 정면을 찍는다. 얼굴의 구성요소들을 최대한 까붙이고 활짝 노출시켜야 한다. 눈, 코, 귀, 입의 위치와 크기를 포함한 얼굴의 구조가 타인과의 구별을 위한 도구적 목적에 종사한다. 정면 대신 측면, 얼굴 대신 전신을 찍히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어떻게 찍힐지를 자신이 결정할 수 없다. 장점을 강조할 수도 없고 단점을 은폐할 수도 없다. 신분증 사진의 규격은 국가가 결정한다. 자신의 취향과 의도를 반영할 수 없는 차원에서 타자적이다.

프로필 사진의 피사체는 좀 더 주체적이 된다. 프로필 사진은 신분증 사진보다 자유롭다. 규격이 따로 없다. 어떤 형식이 정해져 있지 않다. 가령 약간의 형식을 요구하더라도 융통성 있게 원하는 스타일로 찍을 수 있다. 강제성이 없다. 공적 법적 효력이 없다. 자율적이고 사회적이다. 소통에 종사한다. 자유롭다. 선택의 여지가 많다. 사회관계망서비스 상에서 수시로 갱신할 수 있다. 프로필 사진의 선택과 갱신은 자신의 사진을 대하는 적극적이고 주체적 태도를 학습시킨다.

몇몇 위대한 사람의 프로필 사진은 그를 상징하는 사물과 함께 남는다. 그들의 말은 위대한 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삶에 후광으로 빛난다. 간디의 민머리의 동그란 뿔테안경은 그의 ‘무저항 비폭력’의 상징이 된다. 링컨의 턱수염은 노예해방과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단숨에 기억하게 하는 기호가 된다. 체게바라의 덥수룩한 머리 위에 얹힌 베레모는 남미 민중을 향한 그의 사랑과 열정을 보여주며,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전세계에 외친다.

선거 때면 피선거권자의 큼직한 프로필 사진이 각종 이력과 함께 포스터로 나붙는다. 오랫동안 프로필 사진은 정치인, 배우 같은 유명인의 독점물이었다. 보통사람이 가지지 않은 특별한 어떤 것이었다. 카메라가 장착된 스마트폰이 대거 보급되고 난 후 보통사람도 프로필 사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누구나 프로필 사진을 생성할 수 있다. 원할 때마다 프로필 사진을 갱신할 수 있다.

프로필 사진에는 자신의 이미지를 자기가 내보이고 싶은 방식으로 보여주려는 욕망이 투영된다. 실재의 이미지, 찍혀서 사진으로 보여지는 이미지,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는 대부분 일치하지 않는다. 프로필 사진에는 자신의 상상적 이상적 이미지가 투영된다.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욕망이 투영된 사진, 강해 보이고 싶은 욕망이 투영된 사진, 젊어 보이고 싶은 욕망이 투영된 사진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필 사진은 외부의 어느 한 지점을 보여주는 사진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내면을 보여주는 사진이기도 하다.

사진은 빛과 그림자의 놀이다. 조명과 각도에 따라 수백 수천 가지 이미지들이 만들어진다. 빛이 알맞게 비춰주어야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사진은 아무리 잘 찍어도 왜곡된 이미지이다. 삼차원의 인간을 이차원의 평면으로 고정시키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왜곡은 필연적이다. 차원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어떤 부분은 소실되고 어떤 부분은 부각된다. 부각되어야할 부분이 소실되고, 소실되어야 할 부분이 부각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진은 일정의 진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많은 진실을 은폐한다.

운이 좋으면 ‘얼짱각도’를 찾기도 한다. 사실 모든 사람에게는 그 만의 얼짱각도가 있다. 그 각도를 찾는 것도 이미지를 생성하는 한 방법이다. 외부에 내보이는 사진은 결국의 그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다. 같은 사람을 찍어도 위에서 내려찍으면 좀 더 젊어 보인다. 아래에서 올려찍으면 더 늙어 보인다. 빛이 골고루 비춰준 사진은 주름살이 적게 찍힌다. 빛이 한 방향에서 강하면 굵은 주름살이 두드러진다. 빛이 머리 위에서 어중간하게 들어가면 잔주름들이 도드라진다. 젊은 여성도 마녀처럼 보일 수 있고, 할머니도 백설공주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안 닮았잖아. 이 말은 프로필을 한 고정된 각도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이고, 프로필의 외부만 보기 때문이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들여다보면 프로필을 조금 더 깊이 읽을 수 있다. 프로필을 선택하게 되면서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 과정에서 때로 자신의 내면의 트라우마나 태도를 알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숨겨진 내면이 타인에게 노출된다. 프로필 사진은 이미지 그 자체보다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을 통해 내면의 태도를 드러낸다.

사람 얼굴 대신 꽃이나 반려동물 사진을 올린 사진이 있다. 식물이냐 동물이냐에 따라, 내면의 고요한 식물성과 명랑한 동물성이 짐작된다. 손주의 귀여운 사진을 올려놓은 프로필에는 감출 수 없는 자부심과 자애심이 넘쳐난다.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자신의 DNA가 들어간 아이를 통해 그는 생물학적으로 한 세대 더 삶이 연장된 것이다. 단체사진을 프로필로 올려 누가 본인인지 명확히 알 수 없도록 물 타기 하는 사진도 있다. 타인의 얼굴을 가져와서 자신인 척 하기도 한다. 타인의 얼굴을 자신의 가면으로 쓰는 욕망은 읽기가 힘이 든다. 자신을 부정하고 타인을 사칭하는 마음에 들어 있는 것은 무엇일까. 존경? 사랑? 슬픔? 분노? 거부? 회피? 무엇을? 왜? 가면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슬프다. 얼굴을 도둑맞은 사람은 얼마나 난감할까?

상호 공개 원칙의 장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타인을 들여다보는 내면을 짐작해본다. 연결되어 있기는 하되, 얼굴을 내밀기를 원하지 않는 태도가 반드시 내향적인 것은 아니다. 수줍음일 수도 있고, 두려움일 수도 있다. 번거로움을 피하고 싶은 마음 일 수도 있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무대보다는 관객석을 선호할 수도 있다. 일방적인 관람자, 시청자, 방청객으로 머물고 싶은 적극적 의지표현일 수도 있다. 굳이 상호소통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른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몸의 맨 위에 올려진 얼굴사진이 대세이지만, 몸의 맨 아래에 놓이는 어떤 발은 얼굴보다 더 인상적인 프로필로 각인되기도 한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 오래 잊혀지지 않는다. 뒤틀린 발가락이 다른 발가락 위에 올라붙은 굳은살 덩어리 였다. 그를 정상의 발레리나로 자리매김하게 한 것은 그의 얼굴이 아니라 발이다. 그렇다면 그를 만든 상징적 이미지인 발을 발레리나의 프로필이라 하면 어떨까. 몸의 맨 아래에 위치해서 온 몸의 무게를 받아내는 발, 꽉 죄는 토슈즈 속에서 연습과 연습을 누적하는 발, 삶을 춤으로 만드는 발은 입 없는 웅변의 프로필이 된다.

얼굴 정면 전체 사진이 많지만 얼굴을 반만 드러낸 사진도 다양하다. 모자를 쓴 사진들이 많다. 헤어스타일을 고정하고 햇볕을 막아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 주므로 대체로 무난하고 아름답다. 마스크로 얼굴 아래를 가린 사진, 선글라스로 얼굴 절반을 가린 사진도 있다. 손으로 하관이나 볼을 지탱하거나 가린 사진도 있다. 얼굴의 절반을 가린 사진에서는 절반의 익명을 추구하는 내면적 태도가 내비친다. 드러난 부분이 눈인 경우는 눈이 코와 입의 몫을 더하고, 드러난 부분이 입인 경우는 입이 눈이 할 말을 더한다.

얼굴의 절반이 은폐된 ‘오페라의 유령’은 가면이 그의 프로필이다. 이 가면은 다른 방식으로 은폐를 통해 유령의 내면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얼굴을 가면 뒤에 숨길 때는 사랑받고 존경받는 음악의 천사이지만, 얼굴을 드러내면 모두가 경악하고 두려워하는 괴물이다. 천재 작곡가이자 공학자이지만 추악한 얼굴로 태어나 심지어 낳은 엄마조차 아들의 민낯을 외면한다. 아름답게 태어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모두가 외면하는 괴물 같은 외모는 그의 내면을 괴물로 만든다. 광기의 살인자가 된 내면의 괴물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내면의 외로움이 만들어 낸 것이다. 가면 아래 감춰진 얼굴의 트라우마가 그의 성격비극을 결정한다.

정면 대신 다른 각도에서 찍힌 사진들도 많다. 옆얼굴을 내보일 때 절반의 얼굴은 측면으로 내보이는 코를 중심으로 실루엣이 그려진다. 디테일이 생략되는 순간 실루엣이 도드라지는 아름다움이 있다. 내리 감은 듯 긴 속눈썹과 코에서 턱으로 흐르는 선이 그리는 오드리 헵번 얼굴 측면의 매혹은 수많은 정면을 무력화시킨다. 절반을 보여주는 측면이 나머지 절반에 대한 상상력을 가동시킨다. 절반이 이렇게 아름답다면 전체는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절반이 전체보다 힘이 센 프로필이 있다.

전신 프로필도 있다. 매럴린 먼로의 ‘칠 년만의 외출’ 사진은 지하철 환풍구 바람에 밀려올라가는 치마를 내리는 손과 함께 비틀듯 다리를 살짝 굽히는 모습으로 각인된다. 관능과 청순이 뒤섞인, 당황한 듯 수줍은 얼굴은 몸의 자세와 더불어 완성된다. 이 사진 역시 연출된 것이라 한다. 보여주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더 많이 보여주게 된 효과를 얻었다. 의도된 절반의 노출이 크게 성공한 연출이다. 정면 전신이 아닌 후면, 등 사진도 있다. 등 돌린 전신 프로필은 보이지 않는 앞면이 바라보는 먼 곳으로 시선을 끌고 간다. 전신 프로필은 광고 입간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배우나 가수의 비현실적으로 늘씬한 몸이 각종 업종의 입간판이 된다. 유명인의 인지도에 몸의 이미지가 합해진 프로필들이 상업적 용도로 거래된다.

너새니얼 호손
너새니얼 호손

타고난 얼굴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주홍글씨’의 작가 너새니얼 호돈의 ‘큰 바위얼굴’ 주인공 어네스트는 큰바위얼굴을 흠모한다. 언젠가 큰바위얼굴을 한 사람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믿고, 그가 오기를 평생 기다리며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지만 아무도 큰바위얼굴은 아니었다. 어느 날 자신의 얼굴이 그 큰바위얼굴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를 상상적으로 닮아가며 살아온 긴 시간 동안의 간절한 존경과 흠숭은 마침내 자신을 그 자리로 데려간다. 어네스트의 프로필은 바위에 새겨져 한결같이 그가 도착하기를 기다린 것이다. 그는 헌신적이고 겸손하며 성실한 삶을 살아내어서 자신의 이상형을 이룬다. 얼굴은 살아온 삶의 내용을 보여준다.

자신이 발행한 책으로 프로필을 대신하는 경우의 말 걸기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실존적이다. 작가인 자신의 정체성과 성과를 드러내는 동시에 인정욕구가 작용한다. 캐리커처로 대신한 프로필은 카메라라는 기계 대신 화가가 인지하고 손으로 그린 차원에서 초상화와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초상화는 가능한 모든 부분을 실물과 닮게 그리려는 화가의 재현 의도로 충만하고, 캐리커처는 화가의 재현 의도에 해석 의도가 더해져서 표현된다는 점이다. 캐리커처는 축약과 과장을 통해 어떤 부분은 더 커지고 어떤 부분은 더 작아지거나 생략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어떤 얼굴이 캐리커처를 통해 그려졌을 때, 비로소 아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구나 알게 되기도 한다. 단순히 외모의 어떤 부분이 과장되고 표현되어서가 아니라, 해석과정에서 내면의 어떤 부분이 포착되는 것이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현재는 항상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푸시킨의 시 한 구절이 들어있던 명함판 사진 한 장을 오래 간직했다. 포도잎 디자인 안에 얼굴이 들어가고 나머지는 여백이던 사진 속 소녀는 알았을까? 사람은 평생 프로필을 만들며 살게 된다는 것. 스스로 만들어가야 할 큰바위얼굴이 눈앞에 내걸려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고, 엉뚱한 프로필을 만들며 평생을 낭비하기도 한다는 것.

프로필 사진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건다. 한 마디도 나눠보지 않아도 그의 프로필을 통해 나는 그를 조금 알 것 같다. 실은 더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 정직하겠다. 드러나는 것은 언제나 작은 일부이고 은폐되는 것은 전부를 능가한다. 물론 이 모두가 오해와 편견이겠지만. 그러므로, 다만 모를 뿐.

최정란

◇최정란 시인은

▷경북 상주 출생
▷계명대 영어영문학과 계명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사슴목발애인< 입술거울> <여우장갑> <장미키스>
▷제7회 시산맥작품상, 2017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제19회 최계락문학상
cjr1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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