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란 시인의 양면일기 (11)타인의 초상

이미지 과잉의 시대. 많은 얼굴들이 유령처럼 인터넷 공간을 떠돌아다닌다.
개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기록해야 하는 얼굴사진은 없다.

최정란 승인 2020.01.20 16:34 | 최종 수정 2020.02.05 12:09 의견 0
출처 : 픽사베이

그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무슨 마음으로 그 사진 올렸어? 무슨 마음이라니? 그런데, 무슨 사진? 찍어준 사진이 좀 많아.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때 그 사진. 밴드에 있던 그 사진. 일깨워준다. 아, 그 사진. 삭제한 지 오래 됐잖아. 바로 그 다음날이니 일 년쯤 됐나. 함께 사진 강의를 들은 날이었다. 배운 것을 응용해 참석자들 사진을 몇 장 찍었고, 월례회 일지 기록 사진으로 밴드에 올렸다. 다음날, 사진을 내려달라는 연락이 와서 바로 삭제했다.

정면 얼굴사진이라는 것 말고는, 특별히 그 사진의 세부적 특징은 기억나지 않는다. 타인인 내 눈에 무난하게 예쁜 한 장의 사진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불편한 사진이었다. 그 일은 그 후 부터 밴드에 행사 기록사진을 저장하지 않는 계기가 되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도는 사진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 밴드에 올려진 것이 얼마나 불쾌했으면 일 년 후까지 기억하고 있다가, 무슨 마음이었느냐고 작정하고 물을까. 조명이 불충분한 상황에서 찍은 정면사진일 뿐인데, 사진을 지우고 난 뒤에도 오래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은 불쾌한 흔적이라니. 그 사진 전혀 예쁘지 않은데 예쁘다고 했어.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다는 것은 변명이 안 된다. 시간에 쫓긴 내가 무심했던 것이다. 월례회의 기록을 빨리 끝내려는 성급함에, 그날 참석자 모두의 사진을 올리려는 욕심에,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올린 것이다. 그의 마음이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그가 특별히 민감한 것도 까칠한 것도 아니다. 생각 없이 사진을 올린 내 불찰이다. 그에게는 자신의 얼굴 이미지를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내가 그의 초상권을 침해한 것이다. 일 년 후에까지 무슨 마음이었느냐고 물을 정도로 예민한 부분을 침해한 것이다.

테시가하라 히로시 감독의 '타인의 얼굴'(1966) 스틸 컷.
한 남자가 ‘타인의 얼굴’을 갖게 되면서 겪는 심리적 변화와 ‘얼굴’이 상징하는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무심코 얼굴사진을 찍고 공유한다. 사람얼굴이 나온 사진은 동의 없이 찍으면 불법이다. 꼭 페이스북 같은 거대 네트워크가 아니라 소모임이라도 공적인 영역에 게시된 사진은 때로 매우 불편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 손에 스마트폰 카메라가 들려져 있는 시대다. 사진 찍히는 것을 피할 방법이 없다. 하루에도 여러 번 속수무책으로 찍힌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 원하지 않는 사진은 공유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찍기를 동의하더라도 게재를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타인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신체부위를 몰래 찍는 몰카는 범죄다. 수치심을 자극하는 사진을 찍는 것은 불법이다. 몰래 찍어서 개인이 소장하는 것도 불법이다. 나아가 사적인 개인의 얼굴은 지켜야 할 권리이다. 공적으로 타인의 체면을 구기는 것이 명예훼손인 것처럼. 타인의 얼굴사진을 동의 없이 찍는 것, 동의 없이 공적인 공간에 게시하는 것은 모두 초상권 침해이다.

이미지 과잉의 시대다. 많은 얼굴들이 유령처럼 인터넷 공간을 떠돌아다닌다. 인터넷 공간의 이미지들은 우주미아가 되어 영원히 떠돌 것이다.

그날 그에게 배웠다. 개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단체 밴드에 올려서 기록해야 하는 얼굴사진은 없다. 사진을 내려주세요!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사진을 내려달라는 이 요구를 어찌 단지 가볍게 까칠함이라고만 할 것인가. 자기 존재에 대한 해명인 것을. 그렇다면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진을 내려주세요!

최정란

◇최정란 시인은

▷경북 상주 출생
▷계명대 영어영문학과 계명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사슴목발애인< 입술거울> <여우장갑> <장미키스>
▷제7회 시산맥작품상, 2017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제19회 최계락문학상
cjr1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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