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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6 09:52 | 최종 수정 2021.04.2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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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에 방영되는 드라마 중 ‘모범택시’라는 게 있다. 복수대행서비스를 표방하는데 보면 통쾌하다. 이들은 법이 정의를 세우지 못한다며 타인의 복수를 대신해준다. 이들 역시 잔인무도한 범죄자들에게서 가족이 희생당한 피해자들이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납치해 사회와 격리시키는 게 이들의 복수다. 피해자들이 당한 만큼 이들도 똑같은 고통을 느끼게 해준다. 이들이 온라인에 올리는 광고 카피는 ‘죽지 말고 복수하세요. 대신해드립니다’이다.
중국 춘추시대 오왕(吳王) 합려와 부차(夫差)를 도와 패자(覇者)가 되도록 한 오자서(伍子胥)는 원래 초(楚)나라 사람이었다. 하지만 부친 오사와 형 오상이 초 평왕(平王)에게 죽임을 당하자 조국을 떠났다. 평왕과 태자가 한 여인을 두고 사이가 나빠지면서 아버지와 형은 희생양이 됐다. 정나라에서 후일을 도모하던 오자서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오나라로 탈출했다. 거기서 광(光)을 섬겼는데 나중에 정권을 잡아 오왕이 된다. 그가 바로 합려이다. 오자서는 손무와 함께 합려를 보좌해 국력을 키웠다. 결국 기원전 506년 초나라의 수도를 함락해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이뤘다. 이 때 오자서는 죽은 평왕의 묘를 파헤치고 시체를 꺼내 300번이나 채찍질했다. 복수심으로 날을 보낸 오자서가 결국 원한을 푸는 순간이었다. 친구였던 신포서가 너무 가혹하다고 그를 비난했다. 하지만 오자서는 “나의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머니, 도리를 역행할 수밖에 없다(吾日暮途遠 吾故倒行而逆施之)”고 맞섰다. 오자서는 아버지의 복수를 해 효를 이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삼자는 그의 복수가 너무 지나치고 한다. 사실 당사자가 아니고는 복수를 하게 된 상황을 느낄 수 없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을 하면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건의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국민 공감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통합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명박 전 대통령에 복수를 하고 싶을 것이다. 문 대통령과 지지자들이 노 전 대통령은 죽고, 이 전 대통령은 살아 감옥에 간 것이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감정이 대통령 임기를 1년 앞둔 시점에서도 여전히 그들을 사면하지 않는 이유일 수 있다.
유가는 복수를 하라고 한다. 특히 부모의 복수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복수를 하지 않으면 불효를 저지른다고 봤다.
맹자 진심장 하편에서는 맹자의 복수 개념이 등장한다. 맹자는 남의 어버이 죽이는 것이 큰일임을 알겠다는 대목(孟子曰, 吾今而後知殺人親之重也)이 나온다. ‘남의 아버지를 죽이면 남 또한 나의 아버지를 죽이고 남의 형을 죽이면 남 또한 나의 형을 죽인다. 그러하다면 스스로 죽이지 않은 것이지(然卽非自殺之也) 한 끗 차이일 뿐이다’고 했다.
예기(禮記) 곡례편은 아주 직설적이다. ‘아버지의 원수와는 하늘을 함께 이고 살 수 없다(父之讐不與共戴天). 형제의 원수를 보고 무기를 가지러 가면 늦다(兄弟之讐不反兵). 친구의 원수와는 나라를 같이 해서는 안 된다(交遊之讐不同國)’.
공자 역시 원수에 대해서는 단호하다. 논어에 이런 글이 나온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은덕으로 원수에 보답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럼 무엇으로써 은덕에 보답하겠는가. 직으로써 원수에 보답하고(以直報怨), 덕으로써 덕에 보답해야 한다(以德報德).” 공자는 노자가 말한 보원이덕(報怨以德)은 성인이나 하는 경지이지 인간은 그럴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주희가 직을 해석하길 ‘지공무사(至公無私)’라고 했다. ‘사심이 없이 극히 공적이다’고 해석한 것이다.
결국 복수는 하되 사심이 없이 지극히 공적으로 해야 함을 알 수 있다. 현대는 그것을 국가가 하도록 했다. 법으로 정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 법이 ‘지공’인지 의문이 든다. 검찰과 법원이 희생자들의 속이 시원할 정도로 복수를 해주는지 의문이다. 복수를 제대로 하는 게 정의다.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는 사회는 피해자들이 수긍하지 않고 사회에 불만을 가지게 된다. 결국 사적인 복수, 복수의 복수를 낳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모범택시 같은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이다.
<不器 / 고전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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