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서

                          배종관

태초의 강을 건너
새 한 마리 날아가고

글이 된 짐승들은 
해독이 어려웠다

아득한
상형의 피가
화선지에 흐른다.

배종관 시인의 <초서>를 읽는다. 시인은 초서체로 쓴 서예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초서란 글자를 간략하고 빠르게 흘려 쓰는 서체이다. 따라서 사람마다 개성을 발휘할 여지가 많아 문자가 지닌 실용성을 넘어서서 예술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교량 역할을 했다고 한다. 

세상 만물은 자연에서 비롯된다. 글자 또한 자연을 모방하는 과정에서 그림으로 출발하여 상형문자의 형태를 갖추며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초서체를 바라보며 시인의 상상은 ‘태초의 강’에 가 닿는다. 강과 함께 강을 건너 날아가는 새 한 마리가 글자의 첫걸음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서예작품 속 ‘글이 된 짐승들’을 살펴보면 알 만한 모습이 보이는가하면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존재들도 있다. 해독은 어려웠지만 시인은 한 폭 화선지에서 원시의 생명력이 숨쉬는 ‘아득한//상형의 피’를 느낀다.

글자는 세상 만물을 구분하며 그 의미를 기록하는 역할로 문명을 이끌었다. 그 기록의 심미적인 행위가 서예라면 이를 마음의 화선지에 옮겨 적는 작업이 시작 행위일 것이다. 둘 다 붓으로 행하던 시절에는 시와 서예는 한 뿌리인 그림과 더불어 아주 밀접한 사이였다. 하지만 요즘 시인들은 거의가 자판을 두드린다. 그래도 그 가슴에는 여전히 상형의 피가 흐르고 있다.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인저리타임 이광 lkanok@nate.com 이광의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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