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다형 시인의 ‘시 밥상’ (21)이성렬 / 프리즘

전다형 승인 2019.12.26 10:08 | 최종 수정 2019.12.27 09:56 의견 0
출처 : 픽사베이

프리즘 / 이성렬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60년대 아주 추운 날 아침,
유담뽀를 안은 채 잠이 깬 내 머리맡에 놓인,
깊고 따뜻한 주머니를 가진,
질기고 강한 고무줄을 두 겹 넣은,
내 다리보다 한 뼘이나 더 긴,
대바늘 사이로 수많은 한숨이 무늬를 새겨 넣은,
내 가슴 속 깊이 무지개의 화석으로 박힌,
지금 흐린 겨울 하늘에 갑골문자로 눈물겨운,
어머니가 뜨개질 부업에서 남긴 색색 털실로 짠,
총천연색 얼룩말 무늬 스웨터 바지 한 벌

▶이성렬 시인은

*1955년 서울에서 출생.
*2002년 《서정시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여행지에서 얻은 몇 개의 단서』(모아드림, 2003)와 『비밀요원』(서정시학, 2007) 가 있음.
*웹진 『시인광장』 副주간 역임.
*현재 경희대학교 교수.

▶ 시인에게 어머니는 산타였다. 시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신 어머니 선물은 총천연색 꿈이다. “깊고 따뜻한 주머니를 가진,//질기고 강한 고무줄을 두 겹 넣은, 총천연색 얼룩말 무늬 스웨터 바지 한 벌”은 누구도 훔쳐갈 수 없는 재산이다. 추억만한 재산이 있을까? 크리스마스 선물 그 이상이다. 깊고 따뜻한 주머니인, 질기고 강한 고무줄을 두 번 넣은 바지를 입고 우주 끝까지 얼룩말처럼 푸른 초원을 맘껏 뛰놀 수 있기를, 꿈이 큰 아들이기를, 한 코 한 코 손뜨개질로 시인의 총천연색 꿈을 직조하였으리라.

이 시는 한 편의 슬픈 동화다. 문밖에는 겨울눈이 소복소복 밤새 내렸을 테고, 어머니는 밤늦도록 손뜨개질 부업에서 남긴 색색실로 총천연색 스웨터 바지를 짰으리라.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시인은 이 풍경을 덮고 새근새근 꿈나라로 들었겠다. 어머니는 뜨개질로 아들의 환상을 응원했겠다. 자투리 시간 자투리실로 아들의 꿈을 짰겠다. 그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 교수가 되고 시인이 되었겠다. “대바늘 사이로 수많은 한숨이 무늬를 새겨 넣은,” 총천연색 스웨터 바지 한 벌을 받고 기쁘기만 했을까? 아이의 눈에 비친 어머니의 부업하는 모습에서 한숨을 읽어 낸다.

자투리실로 남은 오색실로 짠 총천연색 스웨터 바지는 남자아이에겐 놀림감이 되지나 않았는지? 그것도 “내 다리보다 한 뼘이나 더 긴,” 바지였다니, 참 불편했겠다, 한 뼘을 접어 올리고 입어야 했을 시인은 어머니의 손수 짜주신 선물에 대해 이렇게 진술한다. “내 가슴 속 깊이 무지개의 화석으로 박”혀 “지금”도 “흐린 겨울 하늘에 갑골문자”로 새겨져 있다. 시시때때로 울컥울컥 눈물” 솟게 한다. 시인의 ‘프리즘’ 위에 미농지를 얹고 탁본을 뜨자, 내 슬픔이 얼비쳤다. 이 땅, 우리 모두의 산타였던 어머니께, 메리 크리스마스! 

전다형

◇전다형 시인은

▷경남 의령 출생
▷부경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졸업, 박사수료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수선집 근처'(푸른사상사)
▷연구서 '한하운 시 고통 연구'
▷제 12회 부산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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