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잖다’가 감정을 칠 때
지난 해 12월 29일 윤석열 대통령 후보(이하 윤후보)는 이재명 대통령 후보(이하 이후보)를 향해 ‘확정적 중범죄자’라고 규정하면서 “내가 이런 후보와 토론을 해야 합니까? 어이가 없습니다. 정말, 같잖습니다.”라고 했다. 보통 ‘같잖다’라는 말 다음에는 ‘헛웃음난다’와 ‘어처구니없다’와 함께 쓴다. 다시 말해서 “같잖아 헛웃음이 난다”고 하거나 “같잖아 어이없다”라고 한다. 그런데 ‘같잖다’는 단순히 “같지 않다”인데 왜 이 말이 지금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가?
그런 다음 날 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같잖다’를 두고 사전을 보면 “하는 짓이나 꼴이 제격에 맞지 않고 눈꼴사납다.”라고 소개 하면서 윤후보를 향해 “꼴값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면 어떤 연유로 같잖다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 만큼 그 의미가 달라졌는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문구의 소설 ‘으악새 우는 사연’에 보면 ‘같잖다’라는 말이 두 번 나온다. 소설의 주인공의 말 가운데 “남 하고 사는 꼴 들여다 보았자 함께 즐거워 해 주어야 할 건더기가 없었고, 배울 게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중에 가장 같잖은 꼴은 이름자나 알려졌다는 것들이 나와서 탤런트나 가수들과 어울려 게임을 벌리는 것이었다.” “사는게 같잖게 살어두 관공리 구박받을 사람은 여기에 안 왔유.”
이문구는 촌놈이 탤런트 흉내나 내려 하는 꼬락서니를 두고 ‘같잖다’고 한다. ‘같잖다’라는 말이 요즘 세대들 사람들에게는 귀에 익숙하지도 흔히 사용하지도 않고, 더욱이 언론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비어가 되고 말았다. 위 이문구 소설에 나오는 이 말의 의미하는 바도 듣는 사람들에게 모욕적이고 혐오적인 게 사실이다. 꼴값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의 글자 자체만으로는 ‘같지 않게’이고 이 말을 영어로 번역을 하면 'unlikely'일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을 영어로 번역해 외국 사람들에게 통역해 주면 이 말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왜 이렇게 흥분하는 지 그 이유를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우리 사회는 윤후보의 이 말이 우리 사회를 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가 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김두관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고장난 전차가 레일을 벗어나 절벽 아래로 추락하고 있다”라며, “윤 후보가 공당에서 합법적 절차로 뽑힌 이재명 후보를 아무 근거 없이 '확정적 중범죄자'라 규정하더니 입에 담아서는 안 될 ‘같잖다’는 비속어로 공격하고 있다”며 격노하고 있다. 영어로 한 번 번역해 보자. “The Candidate Yoon said that Lee Jae Myung is unlikely.” 표현만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어째서 이 말이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로 되었을까? 다시 말해서 단순히 ‘같지 않다’가 왜 우리에겐 비속어 같이 들리는 것일까? 윤후보의 ‘확정적 중범죄’란 말보다 ‘같잖다’가 왜 더 듣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을까?
여기에는 우리 한국어 속에 함의된 언어의 남다르고 외국인들이 이해하지 못할 색깔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색깔 속에는 한국인들의 사유구조와 무의식의 감정 속에 잠재돼 있는 언어 속에 들어 있는 논리적인 독특함 때문이라고 본다.
‘같잖다’가 문제인 이유
같잖다의 문제성을 가장 심각하게 의식한 사람은 아마도 창세기의 P라는 기자일 것이다. 그는 신이 인간을 자기와 같게 만들었다고 하여 이를 신의 형상Imago Dei라고 한다. 그런데 뱀의 유혹으로 타락한 다음 이러한 신의 형상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신과 ‘같잖게’ 되고 말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같잖다’라는 말이 신과 연관이 되는 것이 아닌가 추리하게 된다.
‘같다’와 비슷하게 쓰이는 말이 ‘답다’이다. ‘고맙다’라는 말이 ‘곰답다’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하나님’ 이전에 ‘곰’이 신의 명칭인 적이 있었던 것으로 볼 때에 ‘곰답다’는 ‘신과 같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한국에서는 누가 장한 일을 한 것을 두고 ‘고맙다’라고 하는데 이는 ‘곰답다’와 같은 어원이라고 한다.
만약에 이런 어원에서 추론을 해 본다면 ‘같잖다’는 말은 신의 꼴을 저버린 것으로 되기 때문에 ‘꼴값한다’와 연관돼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전적 의미에서 “하는 짓이나 꼴이 제격에 맞지 않고 눈꼴사납다.”는 알맞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제격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이 자기 답지 않다는 것이고, 이 말을 나아가 신의 형상을 저버렸다는 말과도 같아진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과 ‘같잖다’
‘같잖음’이 왜 이렇게 문제가 되는 가를 쉽게 알아보는 또 다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보기이다. 마그리트의 작품 가운데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처구니 없다’ 혹은 ‘같잖다’라고 할 것이다.
위 마그리트의 작품 (가)를 보고 누가 “이것은 파이프인가?”요 하고 묻는다면 “이것은 파이프이다”로 즉답이 나올 것 같지만, 곧바로 이것은 종이위에 그려진 먹물 자국일 뿐 담배를 피울 수 있는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말 할 것이다. 그렇다면 “파이프이고 아니다”라고 하는 ‘같잖다’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나)는 나체의 여자가 자기의 벗은 몸을 대형 거울로 가리고 있는데, 거울 뒤에 있어야 할 그녀의 나체가 거울에 그대로 비춰지고 있다. (다)는 최근 오징어게임에도 등장하는 마그리트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여러 차례 수정해 그린 ‘데페이즈망’ 형 그림인 ‘빛의 제국’이다. 이 작품은 특정한 사물을 엉뚱한 위치에 둠으로써 보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게 한다. 하늘은 뭉게구름이 떠 있는 대낮이고, 땅은 어둠으로 가득 찬 밤이다. 밤과 낮이 한 공간에 함께 공재한다. ‘어이없다’ 할 것이다.
이상 세 편의 마그리트 작품들뿐만 아니라 에셔를 비롯한 현대 미술 작가들의 한 가지 공통된 점은 모두 ‘같잖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헛웃음’과 ‘어처구니없음’(데페이즈망)을 연발케 하기에 충분한다. 같잖다를 요약하면 (가)에서 “파이프가 ‘이다와 아니다’” (나)에서 “앞이면서 뒤이다” (다)에서 “밤이면서 낮이다”의 역설적인 측면들을 보고 어이없음 ‘같잖다’고 발성한다는 것이다.
이상의 마그리트의 작품을 통해 이해해볼 때에 한국인들이 ‘같잖다’란 말에 특유한 말의 색깔이 들어가는 이유는 바로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역설을 감정적으로 느낄 때에 이 말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미국 엘에이에는 양평해장국 집이 있는데, 종종 외국인들이 와 즐긴다. 그런데 외국인들은 해장국을 먹으면서 ‘뜨겁다 핫hot’를 연발한다. 그러나 옆자리에 있는 한국 사람들은 ‘시원하다cool’고 한다. 이런 경우를 두고 ‘같잖다’고 하는 것이다. “뜨거운 것이 찬 것과는 같다”라는 말이다. 그러니깐 “뜨거운 것을 먹으면서 차다”라고 하는 것은 ‘같잖다’일 수밖에 없고, 어처구니없음이다.
같잖음을 ‘꼴값한다’ 혹은 ‘제격이 아니다’ 윤후보가 볼 때에 이후보는 지금 꼴값하고 돌아다니게 보인다. 중범죄자가 대통령 후보랍시고 돌아다니는 것이 꼴값하는 것이 아닌 제격에 안 맞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윤후보의 이러한 발언은 그 이면에서 더 다른 의도를 숨기고 있다고 본다. 소년공 이재명이 어릴 적에 제 몸에 맞지도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두고(제격에 맞지 않는) 하는 말같이 들리기만 한다. 어릴 적 윤후보가 제격에 맞는 옷을 입고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는 자기야 말로 제격에 맞는 자라는 것, 그래서 자기야 말로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같은 자일 수 있다는 암묵적인 암시를 같잖다라는 말 속에 숨기고 있는 것만 같다.
위에서 본 이문구 소설에서 본 바와 같이 시골구석에서 자란 것이 탤런트 흉내내는 것을 두고 ‘같잖다’고 한다고 볼 때에 윤후보의 눈에는 이후보가 그렇게만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암묵적인 암시가 ‘확정적 중범죄자’란 말 속에 숨기고 있는 것이다.
‘너 같은 소년공 주제’가 나 같은 엘리트와 같아지려 하다니... 윤후보의 뇌리 속에 체질적으로 잠재돼 있는 선민주의의 발로가 그의 말 속에 숨겨져 있지나 않았을까. 그렇다면 ‘같음’은 ‘제격에 맞음’이라고 할 때에 윤후보는 가장 대통령 후보로서 제격에 맞는 존재일까?
윤후보의 ‘같잖음’을 한 번 말해 보자.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검찰총장 하다가 정치인으로 갑자기 변신해 대중 앞에 나타났을 때에 그 ‘같잖음,’ 출마를 하면서 내 건 ‘공정과 상식’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같잖음,’ 자기 부인으로부터 시작하여 ‘본부장’의 본인으로서의 ‘같잖음,’ 그 무엇보다도 ‘같잖다’라는 말 하는 그 자체의 ‘같잖음’...
해장국 먹으면서 ‘시원하다’고 말하는 한국 국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과연 누가 같잖은 대통령 후보인지를 현명하게 잘 판단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글을 마친다. 그래서 멋진 선택을 하는 것은 마그리트의 작품만큼이나 아름답고 훌륭할 것이다.
<전 한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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