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또 하나의 도피(逃避), 저항과 조롱(嘲弄)의 시

포토 에세이 통산 1023호(2020.7.4)

이득수 승인 2020.07.03 17:21 | 최종 수정 2020.07.03 17:45 의견 0
방랑시인 김삿갓 이미지. [유튜브 sorikim60]

그렇게 떠난 김삿갓은 과연 맘속의 죄책감을 털어내고 깃털처럼 가벼운 방랑자가 되어 천지간을 떠돌았을까요? 한 사람의 시인으로 나이 일흔이 되도록 온갖 현실적 갈등과 정신적 방황을 다 겪어본 이 백두옹은 단연코 아니라고 단정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가출한 첫날 어렵사리 죽장과 삿갓을 마련해 집을 떠나 낯선 고개를 넘자말자 아직 젊은 그는 금방 배가 고팠을 겁입니다. 땀으로 번들거릴 얼굴을 씻을 물도 목을 축일 물도 없는데 멋으로 시를 읊을 분위기는 더욱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밤이 되자 추위가 엄습하고 숲에서 부엉이가 우는 소리에 겁이 났을 것입니다. 어딘가 이슬을 피해 잠이 들고 주린 배를 채울 민가, 즉 버린 지 하루도 채 안 되는 인간세계를 찾아 음식을 구걸했을 것입니다. 노래가사처럼 <흰 구름 뜬 고갯마루>는 있었는지 모르지만 결코 꽃 피고 새가 울어 임이 그리운 영마루는 더더욱 아니었을 것입니다.

또한 젊은 사내의 방랑은 그렇게 비참한 것에 그치지는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때까지 하인이 있어 도련님, 나으리소리를 듣던 자부심, 자존심을 최대한 버려야 가난한 농부나 산골의 화전민으로 부터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고 숲속의 돌배나 떫은 감도 마다않고 먹었을 것입니다. 또 어떤 때는 밥을 얻어먹은 대신 농사일을 도와주기 원하는 농부에게 엉뚱하게 시를 한 수 써주다 무지 욕을 먹기도 했을 테니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는 시가 무언지 모르고 평생 시를 쓰거나 읽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인 판에 30년도 더 넘는 그의 긴 방황에 시로서 조롱할 만한 양반이나 훈장 따위를 만나거나 대화할 일도 별로 없었을 터, 우리는 단지 한 비렁뱅이를 너무 미화시켜 늘 가난하고 피곤한 자신의 탈출구로 삶으려 했을 뿐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한 젊은 사내로서의 생리적 욕구랄까 고뇌입니다. 그렇게 굶주리며 천지강산을 떠돌다 마침 밥 한 끼, 술 한 잔을 얻어 한 숨을 돌리면 아직 젊은 사내인 그는 문득 두고 온 아내나 여인의 살 냄새가 그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방랑 1년 만에 슬며시 귀가해 둘째 아들을 잉태시키고 다시 가출, 중년의 나이에 그 아들이 찾아오자 그마저 책임지지 못 하고 아들이 잠든 사이에 또 하나의 가출이자 탈출을 감행한 것이지요.

주로 양반이나 훈장을 조롱하는 그의 시를 혹자들은 저항(抵抗)시라고 미화하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무책임한 도피자인 그는 나라나 백성, 또 가족에게 무엇 하나 저항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시를 찬찬히 살피면 내용은 둘째 치고라도 7언의 율(律)이든 5언의 절구(絶句)든 형식을 갖춤에는 빈틈이 없어 그 천박한 시어에 비해 시인의 타고난 자질이 보이기는 합니다. 
 
 다음 그 시의 내용은 조롱 그 자체가 목표인 만큼, 그러니까 훈장을 조롱했다면 그 훈장이 조롱받을 사람이기 보다는 그 훈장을 통해 자신을 조롱하고 세상을 조롱하여 김병연이란 이름도, 그를 급제자나 죄인의 후손으로 만든 조선이란 나라의 허울과 충효와 인의라는 유교이념도 부정하고 단지 제 이름을 숨기려는 그 의도 때문에 한문자체의 언어적 의미는 거의 없습니다. 마치 오래전의 이두(吏讀)처럼 단지 한자의 발음을 차용한 욕지거리, 그것도 굉장히 외설적인 음담패설, 요즘 말로 19금(禁)일 뿐입니다.

여기서 잠깐 그와 동시대인으로서 인류사의 근대사회가 현대사회로 접어드는 19세기 중엽의 그 태풍 같은 변혁의 눈이 된 세 천재(天才)인 <진화론>의 찰스다윈과 <공산주의 선언>의 칼 마르크스, 마지막 <꿈의 해석>으로 무의식의 세계를 들고 나온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셋 중 프로이드의 이야기를 해보아야겠습니다.

만약 동서양이라는 공간적으로 떨어졌던 두 사람이 가까이 살아 심리학자 프로이드가 김삿갓의 기행을 목격했더라면 그는 반드시 겉으로는 방랑시인이지만 아직 젊은 한 사내, 한 마리의 거친 수컷에 지나지 않는 김삿갓 내부의 비비도니, 잠재의식이니 하며 좋은 모델로 삼아 수많은 논문을 발표해 성(性)심리학이 더 한층 발전했을 지도 모릅니다. 

단원 김홍도 (檀園 金弘道, 1745 - 1816 이후) / Public domain
서당(書堂),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畵帖)에서
종이에 담채, 27cm x 22.7cm,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단원 김홍도 (檀園 金弘道, 1745 - 1816 이후) / Public domain]

그러나 다음 시 한 편을 살펴보면

 書堂乃早知 서당내조지
 學童諸未十 학생제미십
 房中皆尊物 방중개존물
 訓長來不謁 훈장내불알

 서당에 내가 온지 진작 알면서
 학동은 겨우 열도 안 되는 
 방안만 잔뜩 잘 꾸며 놓은 
 훈장은 나와서 인사도 않네.
 (제 번역은 통상적인 번역과 달리 단어나 문맥에 억매이지 않고 전체적 분위기를 맞추는 시인(詩人)식 번역임)

한글로는 차마 읽어보기 민망한 이게 어디 시입니까? 글을 쓰는 제가 다 여성독자께 오금이 저리는데 김삿갓은 이 따위 시를 시골훈장이나 농사꾼이, 화전꾼, 숯쟁이 등에게 써주고 밥과 술을 구걸했고 그렇게 쉰밥, 설은 밥을 얻어먹으면서 간혹 미색 고운 여자가 있으면 더러 엉덩이를 흘낏거렸지만 밥보다 그게 더 궁한 비렁뱅이에게 슬그머니 치맛자락 들어준 여자가 과연 30년 방랑생활에 몇이나 있었겠습니까? 

할아버지를 욕해 천륜을 저버렸다고 다시 하늘을 보지 않으려는 유교 바탕의 사대부적인 양심으로 방랑을 떠나 제 이름을 숨기고 제 양심을 지키려 했던 김삿갓은 과연 제 이름을 숨기고 양심을 지켰을까요? 저 따위 외설적인 시를 쓸 정도로 자꾸만 더 큰 수렁에 빠지고 비인간적으로 변해갔을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름값, 이름의 죄, 대의명분의 속박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내가 사내라는, 또 가장이라는, 회사의 대표나 기관이나 단체의 장(長), 기술이나 예술의 전문가라는 이름의 값에 억눌리지 않는가요? 그냥 편하게 한 사내와 여자, 이름 없는 필부필부(匹夫匹婦)로 사는 게 부럽지는 않으신가요?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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