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씨 없는 수박, 우장춘의 아비

포토 에세이 통산 1026호(2020.7.7)

이득수 승인 2020.07.06 21:48 | 최종 수정 2020.07.06 22:33 의견 0
The State Opening of The Great Exhibition, England. Queen Victoria opens the Great Exhibition in the Crystal Palace in Hyde Park, London.
1851년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의 수정궁에서 열린 세계대박람회 중 빅토리아 여왕이 개막을 선언하고 있다.
[Louis Haghe/Public domain]

이념과 명분, 예의와 법도에 사로잡힌 가장 고루하고 비능률적인 조선왕조가 임진왜란(1592), 병자호란(1636)의 두 외침(外侵)을 격어 국토와 민심이 모두 황폐한 시절 저 먼 서양, 영국의 의회민주주의와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한 열강은 신세계 개척을 통해 이 폐쇄적인 왕조가 포함된 동양에 진출 세계를 하나의 영향권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렇게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 산업자본과 근대문명은 1851년 영국의 빅토리아여왕이 런던의 수정궁에서 연 세계박람회에 600만 명의 세계인이 몰리면서 비로소 현대문명과 현대사회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 런던박람회를 시샘해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한 파리박람회가 에펠탑을 배경으로 열린 1889년까지 세계사의 가장 큰 여울목에서 미래세계를 이끌 세 명의 개척자가 나타났습니다. 그 선두는 사람을 신이 점지한 존재가 아닌 스스로 진화한 생명체라는 <진화론>을 부르짖은 찰스 다윈입이다.

진화론을 주창자 찰스 다윈 [John Collier / Public domain]
진화론을 주창자 찰스 다윈 [John Collier / Public domain]

이어 우리 인간의 사회는 왕과 신하, 지주와 농노로 이루어진 지배복종의 체제가 아니라 자본가와 노동자의 2단계로 이루어지고 그동안 일방적으로 희생당한 노동자농민이 궐기해 지주와 자본가와 똑같은 행복을 누려야 한다는 칼 마르크스의 <세계공산주의 선언>이 뒷받침을 하게 됩니다. 다음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나타나 인간의 잠재의식과 성심리 등 우리 스스로도 몰랐던 내부의 세상 무의식의 세계를 제시하고요.

그런데 이 세 걸출한 인재가 제시한 새로운 이론들이 상호작용한 결과는 엉뚱하게도 지구라는 환경 속에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이론인 군국주의를 점화(點火)하고 노동자 농민이 눈을 떠 뭉치면서 피의 혁명과 숙청을 불러오며 사상가와 예술가를 비롯한 지성인들이 현실에서 도피하는 허무주의와 무정부주의를 불러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찰스다윈의 <진화론>에서 시작된 이 변화들의 이합집산은 마침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침략해 지배해도 좋다는 군국주의로 변해 열강이 다투어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침탈, 세계 제1, 2차 대전을 불러오는 뇌관이 되고만 것입니다...

공산주의선언의 칼 마르크스photo by John Jabez Edwin Mayall, colored by Olga Shirnina / CC BY-SA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2.0)
공산주의 선언의 칼 마르크스 [John Jabez Edwin Mayall, colored by Olga Shirnina / CC BY-SA /2.0]

그럼 이 급박한 기간에 우리의 조선 왕조는 어떠했을까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커다란 횡액, 임금이나 나라가 결코 백성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백성들은 전쟁 직후 전국토가 황폐해 먹고살기가 힘든 시절 아무리 천한 자라도 곡식만 바치면 양반이 되고 벼슬을 할 수 있다는 <납속(納粟)>법에 의해 줄줄이 노비생활을 탈출, 수많은 평민이 양반이 되고 노비가 양인이 되는 내부변화를 거치며 비로소 상공업에 눈을 뜨게 됩니다. 또 그 사이에 숙종, 영조, 정조라는 성군이 잇따라 등장하여 나라가 많이 안정되고 실학사상까지 들어와 잘만하면 우리 조선도 열강의 경합에 끼어들 찬스를 잡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태껏 끈질긴 유교적 명분과 당파싸움에 젖어온 관리들은 어떻게든 왕의 나라도, 배성의 나라도 아닌 몇몇 세도가문 양반의 나라 즉 신(臣)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광분하며 정조 이후의 연약한 왕인 순조, 헌종, 철종에 이르며 왕비의 외척이 집권하는 세도정치로 몰락일로를 걸어 무능한 고종을 움켜지고 조종하는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천주교탄압으로 마침내 재생 불가능의 상태에 도달합니다. 그 사이 수천 년 이웃 조선을 넘보던 왜의 무리가 19세기 중엽 명치유신이라는 서구적이며 능률적이며 군국주의적인 일대혁명을 일으켜 초강대국이 되어 기름진 쌀과 무진장한 어족(魚族)이 넘치는 조선의 땅과 바다를 넘보게 됩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 [National Museum of Korea / Public domain]

그렇게 일본이 조선을 집어삼키기 위해 동학란의 개입과 군대진주를 기화로 내정 간섭과 친일세력 조성과 반대파 척살, 왕실 협박과 국가 탈취에 이르기까지 벌인 가장 선명한 세 개의 사건을 꼽자면 1884 김옥균의 <갑신정변>, 1885 일인이 민비를 살해한 <을미사변>, 마침내 실질적 국권을 탈취한 1905 을사늑약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3건의 국란 중에서도 일반국민들은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연극으로 멸망 직전의 왕국이 대원군이라는 고집불통의 노정객과 민비라는 또 하나의 야심가가 얽히고 설키며 일으킨 가장 극적인 사건, 일국의 국모가 낭인집단에게 살해되고 주검마저 모욕당하는 어둡고 칙칙하며 피로 얼룩진 국가적 수모와 참패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척화비문화재청 (공공누리 제1유형) / CC BY-SA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4.0)와
부산진 척화비 [문화재청(공공누리 제1유형) / CC BY-SA / 4.0]

지금까지의 긴 서설은 이 을미사변 망국의 현장, 그날의 경복궁에서 벌어졌던 참극의 하수인인 한 조선인, 그것도 긴 세월 궁궐의 수비장교로 근무하다 당시 제2대대 훈련생을 거느리고 일인의 앞잡이가 되어 민비시해의 행동대장이 되었던 우범선이라는 한 부끄러운 조선인, 그러면서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세계적 육종학자 우장춘을 낳은 한 비참한 사내의, 국모를 없애고 씨 없는 수박을 낳은 아이러니한 삶을 설명하기 위하여서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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