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보이는 고개가 명촌리에서 등억리온천단지로 넘어가는 강도고개입니다. 그런데 좀 자세히 보면 앞쪽에 하얀 건물이 하나 보이고 한참 뒤쪽에도 하얀 빛이 보입니다. 저 하얀 집은 도대체 무얼 하는 건물일까요?
지금 중년이 된 사람이라면 정훈희가 부른 번안곡 <하얀집>, 그러니까 화이트하우스라는 영어가사가 낀 노래를 기억할 것입니다. 당시 가수 정훈희가 한창 젊고 예쁘던 시절이긴 하지만
꿈꾸는 카사블랑카 언덕위에 하얀 집은
당신이 돌아올 날을 오늘도 기다려요.
하는 가사처럼 무척 아름답고 멋진 이국의 풍경을 을 배경으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애틋한 마음이 잘 나타나 금방 일대 선풍을 일으켰지요. 심지어 코미디프로그램에 <눈이 오면 하얀 집, 불이 나면 빨간 집. 불에 차면 까만 집>이라는 개그가 다 나올 정도로. 아무튼 먹고살기가 빠듯하던 그 시절에 뭔가 이국적이며 감미로운 노래, 사람을 홀리는 노래였던 것이지요.
그 하얀 집을 예순이 넘어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스페인, 포르투갈, 모르코의 3개국을 돌아보는 패키지 관광코스에 참가하면서 입니다. 너무나 멀고 낯선 곳인 아프리카를 간다는 호기심에다 어릴 때 들었던 그 감미로운 노래의 하얀집에 나오는 카사블랑카를 간다는 마음에 중년들의 마음은 사정없이 울렁거리며 미지의 대륙 아프리카와 꿈꾸는 언덕 카사블랑카로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보통 패키지여행을 떠날 때 무슨 영화나 노래에 나오는 장소 또는 그림이나 동화로 기억에 남은 장소를 방문하면 판판이 실망을 한다는 법이 있지요. 저의 경우도 <돌아오라 쏘렌토>라는 노래와 자동차의 모델명으로 유명한 이탈이아남부도시 쏘렌토을 기차를 타고 지나갔는데 아슬아슬한 바위절벽을 뚫고 수많은 터널을 통과해 간신히 지나가는 해안철도변에 있는 조그만 마을, 파란 지중해를 배경으로 빨간 장미가 핀 작은 마을 하나를 발견한 것 말고는 어떤 매력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이델부르그의 황금궁전, 세비야의 황금지붕 등 막연히 황금이란 단어에 현혹되에 실망한 사례도 많고요. 또 오스트리아를 지나면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드넓은 초원과 목장을 연상했지만 그 역시 실망이었고 스위스에 하룻밤을 묵으며 <알프스소녀 하이디>를 연상했지만 실제로 산악열차 연변의 산비탈에서 목초를 베는 소녀는 그냥 뚱뚱한 여드름쟁이였습니다.
<카사블랑카>는 대서양에 면한 모로코의 제1도시, 거대한 무역항으로서 2차 대전 당시 연합국과 독일군의 첩보원들이 들끓던 도시로 험프리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의 애틋한 첫사랑과 첩보전이 믹스된 꽤나 감미로운 영화로 널리 알려지고 그래서 영화 <하얀 집>까지 세계인의 그리움이 되었던 곳입니다.
그런데 정작 카사블랑카에 도착하니 우선 언덕 위에 하얀 집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보다 무려 70년도 더 전에 대서양의 선박 위에서나 선창가에서 보면 산중턱에 하얀 건물들(아마도 회교도의 건물인 듯)이 나란히 늘어서 있어서 현지의 아가씨와 외항선원과의 사랑이야기가 꽤나 심금을 울렸는지 몰라도 지금은 노래 가사에 나오는 언덕 위의 하얀 집이나 성당의 종소리가 산마을에 울리면의 산마을과 성당자체가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모로코가 처음부터 회교를 믿어 온천지가 모스크천지라 처음부터 성당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고요.
자, 이제 이야기가 다시 강도고개의 하얀 집으로 넘어가는데 감미로운 상상을 하던 분이라면 저 흰 건물 역시 실망시킬 것이 틀림없습니다. 두 건물 모두가 <주안에 집>과 <애리원>이라는 늙고 병든 노인들을 수용하는 노인요양시설이니까요.
단번에 황홀한 상상이 사라지는 가요? 그렇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아 날로 노인인구가 늘어가는 대한민국은 이미 저처럼 호젓한 고개나 산골짜기를 노인요양병원들이 점령한지가 꽤나 오래됩니다. 처음 노인요양시설이 들어서면 주민들이 대부분 격렬하게 반대하지만 시공사 측에서 별 희한한 사탕발림으로 기어이 건축 전국의 모든 호젓한 숲속이 바야흐로 노인천국으로 변해가고 있는지요. 좀 거북하고 불편하지만 이 세상에 늙지 않고 병들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이미 우리 모두가 저 노인요양병원의 잠재수요이므로 남의 일도 아니고 흉볼 일도 아닌 현실, 소위 말하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미국의 대통령관저를 <화이트하우스>또는 백악관으로 부르는데 그 느낌이 어떻습니끼? 세계 최강의 경찰국가의 심장인 만큼 대단한 권력의 중심이지만 요즘 들어 오로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조석으로 말을 바꾸는 백악관사람들, 세계최강이라면서 코로나19 최대피해국이라는 멋쩍은 현실, 거기다 이미 머리가 허연 트럼프 대통령은 왜 또 그렇게 자주 실언(失言)을 하고 식언(食言)을 하는 걸까요? 그러고 보면 화이트하우스 역시 이미 머리라 허옇고 자주 말이 바뀌는 노인이 수용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견하고 지은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인간의 노후는 늙고 병들고, 권력의 말로는 타락과 혼란입니다. 우리나라의 청와대가 영원히 젊고 활력에 넘치는 <블루하우스>로 남기를 기대해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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