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번 <아름다운 노랫말>을 써나가면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점은 바로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일련의 노래를 무엇으로 불러야하는지 정체(正體)성의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유행가라는 이름으로 우리 가요를 불러왔지만 그것은 일본의 엔가, 프랑스의 샹송, 이탈리아의 칸소네 같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공식명칭이 아닌 것입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나라에는 지금의 대중가요처럼 전 국민이 함께 즐기던 음악의 형태가 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굳이 음악과 시의 시원(始元)을 찾으면 단군왕검의 천부경(天符經)이 있지만 그것은 기후와 질병과 사나운 맹수들까지 겁을 내던 원시시절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기치를 내세워 부족들을 단합시키기 위한 일종의 주문(呪文) 같은 것입니다. 또 고구려의 황조가(黃鳥歌)나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신라의 향가가 있기는 했지만 한문을 아는 일부 상류사회의 전유(專有)물일 뿐 우리 역사상 가장 자유분방한 시절 고려에 와서 비로소 통치자와 백성, 남녀노소가 동시에 부를 수 있는 군무형태의 대중적 가사가 생겨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머루랑 다래랑 먹고>의 <청산별곡>이나 송악(松岳)의 외국인인 위그르족 또는 소그도족 회회(回回)아비가 옆집아낙의 손목을 잡고 수작을 부린다는 <쌍화점>같은 가사는 일종의 연극대본으로 불교가 번성하고 남녀차별이 없이 자유연애가 성행하던 시절의 왕과 대신, 승려와 일반백성이 한대 어울린 거대한 집단(集團)무, 군무(群舞)의 각본이었던 것이었지요.
그러다 억불숭유의 혁명정부 조선이 들어서면서 그 자유분방한 가사나 군무는 사라지고 상류사회의 선비들은 혼자서 길게 읊조리는 시조, 창(唱), 전문연예인은 판소리 같은 폐쇄적 음악, 농민이나 남사당패, 걸립패 같은 하류사회에서는 각종 노동요와 함께 농악, 지신밟기, 상여가에다 양반과 마님을 희롱하는 온갖 저급한 타령들이 번져왔습니다. 그 500년 왕국이 무너지고 일제가 엔가를 앞세우고 들어오면서 그걸 모방한 형태로 신가요가 나오고 다시 유행가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노래들이 파생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우리 가요의 정의에 앞서 그 이름을 무엇이라 부를까가 문제가 되는데 그건 공영방송 kbs의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 <가요무대>로 미루어 <우리노래>, <한국노래>, <한국가요>등으로 불러야 할 것 같아 저는 편의상 <한국가요>로 지칭하는 것이 그나마 나을 것 같은 생각입니다.
<한국가요>는 한민족의 반만년의 역사와 민중의 숨소리가 살아숨쉬는 문화자원입니다. 해방 이후 미군의 진주와 함께 팝, 락, 재즈 등 다양한 서양음악, 심지어 6·25참전의 각국 병사, 예를 들어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이 부르던 <연가>의 분위기까지 끼어들어 매우 복잡하고 난해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생동감 넘치는 문화적 변신을 거듭하여 새로이 재창조된 것입니다.
세계유일의 분단국으로서 참전16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춤과 노래가 들어왔는데 그 모든 것을 모방형태로 흡수해 마침내 더욱 참신하고 새로운 형태로 재창조하는 아주 특별한 재능을 가진 한국인은 지금 세계인이 모두 환호하는 음악,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나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같은 일련의 <케이 팝>형태로 단숨에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았습니다.
나라의 경제가 발전할 때 포항제철의 거대한 용광로가 세상의 모든 고철을 다 녹여 자동차와 선박을 만들어 한강의 기적을 이루듯 분단국가 한국의 가요가 유럽의 샹송이나 칸소네는 물론 아르헨티나의 탱고, 브라질의 삼바, 쿠바의 살사, 미국의 재즈 같은 세상의 모든 리듬과 음악을 흡수해 마침내 세계인 모두를 사로잡는 <케이 팝>으로 재수출하는 단계로 발전한 것이지요. 이 대단한 포용력과 창조력을 우리는 무엇으로 표현하여야 할까요? 아무튼 대단한 기적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가요>는 트로트라는 이름의 구식가요와 <케이 팝>이라는 첨단가요의 2원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근간의 트롯열풍으로 케이 팝에 열광하던 세계인들이 차츰 트롯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차츰 시간이 흐르고 모바일문화를 중심으로 세대차를 극복하면 그 두 개 영역에 민요나 타령의 요소까지 흡수해 한국가요가 더욱 발전된 형태로 통합되고 승화(昇華)되어 영화, 에니메이션, 연속극, 심지어 라면과 소주, 초코파이처럼 이미 세계인을 침몰시켜버린 한국문화의 첨병이 될 것 같은 확신이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유행가라고 괄시했던 <한국가요>는 지금 세계시장을 석권, 우리 국민을 먹여 살리는 황금어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가요는 세계의 선도하는 문화조류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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