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명촌별서의 겨울맞이

에세이 제1165호(2020.11.25)

이득수 승인 2020.11.24 22:23 | 최종 수정 2020.11.24 22:33 의견 0

한 며칠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자면서도 자주 이불을 당겨 덮거나 보일러를 올리곤 했지만 내외 둘다 감기기운이 있어 읍내의 동내병원에서 주사도 맞고 약도 타고 돌아오는 길에 상북면사무소앞의 <짬뽕의 달인>에 들러 아내가 좋아하는 탕수육 소(小)자를 시켜주고 저는 해물짬뽕을 먹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등말리에 접어들어 논길을 달려 골티골짝을 들어서는데 갑자기 눈앞이 폭격을 맞은 듯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명촌별서가 경치가 좋기는 하지만 고래뜰의 맨 꼭대기라 더이상 전진을 못 하는 강풍이 회오리바람이 되어 온 골짝을 헤집어버린 것입니다.

사진1 강풍으로 훼손(毁損)된 초록펜스의 시화들(이튿날 철거했음)
강풍으로 훼손(毁損)된 초록펜스의 시화들(이튿날 철거했음).

가장 심각한 것은 펜스에 부착한 <제2회 조손시화전>의 시화가 반 이상 바람에 뜯겨나가 온전한 게 별로 없었습니다. 그 동안 한 두 곳이 떨어져 나부끼면 플라스틱 <쫄쫄이>로 보수를 했는데 이제 대부분이 다 파손되어 차라리 전체를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아내의 감기가 잘 낫지 않아 이튿날 저 혼자 가쁜 숨을 헐떡이며 시화를 철거하는데 세 명의 꼬마손녀들의 호기심과 꿈이 가득한 시화들이 세월이라는 이름의 비바람에 퇴색되어 호호백발할머니처럼 물러나는 게 많이 서글펐습니다.

그렇게 가을이 간다고 해서 꼭 아쉽고 슬픈 것만은 아닙니다. 며칠 전 된서리가 온 후에 김장무와 배추에 맛이 들어 싱싱한 배추와 무청을 쌈장에 싸서 먹으면 식욕이 없는 저도 금방 밥 한 그릇을 비웁니다. 단순한 식욕이 아닌 유년의 향수, 등이 굽은 어머니가 차려주던 밥상과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되살아나면서 내가 자라던 시절의 그 막막한 가난과 된장냄새가 되살아난 것입니다. 요즘 소위 <먹방>이 방송을 주류를 이루지만 음식 잘 만드는 백종원이나 잘 먹는 이영자나 김민경도 처리맞은 무청의 이 깊고도 그윽하며 달콤한 향과 맛을 아는지, 한 번 먹어나 봤는지 가을 볕 포근한 문지방에 걸터앉아 서리맞은 무배추와 따뜻한 햇쌀밥의 진미를 연출하면 갑자기 인기가 폭증하여 무배추 값이 배로 상승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사진2. 올해 마지막 초록빛이 될 무배추밭
 올해 마지막 초록빛이 될 배추밭

아직 명촌별서에 푸른빛을 발하는 김장무와 배추, 청갓과 새래기 무를 뽑고 나면 텅빈 텃밭에는 할아버지와 손녀 넷의 하수아비들만 덩그렇게 남을 것입니다. 아쉬운 생각에 사진을 찍는데 흉작을 대변하듯 단 두개만 달린 대봉감열매가 애처럽습니다.

유래 없는 거대한 불안 코로나19로 우리 가족은 멀리 떨어지고 돌아온 손녀들과 며느리도 자가격리로 많은 고통을 받은 참으로 힘든 한해가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곧 일곱 살이 되는 마초는 이제 중년을 넘어서 따뜻한 데크에 종일 누워 지내며 산책도 같은 길을 두 번 이상 돌면 제 눈치를 슬슬 보며 농땡이를 칩니다. 저 철없는 짐승에게도 벌써 생리적 가을이 오는 것입니다.

사진3 이태 동안 명촌별서를 지켜온 허수아비들, 뒤로 딱 두개 남은 단감이 보임.
이태 동안 명촌별서를 지켜온 허수아비들, 뒤로 딱 두개 남은 단감이 보임.

내년 한 해, 무엇보다도 제가 살아있는 것이 명촌별서의 가장 큰 과제이겠지만 인도에 간 아들과 가족들의 돌아와 제 슬하 10명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꿈을 꾸어봅니다. 그렇게만 되면 이번에는 10인가족 전원이 참석하는 <제3회 가족시화전>도 열고 허수아비도 새로 만들되 곧 10대가 되는 세 손녀 대신 우리 두 노부부의 모습을 밀레의 <만종(晩鐘)> 분위기로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 보름이 지나 일곱 가족의 김장을 하고 나면 이제 명촌별서는 긴 겨울잠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라도 한두 명의 정든 얼굴들이 방문하는 것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고 제가 직접 골안못에서 잡은 생새우를 갈아 넣은 시원하고 감칠맛 나는 명촌별서의 김장맛을 보여드릴 것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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