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마지막 들국화

에세이 제1169호(2020.11.29)

이득수 승인 2020.11.28 16:01 | 최종 수정 2020.11.28 16:09 의견 0
사진 위 : 쑥부쟁이 꽃
쑥부쟁이꽃

시골에서 자라던 우리는 어릴 때 보통 가을이 오면 산기슭과 언덕배기 또는 도랑둑을 노랗게 덮어가는 한 무더기의 꽃을 들국화라 불렀고 시골에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이 들어 들꽃에 대해 좀 이리저리 연구를 하면서 저는 그게 감국(甘菊 단국화, 당국화는 과꽃을 말함.)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초록색 이파리사이 유난히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꽃잎을 따서 씹으면 단맛이 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나이 들어 도시에 나와 살면서 들국화 같은 것은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50대 초반에 등산을 시작하면서 다시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 가을에 피니 들국화라고 불렀던 보랏빛 쑥부쟁이었고 그리고는 진짜 쑥처럼 생긴 잎줄기에 하얗고 동그랗게 꽃이 피는 들국화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종류의 들국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구절초입니다. 

그리고 한참 세월이 지나 새삼 노란빛의 들국화(감국)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건 대체로 도로를 닦은 경사면이나 터널입구언덕에 사방(砂防)용으로 심은 것입니다. 토목공사가 끝나고 마지막 조경공사를 할 때 사태위험이 높은 경사진 언덕에 사람이 발일 딛고 올라가지 못하는 부분에 처음엔 콤프레샤로 시멘트 몰타르를 분사시키더니 환경을 고려해서 언제부턴가 번식력이 강한 서양잔디를 뿌리더니 이제 미관을 고려해선지 그 노란 감국의 씨앗을 뿌려댄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 부로산터널 입구 절개지나 새로 도로를 뚫은 절개지에는 전에 없이 노란 감국이 황금벌판을 이룬 모습을 흔히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의 들국화 중 자잘한 꽃잎에 보라빛 무지개가 서려 따가운 가을볕에 반짝이는 쑥부쟁이꽃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제 완전히 들꽃이 되었는지 희긴 희되 오래된 회반죽의 벽처럼 덤덤한 느낌의 구절초도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 보던 노란 감국, 우리 어릴 땐 무서리가 내리는 초가을의 산기슭에 간혹 한두 포기씩 피어 산뜻하고 다정한 느낌을 주던 감국도 이제는 마치 황금의 나라 <엘도라도>를 연상시키지만 그런 데로 눈에 익어 볼만합니다. 

 아래: 꽃잎의 일부가 진 감국
꽃잎의 일부가 진 감국

다도나 국산차를 좋아하는 분들은 더러 들국화종류의 꽃으로 차를 다려먹는다고 들었습니다만 저는 체질적으로 야생화나 열매, 버섯종류의 삶은 물을 먹으면 눈꺼풀이 떨려 잘 먹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 넓은 산야의 수많은 초목의 꽃과 잎과 열매와 나무는 제 나름대로 본래의 쓰임새가 있어 그게 이름이 되는 법(차나무, 커피나무)인데 세상의 모든 식물을 모조리 차의 재료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어쩜 거친 음식(조식(粗食), 이상한 음식(기식(寄食)을 좋아하는 좀 특별한 취미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올해는 가을장마가 길고 겨울이 빨리 닥쳐 특별히 들국화꽃이 이쁘다거나 사진을 찍은 일이 없었는데 이제 가을이 딱 열흘쯤 남은 늦가을 오후의 이불뜰에서 간신히 피어있는 보랏빛 쑥부쟁이를 발견하고 저도 몰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양지바른 논두렁아래서 위쪽의 꽃은 졌지만 아래쪽은 아직도 제대로 된 꽃 모양을 갖춘 감국도 발견했습니다(아마도 감국은 그 꽃이 피는 순서, 꽃차례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수상화서(垂象花序)인 것 같습니다.

힘들게 명촌리의 늦가을을 지키는 쑥부쟁이와 감국꽃을 올립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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