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짧은 만남, 긴 여운(윤정이 형님3)
에세이 제1173호(2020.12.3)
이득수
승인
2020.12.02 20:07 | 최종 수정 2020.12.0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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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체질에 안 맞는 군대생활을 마치고 제대를 했는데 내 팔자가 단 1주일도 쉬어서 안 되는 팔잔지 제대신고를 하고 언양집으로 돌아와 명촌누님댁에서 하룻밤을 자며 매형과 술추렴을 벌이는데 그 이튿날 바로 전근무지 동래구 연산3동으로 발령이 났다.
이미 3년이란 세월이 흘러 얼굴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는데 동사무소에 들어가자
“아이구, 못 말리는 이득수씨!”
하며 직원들이 모두 반색을 했다. 3년 전 윤정이란 괴짜 직원과 남포동과 자갈치를 주름잡은 대 술꾼에 대한 전설이 동래구 바닥에 파다했던 모양이었다. 나보다 11살이 많은 총무주임 김청길씨에게 당장 거처할 방이 없다고 하니 얼씨구나 하며 같이 연일시장에 가자며 침구일체를 새 것으로 사더니 아무 걱정 말고 숙직실에 기거하라면서 이제 많이 도시화가 되어 새로 들어선 <함흥집>이라는 제법 고급식당에 하루 세끼 하숙도 붙여주었다. 주로 비빔밥과 선지국, 조기매운탕으로 하루 세 끼를 먹었으니 입대 전보다 팔자가 핀 셈이었다.
그렇게 조용히 두어 달을 지내며 나는 제대하자마자 윤정씨의 집으로 찾아가 이제 어엿한 국민학교 교사가 된 차숙씨에게 윤정형의 행방을 묻자
재작년엔가 어느 여름날 새벽에 파김치가 되어 들어와 내처 잠만 자더니 두 밤을 자고 다시 집안의 현금 얼마를 챙겨 나가고 여태 소식이 없다고 했다. 날짜를 조금 상세히 맞추어 보던 내 등골에 전율이 흘렀다. 그가 모처럼 집에 들어온 날이 영도다리에서 나를 만나 밤새 술을 마신 날이니 그 알량한 수박장사 밑천을 다 써버리고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내가 좋아하던 처녀의 행방을 수배해보니 병든 아버지의 강권으로 어디론가 시집을 간 지가 꽤 된다고 했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난 어느 오후 갑자기 사무실 분위기가 붕붕 뜨며 직원들의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으로 공무원에게 보너스 50%를 지급한 것이었다. 그날 퇴근 후 총무주임 김청길씨가 노총각 둘을 비롯하여 마이다시(당시 유행한 600의 일종) 선수 5명을 소집하더니 연산로의 새로 생긴 인삼찻집에서 노름판을 벌이며 게임시작 전에 각 보너스 5%를 떼어 나를 주면서
“이주사는 이 돈으로 잠바와 구두도 사고 오랜만에 그 좋아하는 술도 한잔 하고 오늘저녁은 숙직을 안 해도 좋으니 윤정씨 같은 친구도 만나고...”
하며 한 뭉텅이의 돈을 주었는데 내 월급의 절반이 넘는 금액, 지금의 액수로 한 50만 원이 넘었다. 정말 김주임의 말대로 혹시나 하고 윤정씨의 집으로 전화해 여동생 차숙씨에게 오빠의 행방을 물었으나 벌써 2년이나 얼굴을 못 봤다면서 혹시 연락이 있으면 집으로 알려달라며 울먹였다.
그래서 가까운 연산시장에서 잠바와 구두를 하나 사고 순두부찌개에 저녁밥과 반주를 마치자 저도 모르게 발길이 시내로 향해 어느 곰장어집에서 소주잔을 들고 하염없이 윤정형을 생각한 것 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기억이 끊겼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술이 취해 옛날 윤정씨와 같이 쓸고 다니던 충무동 골목에 올라가 어느 술집에서 밤새 마시다 뻗은 것이었다.
그렇게 모처럼의 목돈을 일거에 날려버린 나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예사로 하는 말
“젊은 남자는 장가를 가 아내가 해주는 더운밥을 먹고 아이를 낳아 길러야 비로소 살림 맛을 아는 사람이 된다.”
는 말대로 그냥 수더분하고 평범한 처녀를 사귀어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조화인지 묘한 인연으로 키가 크고 자세가 꼿꼿하고 얼굴과 목소리가 다 곱고 주관이 또렷한 나이어린 처녀를 만나 사생결단 밀어붙여 내 나이 스물여섯에 다섯 살 어린 아내를 만나 고생은 좀 했지만 착한 두 아이를 낳고 공직도 서기관까지 올라가고 시집도 많이 내며 방송과 신문에 많이 나가 그 힘든 <출연료>와 <원고료>까지 받아본 꽤 괜찮은 인생을 살았는데 사람들은 그게 모두 아내를 잘 만난 처복이라 했고 나도 굳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또한 무슨 기적인지 총무주임 김청길씨가 보호자나 혼주가 된 것처럼 신혼 방을 얻고 청첩장을 돌리고 온갖 뒤를 다 봐주는(언제 한번 그 분의 인연을 쓰겠음) 어느 밤에 술이 잔뜩 취한 윤정씨의 전화가 와서
“어이, 언양촌놈 우리 득수가 장가를 간다면서 아가씨는 같이 김해까지 놀라갔던 그 아가씨 맞지? 축하해.”
하고 결혼식 날짜와 장소를 묻더니 그날 자기가 와서 사회를 봐주겠다더니 한번 만나자는 말에 바쁘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끓어버렸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전화번호가 몇 번인지도 가르쳐주지 않고...
이윽고 내 결혼식 날짜가 다가와 최옥현 동장이 주례로 조그만 결혼식장에서 금방 개식을 할 판인데 사회를 본다던 윤정형이 나타나지 않아 내 고등학교 후배로서 같이 문예반에 다니다 내가 사는 길을 따라 한다며 부산진구청에 공무원으로 근무 중인 박관식이란 후배를 불러 사회자용 장갑과 꽃을 건네주고 방금 결혼식 시작 멘트를 날리는데
“드, 득수야, 내가 왔다. 이 윤정이형님이 왔다.”
하고 우당탕탕 뛰어 오더니
“어이, 박주사 미안!”
하고 관식씨의 흰 장갑과 꽃을 받아 가슴에 꽂으며 아주 여유만만하게 결혼식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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