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아름다운 노랫말(25) 눈부셔라, 우리의 모국어

에세이 제1162호(2020.11.22)

이득수 승인 2020.11.20 13:33 | 최종 수정 2020.11.21 09:47 의견 0
노랫말의 암시성이 돋보이는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 영상 [유튜브 /강민기]

지난연말 제가 재미사마 <아름다운 노랫말>을 찾아보다 한 해 겨울 내내 어떻게 이 글을 이어가고 마무리할지 엄청난 고민에 휩싸이면서도 저는 한편으로는 늘 가슴이 뿌듯한 행복감에 젖었습니다.

그 첫 번째 행복감은 <한국가요>에는 참으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노랫말, 그래서 듣는 것만으로 절로 입가에 미소가 띄어지며 이 세상과 우리 이웃, 더 나아가 자신의 삶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행복하다는 느낌을 수시로 받게 된 점입니다.

그 위에 또 한 가지 특별한 기쁨을 느낀 것은 우리가요가 가진 신묘(神妙)할 정도의 표현력과 압축된 상징성 가진 점 있는네 예를 들어 

0. 나훈아의 <홍시>에 나오는 <사랑땜에 울먹일세라.>의 절묘한 표현력(表現力)
0. 이미자의 <아씨>에 나오는 <한 평생 다 하여 돌아가는 길>의 기나긴 세월을 단 한 줄로 뭉뚱그린 압축(壓縮)력
0. 문주란의 <돌지 않는 풍차>에 멈춰선 풍차로 버림받은 여인을 연상(聯想)시키는 상징(象徵)성
0.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에서 아무런 진술도 설명도 없이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암시(暗示)성
0. 박인희의 <그리운 사람끼리>에 나오는 따뜻한 정감(情感)

같은 우리의 모국어 한글만이 가지는 특장(特長), 가장 간단한 구조로 세상의 그 모든 정서를 두루 표현하는 특별한 능력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다 일반인보다는 훨씬 많이 그 모국어를 사용하는 한 시인으로서 느낀 행복감은 한결 더 했고요.

노랫말의 압축성이 돋보이는 이미자의 가요 <아씨>와 동명의 영화 한 장면 [유튜브 / 변사또]

한글은 이미 그 과학적 구조와 실용성으로 유네스코에서 문자가 없는 민족에게 권장해 세계의 몇몇 부족이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세종대왕만큼의 위인도, 한글만큼의 예술품도 이 세상에 더는 없는데 우리 한국인이 바로 세계제일의 언어적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제 자신만 해도 제대로 된 시(詩)는 물론 여러 사람이 불러주는 노랫말 하나 써낸 일은 없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문학적 열정을 불태우는 문청을 지난 <문로(文老)>가 된 지금 문학적 성취를 떠나 이렇게 아름다운 모국어를 일상으로 쓰고 그 모국어로 글을 짓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못해 흥감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한국인은 정말 그 아름다운 모국어를 알뜰하게 잘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한 늙은 시인의 회한이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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