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행복한 모국어로 한국가요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찾아가는 동안 저는 그 뿌듯함 속에서도 줄곧 하나의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의 문학이나 시가 대중가요나 그 노랫말보다도 절실하지 못 하다는 자책감을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핏 생각하면 대중가요의 가수보다 시인이 훨씬 고상하고 품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시인인 제 자신의 입장에선 이 시대의 시인은 평범한 가수나 가수지망생보다도 작품몰입이 진지하거나 그 창작성과가 대중들을 감동시키기에 부족하다는 자괴감을 느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문학 또는 시는 모든 예술과 인간감정의 본질이나 모태 같은 것으로서 이 시대의 시인이 그만큼 진지하며 얼마만큼 시민의 호응을 받느냐의 문제에 저와 모든 시인은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휴대폰과 가전제품과 자동차로 대변되는 우리의 산업이 그렇게 발전하고 케이 팝과 연속극이 세계를 뒤덮어가는 동안 우리의 문학과 시는 무얼 했는지, 여전히 음풍농월, 제자리에서 머물었던 자책감과 함께.
지금 이 나라 시인들은 몇 가지의 치명적인 병폐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첫째 신춘문예를 통과하거나 문과대학을 교수나 교사 같은 정예시인들이 우리네 삶과 너무 동떨어진 명제와 난해한 기법으로 문인들조차 이해하기 힘든 수수께끼 같은 시들을 쓰고 언론이나 평론가는 그런 난해한 작품들만 언급해 시와 시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시, 세상의 모든 시란 군에 간 아들이 문맹의 어머니에게 쓴 편지, 옆집의 새댁이나 학생이 읽어주면 눈앞에 아들의 얼굴이나 목소리가 선해 금방 눈물을 줄줄 흘리는 절실한 그 무엇, 그러니까 기쁨이나 눈물이나 감동 또는 회한을 주는 무엇이 되어야 합니다. 복잡한 운율에 사로잡힌 한시(漢詩)의 시대에 세종대왕께서 어렵게 한글을 창제하신 것도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를 서로 소통하는 그런 의미였을 것입니다. 난해하고 고답적인 언어유희에 매달린 시인들은 한글과 세종대왕 앞에 엎드려 반성(反省)할 일입니다.
또 경제발전에 따리 문학잡지가 삼(麻)대처럼 난립해 수많은 시인을 양산시키며 그 많은 시인들이 알맹이가 없는 시화전, 출판기념회 등 화려한 행사와 <문학상>에 몰두하고 열광하지만 저로서는 이해인수녀님 이후 시민의 심금을 울리는 시집이나 시가 부산에서 나왔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또 적잖은 시인들이 유복하고 안온한 일상에서 마치 고급커피의 향을 음미하듯 제멋에 겨운 나르시시즘에 함몰되고 몇 명의 유능한 시인이나 작가가 나와도 금방 사회의 이슈가 되는 모든 사건에 댓글을 달고 항의에 나서는 싸움꾼이 되고 일부가 정권에 접근하며 문학을 힘의 세계에 빠트리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번 매스컴을 타게 되면 이내 순수한 시심(詩心), 초심을 잃어버리는 그들은 반 지하에서 라면으로 연명하며 낡은 기타 하나에 목숨을 걸고 진지하게 작사를 하고 애절하게 열창을 하는 대학가나 달동네의 저 수 많은 무명 작사가와 작곡가, 길거리가수, 버스커들을 무색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난감한 사회현상을 누가 감히 해결하겠습니까만 이 늙은 시인이 여기 짧은 반성문 하나를 올립니다.
한 20년 전에 부산의 중앙동에 자주 모이는 시인들이 <시(詩)오름산악회>를 결성하고 주말에 산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는 등산보다는 <시오름>이라는 명칭에 탄복했습니다. 좀 발칙한 상상이지만 그 <시오름>에서 <시적(詩的) 오르가즘>을 연상한 것입니다.
가장 정확한 표현으로 <오르가즘>은 남녀의 성희(性戲)에서 서로에 대한 탐닉과 몰입이 절정을 지나 파국에 이르러 죽음보다도 더 아득한 나락에 떨어지는 삶의 절정이자 절멸을 말하는 것입니다. 문학에 뜻을 둔 지가 반세기가 넘고 시인이란 이름을 들으며 시를 쓴지 30년이 가깝로록 여전히 무명시인인 저는 자신이 여태 단 한 번도 <문학적 오르가즘>에 이르지 못한 것을 느끼고 전율(戰慄)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작은 거인 조용필이 한 곡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전신의 힘과 열정, 심지어 머리카락 하나까지 몰입하는 모습에서도 오르가즘을 느끼고 노래경연에 나온 무명가수의 처절한 열창과 춤사위에 열광하지만 우리의 시인과 문인은 어쩐지 자기만족의 메커니즘에서 못하는 느낌입니다. 성군 세종대왕의 가장 아픈 손가락, 미운오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궁벽한 곳에서 늙고 병든 한 시인이 감히 우리의 가요계와 문단을 진단한다는 것이 많이 넘치는 일이겠지만 저는 남은 생애를 제 영혼의 진정한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는 단 한 줄의 시, 단 한곡의 노랫말을 남기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이 길고 난감한 연재를 마칩니다. 끝까지 동행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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