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고서로 풀어내는 사람 이야기 (20)서산대사 휴정이 『선가귀감』을 지은 뜻

조해훈 승인 2019.09.02 14:33 | 최종 수정 2019.09.28 10:21 의견 0
서산대사 영정. 출처 : 위키피디아
서산대사 영정. 출처 : 위키피디아

필자의 선조는 시골의 유자(儒子)들이어서 집안에 유학자들의 문집 등이 많으나, 불교 관련 서적도 제법 있다. 그 중에 조선 중기의 승려인 서산대사 휴정(1520~1604)이 지은 『선가귀감』(禪家龜鑑)이라는 책도 있다. 승려가 되기 전 성균관에서 과거공부를 하였던 그는 『유가귀감』과 『도가귀감』도 펴냈다.

휴정은 50여 본의 불교서적과 조사들의 어록 중에서 자신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선가의 말씀들을 가려 뽑고, 자신의 주해를 첨가하여 선가귀감을 편찬한 것이다. 휴정이 승려였으므로 이 책에 그의 사상과 철학이 잘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필자는 선가귀감을 통하여 그가 이 책을 지은 뜻을 간략하고 쉽게 한 번 풀어보기로 하였다. 이 책은 전국의 사찰에서 간행되어 불교서적 중에서는 소위 베스트셀러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스님이 아닌 한 연구자로서 요즘 이 책을 번역 중에 있다.

알다시피 휴정은 임진왜란 때 선조의 부탁으로 승병을 통솔하여 한양을 수복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하였고, 유·불·도 삼교통합론을 강조한 선승이었다. 그는 1540년 계를 받고 공부에 전념하다 1549년 승과에 급제한 후 1556년까지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를 지냈다. 임란 때 선조는 그에게 팔도선교도총섭(八道禪敎都摠攝)이라는 직함을 내리기도 하였다. 결국 그는 불교계의 오랜 숙제였던 선교양종을 통합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위에서 말하였듯이 선가귀감의 내용들 모두 휴정이 창작한 것은 아니고, 선가에서 오랫동안 전해오는 말씀들에 토를 단 것이다. 또한 이 책의 말미에서 선가 5종인 임제종·조동종·운문종·위앙종·법안종을 구별하는 설명을 붙임으로써 송나라의 각범 혜홍(1071∼1128)이 지은 불교서적인 『임제종지』가 탁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임제종지는 당나라 때 임제 의현(?∼867)이 임제종을 일으켰는데, 임제종의 종지(宗旨:종파의 중심되는 가르침)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역은 책이다.

휴정 당시의 불교계는 선종과 교종이 서로 혼합되어 있어, 출가자들이 수행의 본질을 찾지 못하고 혼돈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휴정은 선종에서는 견성법(見性法)을 전하고, 교종에서는 일심법(一心法)을 전한다는 사실을 밝혀줌으로써 해탈하는 올바른 길을 제시한 것이다.

『선가귀감』 본문 첫 장(왼쪽)과 본문 뒷 부분.

선가귀감은 휴정이 1564년 여름에 저술을 완료한 후 1579년(선조 12) 그의 제자인 사명대사 유정이 발문을 쓰고 이를 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그 후 유점사(1590년)·송광사(1607·1618년)·용복사(1633년) 등의 여러 사찰에서 간행되어 널리 읽혀졌다.

숭유억불 정책을 펴던 조선시대 이래로 한국의 불교계는 선가귀감을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까지 여러 권의 국역본도 출판되었다. 또한 일본의 임제종도 이 책을 중요시 하여 180여 종에 이르는 원본과 주석서 등을 간행하였다. 어찌 보면 이 책이 한국에서보다 일본에서 더욱 인기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선가귀감에 휴정 자신이 쓴 서문과 그의 제자 사명대사 유정이 쓴 발문을 보면 이 책을 편찬한 목적을 알 수 있다. 그는 당시의 승려들이 불교사상 보다는 세속 학문인 유학 공부와 시 짓기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승단 내에서도 교학승과 선승들이 서로 반목하고 있었기 때문에 출가 승려들에게 불교의 진수를 가르치기 위해 이 책을 지은 것이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다 설명할 수 없지만 몇 가지로 간략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선학과 교학을 구분하여 양 교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선학의 우위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불교의 목표인 깨달음을 얻는 방법과 참다운 수행인이 지켜야 할 마음자제, 무명과 분별심을 없애는 공부 방법, 돈오한 후 점수를 하는 공부 절차, 수행인의 태도, 수행자는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 선가귀감에 나타나는 휴정 사상의 핵심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선교일치와 돈오점수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휴정이 선가귀감을 편찬한 뜻을 한 번 더 정리한다면 자신의 제자와 수행자들을 일깨우기 위한 교재로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역사·고전인문학자, 교육학박사 massjo@hanmail.net>

<참고자료>

-김기주, 「『선가귀감』을 통해 본 휴정의 성리학 이해」, 『철학연구』 122, 2012.
-김용태, 「청허 휴정과 조선후기 선과 화엄」, 『불교학보』 73, 2015.
-정혜정, 「서산 휴정의 삼교(三敎)결합의 심성 이해와 마음도야」, 『한국교육사학』 34, 2012.
-조기룡, 「청허 휴정과 의승군의 활동과 역할에 대한 재조명」,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69, 2016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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