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고서로 풀어보는 사람이야기 (21)현종의 척불정책에 반대한 승려 처능

조해훈 승인 2019.09.14 17:46 | 최종 수정 2019.09.14 18:00 의견 0
 백곡 처능 스님 재조명을 강조하는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 BBS 캡처.

호가 백곡(白谷)인 처능(處能·1617~1680) 스님은 조선의 18대 왕인 현종(1641~1674)이 즉위 직후 불교 탄압 정책을 펴자 전국 승려를 대표하여 이를 반대하는 내용의 상소문인 「간폐석교소」(諫廢釋敎疏)를 올렸다.

현종은 즉위하던 해에 백성의 출가를 엄격히 금지하고, 스님을 환속키는 정책을 폈다. 선종(禪宗)과 교종(敎宗) 중심 사찰인 봉은사와 봉선사는 말할 것도 없고, 도성에 있는 자수원과 인수원 등 비구니 사찰 등도 폐쇄하였다. 또한 봉은사에 있는 역대 왕의 위패를 땅에 묻으며, 왕실과의 절연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며 불교를 배척한 것이다.

이에 처능은 “불교가 국가의 다스림에 방해되거나 해롭지 않다”면서 “사찰은 국가를 비보(裨補·도와서 모자란 것을 채움)하고 스님들은 국가와 백성들에게 애국애민하는 종교”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봉은사와 봉선사, 자수원, 인수원 등은 역대 왕실의 원당을 없애서는 안 된다고 구체적인 사례를 지적하면서 8,150자에 달하는 상소문을 올린 것이다. 즉 간폐석교소는 불교의 폐지에 대해 간언하며 올린 상소문이란 뜻이다. 불교의 정당성을 주장한 이 상소문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폐사의 위기에 직면한 봉은사와 봉선사가 존치되는 등 현종의 척불정책이 다소 축소되었다는 게 정평이다.

①처능 스님의 저서인 『대각등계집』 본문 앞쪽.
처능 스님의 저서인 『대각등계집』 본문 앞쪽. 

이번 글에서 처능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것은 필자가 운영하는 목압서사 바로 옆인 쌍계사에서 스님이 오랫동안 공부를 하였으며, 왕에게 목숨을 걸고 상소를 할 정도로 강단이 있고, 문장에도 뀌어났다는 등의 이유 때문이다.

처능의 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정국을 잠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청나라 심양에서 태어난 현종은 아버지 효종을 이어 18살(1659)에 왕위에 올랐다. 당시 조정은 여전히 효종이 내건 북벌론을 주장한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인조의 계비인 조비의 복상 문제를 둘러싸고 서인과 남인 사이에 예송논쟁(禮訟論爭)으로 정국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혼미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처능이라는 한 스님이 나서 긴 상소문으로 척불의 부당성을 지적한 것이다. 처능은 12세에 벽암 각성(1575~1660)의 제자인 의현에게 출가하고, 17세부터 20세까지는 선조의 부마인 신익성에게 승려의 신분으로 유학과 시문을 수학하였다. 이는 처능이 유학과 역사 및 시문에 능한 배경이 되는데, 이로 인해 문장가로서의 명성을 크게 떨친다.

처능은 이후 쌍계사에서 수행 중이던 사법 스승인 각성 스님을 찾아가 20여 년간 모시며 공부를 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승병들과 싸웠던 각성은 쌍계사와 칠불암, 신흥사 등에서 오랫동안 수행을 한 대덕고승으로 『도중결의』와 『참상선지』 등을 저술하였다.

학계에서는 처능의 상소에 대하여 “핵심 내용은 성리학적 예제의 확립에 따른 불교 중요사항인 승려의 혁거와 사찰을 대표하는 선교 양종의 본산과 비구니원의 철훼였다”라며 분석하고 있다. 즉 조선시대 절대 권력을 가진 임금의 시책에 한 스님이 드러내놓고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더구나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운 사대부들의 기세가 등등하던 시절에 스님의 상소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일이었다. 상소의 내용과 형식에 대해서는 ‘일목요연하고 강단 있는 내용’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②『대각등계집』에 실린 「간폐석교소」 부분.
『대각등계집』에 실린 「간폐석교소」 부분.

장원급제하여 우의정까지 지낸 식암 김석주(1634~1684)는 “(백곡)대사의 문장은 광대무변하여 마치 계곡의 물이 쏟아져 나오는 듯 했고, 강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듯 했다”고 극찬했다. 숙종 당시 사나사에서 열린 대법회의 49명 고승 가운데 한 명으로 동참한 자수무경(子秀無竟·1664∼1737) 스님은 “우리나라 시승은 고금에 수가 많지만 문장과 도덕을 함께 갖추고, 사람의 이목을 놀라게 한 분은 오직 백곡스님뿐”이라면서 “기이한 자취가 신출귀몰하여 하늘의 별들처럼 빛났으며, 그 유풍과 여운은 하늘을 떠받치고 우주에 뻗어서 한 없는 곳으로 미쳤으니 그 문장과 도덕이 큰 기운을 얻었다고 이를 만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처능의 이 상소문은 그의 시문을 엮은 『대각등계집』(大覺登階集·2권 2책)에 실려 있다. 스님이 입적한지 3년 후인 1683년 전북 김제 금산사에서 초판이 간행되어 『백곡집』으로도 불리며, 시문을 비롯하여 행장과 비명(碑銘), 권선문 등 처능의 글 200편 가량이 실려 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교육학박사 mass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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