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오의 '생활법률 산책' (10)맥브라이드, 그 80년의 권위

이상오 승인 2019.01.21 13:38 | 최종 수정 2019.01.23 19:48 의견 0
맥브라이드
맥브라이드

1936년, 미국의 정형외과 의사이자 오클라호마 의과대학 교수였던 맥브라이드(Earl D. McBride)는 방대한 분량의 책자를 발간했습니다. 책의 제목은 ‘보상 가능한 부상의 치료에 대한 장해 평가 및 원칙’ (원제 : Disability Evaluation and Principle of Treatment of Compensable Injuries)입니다. 이 책에는 사람의 신체 부위 훼손에 따른 노동능력 상실정도를 백분율로 표시한 평가표가 포함되어 있는데, 실무적으로는 통상 ‘맥브라이드 노동능력상실 평가표’라고 하며, 그냥 줄여서 ‘맥브라이드표’라고도 합니다.

발표된 이후 몇 차례 개정을 거듭하다가 1963년에 최종 개정판(6판)이 발행되어 현재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최초 발행한 때로부터 80년이 지났고, 최종 개정판 발행일로부터도 60년이 다되어 가는 고물임에도 불구하고 인사사고 손해배상 분쟁에서 맥브라이드표의 위력은 실로 막강합니다.

사람이 사고를 당해 심한 상해를 입고 충분히 치료를 받았음에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회복되지 않으면 장애 또는 장해가 남았다고 합니다. 후천적으로 신체 장애인이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장애’와 ‘장해’는 혼용되어 쓰이기는 하나 엄밀히 말하면 구분되는 개념입니다.

장애(障碍, Impairment)는 질병 또는 사고로 인하여 어떤 장기나 조직에 기능이상이 초래된 상태를 의미하는 의학적 개념이고, 장해(障害, Disability)는 의학적 신체기능장애를 기초로 직업, 나이, 성별 등을 고려하여 평가한 사회적, 경제적 신체기능 이상을 의미하는 법적인 개념입니다.

맥브라이드표의 핵심은 바로 ‘장해(障害)’입니다. 장해는 곧 ‘노동능력상실’을 의미합니다. 의사가 만들기는 했으나 의학적인 용도보다는 법적인 용도로 더 많이 사용되며, 애초에 법적 분쟁에 적용하도록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사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맥브라이드표는 매우 친숙합니다. 이 표를 모르고서는 제대로 된 밥벌이를 할 수 없습니다. 자주 쓰이는 항목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머릿속에 넣어 두어야 합니다. 맥브라이드표를 얼마나 자유자재로 입에 올리고, 활용할 수 있느냐가 이 분야의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합니다.

맥브라이드표는 사람의 신체장해 또는 신체부위를 15개의 대 항목으로 구분한 다음, 그 하부에 다수의 소 항목을 두고 다시 그 아래 최대 3단계 까지 세부항목으로 분류합니다. 최종 세부 항목에 대응하는 노동능력상실 정도를 백분율로 표시합니다. 노동능력상실률은 최저 1%에서 100%까지 나올 수 있습니다. 만약 노동능력상실률이 50%라고 하면 정상적인 상태에 비해 50%의 신체기능을 상실하였다는 것이고, 이는 월 200만 원 소득이 있는 사람이 월 100만 원만큼의 소득을 잃는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소득을 잃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노동능력상실률만큼의 소득을 잃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예컨대, 교통사고로 무릎을 다쳐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채, 무릎 운동이 일부 제한되는 후유장해가 남았을 때 맥브라이드표를 적용하면, 대항목으로는 ‘관절강직’항, 그 하부항목으로는 ‘슬관절(무릎관절)’항, 이하 세부항목으로는 ‘부전강직’, 그 이하에는 실제 운동이 제한되는 범위에 따라 5항목으로 더 세분되는데, 노동능력상실률이 최소 10%에서 최고 27%까지 평가될 수 있습니다.

맥브라이드표는 사람의 신체장해를 평가할 때 적용하는 기준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판정의 주체는 의사입니다. 후유장해가 발생한 신체 부위의 전문의가 맥브라이드표의 평가 기준에 따라 환자의 노동능력상실률을 판정하는 것입니다.

인사사고에서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데는 노동능력상실률이 거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므로 분쟁 당사자들은 여기에 사활을 걸고, 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의사의 판단을 거의 그대로 수용합니다. 법률분쟁에서 의사의 권한과 책임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영역입니다. 손해배상을 얼마나 받느냐가 사실상 의사의 손에 달렸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맥브라이드표는 최소 60년이 넘게 사용되어 왔음에도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60년 동안의 의학 발달과 사회 변화를 생각하면 선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가장 태생적인 문제는 책을 쓴 의사 맥브라이드가 정형외과 전문의였기 때문에 신체장해 항목이 정형외과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어서, 정형외과 이외의 영역에 관해서는 세부적인 분류가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치과나 성형외과 영역은 아예 언급조차 없습니다.

현대 의학과 사회변화상으로 봤을 때 고루하거나 타당하지 않은 기준이 있는가 하면, 신체장해의 정도 또는 직업별 장해계수와 노동능력상실률이 명백히 모순되거나 인쇄상의 오류 및 판단 착오도 있어서 구체적인 적용과정에서 혼선을 빚는 경우도 많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시적인 신체장해와 영구적인 신체장해를 별도로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일정기간 치료를 하면 완치가 되는 질환이나 상해에 대해서도 영구적 장해와 마찬가지의 노동능력상실률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통상 2주 정도의 치료로 완치된다고 하는 경추염좌(목뼈 삠)에 대해서도 14%의 노동능력상실률이 표시되어 있는데, 과거 상당기간 동안 영구적 장해로 평가받은 적이 있습니다. 가벼운 염좌 증상만으로 영구적인 노동능력상실 평가를 받아 수 천만원의 횡재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습니다.

물론 요즘은 그런 터무니없는 평가를 하는 일은 없습니다. 대신 장해 평가를 하는 의사의 재량에 의해, 환자의 상태에 따라 한시적인 노동능력상실을 인정하거나, 원래 표시된 노동능력상실률의 일부만을 인정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맥브라이드표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상오 국장
이상오 국장

이러한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맥브라이드표가 여전히 손해배상사건의 현장에서 건재한 이유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가배상법이나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같이 법령에 신체장해 인정기준이 명확히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인사사고 손해배상사건에서 맥브라이드표가 사실상 유일한 기준입니다.

맥브라이드표의 불합리한 기준을 바로잡는다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AMA(미국의사협회), KAMS(대한의학회 장애평가기준) 등 새로운 기준이 제시되고 있기는 하나 아직까지는 실무에서 적용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기준들이 맥브라이드표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보수적인 법원이 적극적으로 오랜 기준을 바꿀 뚜렷한 이유도 없습니다.

맥브라이드식 노동능력상실평가기준이 다른 평가기준에 자리를 내주는 일이 가까운 시일 내에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시대와 사람을 초월하고 누구나 수긍하는 완벽한 기준을 만들 수 있을 지도 의문입니다. 오래되고 다소 불합리한 부분이 있는 기준이라고 하더라도, 크게 모순되지 않는 범위에서 창의적인 해석이 발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무에서도 그러한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맥브라이드표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서면' 사무국장>(051-817-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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