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오의 '생활법률 산책' (12)상속 이야기 ... 사람은 죽어도 자리는 남는다
이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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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8 17:24 | 최종 수정 2019.02.0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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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오래된 일인데, 어느 지역의 기업가가 가족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가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일가족 전부 사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남긴 재산이 1000억 원이 넘었습니다. 부인과 자녀, 손자들까지 모두 사망하였고, 유일하게 함께 여행을 가지 않은 사위가 전 재산을 상속받았습니다. 상속은 철저히 혈연 중심으로 이어지는데,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위가 어떻게 장인의 전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을까요.
당연히 분쟁이 발생했습니다. 그 기업가의 형제들이 사위를 상대로 상속재산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가까운 가족들이 모두 사망했으므로 그 다음 가까운 가족인 형제들에게 상속권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상속법에서 형제들은 3순위인데, 사망한 기업가에게는 1순위인 자녀와 손자들이 모두 함께 사망하였고, 2순위인 부모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으므로 3순위인 형제들이 상속받아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법에 규정된 상속순위로만 보면 맞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상속법에서 가장 까다로운 제도가 개입됩니다. ‘대습상속(代襲相續)’ 이라고 하는데 용어가 좀 생소합니다. 상속은 재산을 물려받는 것이므로, 대습이라는 말만 잘 해석하면 되는데 흔히 알고 있는 세습(世襲)과 비슷한 개념으로 보면 됩니다. 쉽게 말해서 대신 자리를 물려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자리는 바로 죽은 사람의 자리입니다.
간단한 사례를 한 번 보겠습니다. 아버지에게 두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큰 아들이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고로 죽고, 며느리와 어린 손자가 남았습니다. 이후 아버지도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남긴 재산은 누가 상속을 받을까요. 상속순위로만 보면 당연히 살아있는 둘째 아들이 유일한 1순위 상속권자이므로 아버지의 재산을 전부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상속법은 이미 죽은 아들에게도 살아 있는 아들과 똑같이 상속권을 인정합니다. 죽은 사람이 실제로 상속을 받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죽은 아들의 상속 자리에 아들의 배우자였던 며느리와 손자가 대신 들어오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아버지가 남긴 재산은 두 아들에게 똑 같은 비율로 상속이 되는 것입니다. 상속과 관련해서는 사람이 죽어도 그 자리는 그대로 남습니다. 이것이 대습상속의 가장 기본적인 골격입니다.
이러한 대습상속을 인정하는 것도 혼인과 혈연관계를 두 기둥으로 하는 상속법의 이념 때문입니다. 아들이 먼저 죽더라도 며느리와 손자는 여전히 아들을 통해 이어진 가족이므로 살아있는 아들과 똑같이 가족으로서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먼저 죽은 사람이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딸이 먼저 죽어 아버지의 재산을 직접 상속을 받지 못하게 되어도 아버지의 재산은 딸의 배우자인 사위와 손자에게 상속되는 것입니다.
당시 그 상속사건 소송에서 문제가 된 것은 과연 누가 먼저 죽었느냐 입니다. 만약 딸이 먼저 죽고 아버지가 나중에 죽었다면 위의 사례처럼 전형적인 대습상속이 되므로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항공기 추락사고로 모두 사망한 사건에서 누가 먼저 죽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우리민법은 이러한 경우 모두 동시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물론 누군가 조금이라도 더 생존해 있었다는 증거가 있으면 그 증거가 우선합니다. 가족이 많으면 좀 번거러운 산수를 좀 해야 합니다.
모두 동시에 사망한 것으로 인정한다면, 사망한 여러 가족들 간에 누가 먼저 상속을 받는 지, 대습상속 사유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으므로, 죽은 사업가와 가장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는 형제들이 재산을 전부 상속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 되었습니다. 그럴듯합니다만 법원은 결국 사위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사건이 대법원까지 갔으나 결론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법률상으로 동시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는 것과 무관하게, 당시 함께 있었던 가족들 중 누가 먼저 죽었다고 해도 결국 최종적으로는 딸의 법률상 배우자이자 손자의 아버지인, 사위가 상속을 받게 되는 것은 틀림없으므로 형제들에게까지 상속권이 넘어갈 일은 없다는 것이 법원의 최종 판단이었습니다. 좀 복잡하긴 해도 이 역시 상속법에서 혼인과 혈연의 대원칙이 그대로 적용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무법인 '서면' 사무국장>(051-817-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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