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대한민국은 공무원의 세상’라는 말이 나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공무원시험에 청춘을 다 바치는 ‘공시족’이 흔하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힘든 시대에 공무원은 안정적인 직업인 데다 사회적 대우도 좋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심지어 서기관급 이상 고위직 공무원들은 퇴직 후에도 보통사람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신의 직장’을 쉽게 꿰찬다. 이 같은 사회적 대우를 누렸음에도 불구, 공무원들이 퇴직 후 공동체에 봉사하는 모습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아쉬운 대목이다.
여기 이와 대조적인 인물이 있다. 고시 출신임에도 반골로 낙인찍혀 공무원 사회에서는 출세하지 못했으나 퇴직 후 공동체에 봉사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자신이 몸담은 지역공동체와 시민단체에서 묵묵히 봉사하는 모습은 아름답다는 말이 부족하지 않다.
김영춘 목요학술회 사무처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주 재직시절 그가 처음 제안해 실현된 부산시민공원 등지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다.
- 공무원 재직 기간 업무와 관련된 일 중 가장 기억에 남거나 성과로 꼽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바로 이곳 부산시민공원과 관련된 일입니다. ‘하야리아부대 부지의 공원화’ 제안을 제가 처음 했습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실현되었지요. 부산시민공원을 보면 속으로 뿌듯합니다.
- 아, 그렇습니까? 그 과정을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총무처 국비유학생으로 1991년 일본 지바대학 원예학부 석사과정을 다녔는데,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일본을 비롯한 세계 대도시의 녹지행정 사례를 공부했습니다. 일본의 경우 1945년 패전의 폐허 상황에서도 도시의 백년대계 차원에서 군부대 같은 도심부적시설에 공원을 조성했더군요. 당시 부산은 학교 이전 등으로 도심에 땅이 비기만 하면 아파트나 공공청사를 짓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였습니다. 시청, 금융단지, 법조타운, 롯데백화점, 부산일보빌딩 등이 과거 학교나 군부대였던 곳입니다.
- 그래서 유학을 마치고 부산시에 복귀해 ‘하야리야부대 부지 공원화’ 제안을 추진했겠군요.
▶그렇습니다. 1994년 공원과 관리계장 시절, 때마침 부산발전연구원(현 부산연구원)의 시민논문공모가 있었습니다. 그 공모에 석사논문을 토대로 저술한 「부산의 공원유원지의 문제점과 개발전략」이라는 논문을 응모해 가작으로 당선됐습니다. 그해 시정연구지에도 이를 축약해 같은 제목으로 게재했고요. 일본이 패전 후의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도 군부대를 공원화한 것처럼 하야리아부대를 비롯한 도심의 부적시설은 공원화하자는 게 핵심 요지입니다. 또 대부분의 부산 공원유원지가 산에 지정된 이상, 임도나 케이블카 설치 등으로 접근성과 관광 활용성을 높이고, 민간이 운영하는 동래와 성지곡 동물원을 시립화하자고 제안했습니다.
- 그 전에는 하야리야부대 부지 활용계획은 무엇이었습니까? 도시계획 차원의 공원화 지정 노력을 어떤 방식으로 했습니까?
▶1994년 4월 당시 하야리아부지는 상업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부산시가 도시계획 내부 의견 수렴을 한다기에 하야리아부지를 공원으로 지정해달라는 협조공문을 과장, 국장의 결재를 받아 환경녹지국에서 도시계획국으로 보냈습니다.
- 반향이 있었겠는데요?
▶이와 관련된 언론보도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고교동기생인 당시 항도일보 안 모 기자가 공문내용을 좀 보자고 해서 ‘오프더레코드(비보도)’ 약속을 하고 보여주었는데, 다음날 신문에 하야리아부대 부지 공원화 내용이 대문짝만 하게 보도되었습니다.
- 그 일로 상사들로부터 질책을 들었겠군요.
▶정문화 시장이 정책결정도 안 된 상항이 어떻게 보도가 되느냐며 화를 많이 냈다고 들었어요. 국장으로부터 직접 꾸지람을 듣긴 했지만 간부들도 공감을 했던지 큰 일 없이 지나갔습니다.
- 그 제안이 본격 논의된 건 언제인가요?
▶이듬해 문정수 시장이 민선부산시장에 당선되면서 하야리아부지의 공원화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16만 평의 방대한 도심부지를 시 예산으로 매입해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도 제기되면서 부분 공원개발안이 제안되는 등 논란 끝에 2006년 시민공원화가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 공무원 시절 업무 중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일이 있으면 소개해주시죠?
▶푸른부산가꾸기 사업입니다. 일반적으로 도심 로터리의 녹지화는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재 부산은 서면로터리, 문현로터리와 가야로 및 전포로 중앙분리대 등 시내 도로와 로터리 곳곳에 나무를 심어 작은 공원으로 조성했습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이를 좋아하더군요. 저의 기획과 손을 거쳐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라 보람을 느낍니다.
- 이번에 방향을 좀 바꾸겠습니다. 공무원 시절 업무와 관련된 가장 안타까운 일을 꼽는다면요?
▶해운대 수목원으로 조성된 석대쓰레기매립지입니다. 이곳은 1987년부터 1994년까지 부산시민의 쓰레기를 매립한 곳으로 주변에서 발생하는 토사를 복토하여 8년에 걸쳐 허브원, 야생화원, 대나무 품종원, 잔디광장, 승마체험장 등을 조성했습니다. 해운대구에서는 축구장, 테니스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싸그리 무시하고 1000억 원을 들여 수목원을 조성한다고 하여 저는 반대했습니다. 그동안 조성한 시설들을 그대로 살리고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 관리해 나가면 훌륭한 자연휴식공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수목원 조성과정에 언론과 시민단체로부터 엄청난 질타를 받고 많은 예산이 낭비되었습니다.
- 해운대수목원과 관련하여 <시민시대>, <해운대라이프>를 통해 많은 지적을 헀는데요.
▶850억 원을 들여 그저그런 산을 만든 셈인데 나무만 보러올 사람이 없으니 초식동물원을 군데군데 만들면 아이들이 많이 와서 동물도 보고 수목원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박 시장에게도 직접 얘기했습니다. 시에서는 제 의견을 받아들여 초식동물원을 조성한다고 하여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 업무와 관련해 또 다른 아쉬운 일이 있었다면 얘기해 주시죠?
▶제가 구상한 황령산스키돔 건은 제 개인에게도 큰 시련이면서 시장의 우유부단으로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기도 했습니다. 업자 편을 들었다 하여 직위해제와 감봉3개월의 징계를 받았고, 석대쓰레기매립지의 경우 불법복토를 문제 삼았습니다. 50cm 이상 복토할 때의 그린벨트관리규정 위반이지요. 사실 매립지 복토는 10m 이상 해야 나무가 정상적으로 생육할 수 있습니다. 스키돔도 신속하게 결정해 만들었다면 부산의 관광명소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공무원 시절 업무적인 일로 상사와 충돌이 제법 많았네요.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자평하십니까?
▶소신이 강한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시립동물원도 제 주장대로 만들었다면 더파크와 같은 사태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제가 승진에서 피해를 봤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때 당신말대로 하는 게 옳았어‘하는 얘기를 간혹 듣기에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 보통 공무원들은 상사 특히 ‘시장의 뜻’이라면 소신을 접고 거기에 따르는 바른 태도라고 생각하는 것 같던데요?
▶맞습니다. 특히 행정직 공무원들은 더하죠. 그러나 우리 기술직 공무원은 조금 다릅니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을 하다 보니 자신의 일에 대한 소신이 강합니다. 자리도 한정된 측면도 있고요. 무엇보다 일 욕심과 애착이 컸던 때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시 그 자리에 간다고 해도 같은 처신을 할 것 같습니다. 승진에 초연한 성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승진을 위해 무작정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 영어, 일어, 중국어 능통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언제 외국어 공부를 하셨나요?
▶천성이 외국어 공부하기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영어는 중고등학교와 대학 때 누구나 열심히 하는 것처럼 했고요. 1987년 내무부 지방행정연수원에서 3개월 영어교육과정을 수료했는데, 종합성적 1위를 했습니다. 일어는 대학 시절 기숙사 내 일어강좌를 수강하면서 기초를 잡은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1991년 총무처 국비유학생에 선발돼 일본 지바대학에 유학하는 동안 틈틈이 중국어와 영어도 계속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2005년 중국 북경임업대학 유학도 할 수 있었고 중국어를 구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퇴직한 요즘도 NHK, CCTV, CNN을 들으며 공부를 겸해 국제정세도 파악합니다.
- 2012년 녹지공원과장에서 명예퇴직을 한 뒤 부산시국제교류재단 사무처장에 임명되었는데, 외국어 실력이 업무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공무원 생활 내내 승진 지체 등으로 자괴감이 들었는데 국제교류재단 업무를 하면서 ‘내 일이구나’ 싶었습니다. 물론 그동안 닦은 외국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도 있었고요. 30여 부산시 재매결연 도시의 고위인사들과 직접 대화하며 부산시와의 교류협력을 증진하는 데 기여한다는 자부심도 컸습니다.
- 부산시국제교류재단 사무처장 재임 기간을 포함해 31년간의 공무원 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때 심정은 어땠습니까?
▶국제교류재단 사무처장 연임이 되지 못한 게 몹시 아쉬웠습니다. 31년 동안 시계추처럼 출근하던 곳이 없다고 생각하니 앞이 막막했습니다. 한동안 요새 말로 ‘멘붕’ 상태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 국제교류재단 사무처장에서 퇴임하고 (사)목요학술회 사무처장, 해운대라이프 기자로 인생 2막을 열어가고 있는데, 목요학술회와는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요?
▶먼저 목요학술회를 간단히 소개하면,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진흥을 도모하고 건전한 시민문화를 가꾸는 데 이바지하고자 부산의 학계·언론계·경제계 인사들이 의기투합해 1979년 설립한 비영리 시민문화단체입니다. 특히 목요학술회는 설립 이듬해부터 월간 『시민시대』를 발간해왔는데, 올해 7월로 439호를 기록했습니다. 부산지역 시민문화의 요람 역할을 해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목요학술회와의 인연은 공무원 시절 이 단체 회장이자 월간 『시민시대』 주간인 서세욱 회장님을 만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황령산 스키돔 사업과 관련해 당시 황령산살리기 운동을 펼치던 서 회장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징계를 받았을 때 서 회장은 부산시장을 찾아가 저를 변호해주었습니다. 이후 저는 서 회장의 요청으로 월간 『시민시대』에 칼럼 등을 연재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퇴직하자 서 회장이 저에게 『시민시대』 편집주간을 맡아달라고 요청해 일하게 되었습니다.
- 현재 목요학술회 사무처장과 『시민시대』 편집주간이란 직책을 가졌는데, 업무는 어떻습니까?
▶정말 바쁩니다. 사무처장은 회장 및 회장단을 보좌하면서 단체의 실무를 맡는 건데, 최근 코로나19로 큰 행사가 없었습니다. 월간 『시민시대』 업무가 정말 간단치 않은데, 저는 편집주간이라기보다 기자와 편집위원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매월 특집과 이달의 인물을 발굴해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작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실감합니다. (웃음)
- 인생 2막을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흔치 않은데요, 보람이 있다면?
▶공무원 시절에는 소신이 번번이 꺾이는 바람에 저는 자주 좌절하고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해운대라이프와 『시민시대』를 통해 시민의 입장에서 소신껏 목소리를 낼 수 있어 옛날의 심적인 위축감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무보수 봉사직으로 바쁘고 힘들지만 건전한 시민문화를 가꾸는 데 일조한다는 게 큰 보람입니다.
- 건강해 보입니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매일 아침에 2시간씩 테니스를 칩니다. 또 취미로 드럼을 배웁니다. 저의 심신 건강의 비결입니다.
민간단체인 한일친선협회 부회장이기도 한 김 처장은 코로나19가 진정되는 대로 일본역사기행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민간차원의 한일교류를 활성화하고 싶다고 했다. 또 중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중국과 민간교류를 다지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 처장은 요즘 늘 ‘청년처럼 정진하자’고 다짐하며 일어와 중국어, 그리고 두 나라 역사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김영춘 처장은
▶1958년 부산 출생 ▶동래고 ▶서울대 농대 임학과 ▶기술고시 합격 ▶1984년 6월 부산시공무원 임용 ▶환경녹지국 산림계장 ▶내무부 지방행정연수원 수석 수료 ▶일본 지바대학 원예학부 환경녹지학과 석사과정 수료 ▶환경녹지국 공원개발계장 ▶동래구 지역경제과장, 수영구 지역경제과장 ▶녹지공원과장 ▶녹지사업소장 ▶중국 북경임업대학 유학 ▶반여농산물도매시장 관리사업소장 ▶지방행정연수원 최고관리자과정 수료 ▶2012년 9월 명예퇴직 및 부산시국제교류재단 사무처장 취임 ▶현 목요학술회 사무처장, 월간 『시민시대』 편집위원, 한일친선협회 부회장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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