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종말'은 유효한가? ... 남한과 북한의 체제경쟁 가능성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과 ‘종즉유시終則有始’의 『주역』. “역사에는 더 이상의 진화는 없다. 역사는 종말을 고했다.” 후쿠야마는 도발적으로 선언했다. 자유민주주의가 인류의 이데올로기 진화의 종점이고, 자유시장경제가 최후의 경제제도라는 것이다. 『주역』에서는 ‘끝’은 곧 ‘시작’이다. 겨울은 끝이 아니라, 봄을 배태胚胎한 시작으로 풀이한다.
체제 내의 모순으로 서구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정치적·경제적 약점을 허다히 노정하고 있지만, 자유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는 확고한 듯 보인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의 도전을 경제 문제와 아시아-태평양에서의 지정학적 패권에 대한 도전으로 한정하여 보는 경향이 있다.
시진핑은 중국의 권위주의적 자본주의의 미덕을 자랑하고 있다. 자랑에 머물지 않고 그 이데올로기를 수출하려 한다. 세계적으로 중국의 이데올로기 경쟁력은 결코 무시해도 될 정도가 아니다. 이미 후발 국가들은 자유민주주의적 자본주의보다 중국의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를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한반도에 평화 정착을 바탕으로 남북한은 경제 협력을 통해 공동 번영을 추구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체제는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지도 모른다.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에 가까운 부국富國 남한을 정치 모델로 생각할 수 있을까?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재의 삶이 고달프다는 방증이다. 출산율은 세계 꼴찌 수준이다. 미래에의 전망이 어둡다는 증거이다.
세계는 물론 남북한도 이제 본격 정치체제 경쟁에 들어섰는지도 모른다. 먹이를 뺏고 뺏기는 가혹한 경쟁은 독이지만, 선의의 체제 경쟁은 약이다. 경쟁하는 체제 덕에 부패를 줄일 수 있고, 내부 모순에 대한 대안을 다른 체제에서 제공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가올 한반도에서의 체제 경쟁을 염두에 두면서, 자유유민주주의 운명에 대한 세계의 흐름을 살펴보자. -편집자 주-
부쩍 커진 권위주의 국가(비자유주의 국가)의 소프트 파워(soft power)¹⁾
이러한 변화의 결과 중 하나는 독재정권들이 대단할 정도로 이데올로기적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고, 이에 함께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 기꺼이 간섭하려 든다는 것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주려한 러시아의 시도는 지난 2년간에 걸쳐서 아주 관심을 끌었는데,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미 서유럽의 정치에 이보다 더 큰 영향력을 오랫동안 행사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러시아는 이탈이아와 프랑스에서 몇 십 년 동안 정치적 좌·우파 양쪽의 과격파에 자금을 대어 주었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는, 러시아는 러시아를 위해 로비하도록 은퇴한 정치가들을 영입하는 데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사람들 중에는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öder 전 독일 총리와 알프레드 구젠바우어Alfred Gusenbauer 전 오스트리아 총리도 포함된다.
현재로서 큰 문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국가가 러시아뿐이겠느냐는 것이다. 대답은 거의 확실히 ‘노no'이다. 곧 러시아의 시도들은 깊이 분열된 민주주의 국가에 권위주의적 강대국에 의한 외부 간섭이 상대적으로 쉽고 놀랄 만큼 효과적임을 증명하여서, 러시아의 권위주의적 동료국가들에게 러시아의 선례를 따르도록 유혹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중국은 이미 해외거주자들에게 이데올로기적 압력을 강화하고 있고, 학문의 주요 중심지에 유력한 공자 연구소를 설립하고 있다. 지난 2년에 걸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등록된 미국 로비스트들에 대한 지급액을 파격적으로 올렸고, 사우디아라비아를 위해 일하는 등록된 외국 대리인의 숫자를 25명에서 145명으로 늘렸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과 권위주의 국가들 사이의 경제적·기술적 힘의 균형이 변화함으로써 서구 민주주의 국가가 외부 간섭에 좀 더 쉽게 노출된다면, 이는 권위주의 국가가 자신들의 가치를 확산시키기가 더욱 용이하다는 것이 된다. 게다가 권위주의적 소프트 파워의 부상은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명백하다. 그 분야는 학계, 대중문화, 외국인 투자, 그리고 개발 원조 등을 망라한다.
예를 들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의 주요 대학교 전부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위치했다. 그러나 권위주의 국가들이 그 차이를 줄이고 있다. 타임즈 고등교육(Times Higher Education)²⁾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세계 톱 250 대학교 중에서 16개는 중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싱가포르를 포함한 비민주주의 국가에 있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중요한 권위주의적 소프트 파워는 한때 민주주의 국가들이 누렸던 뉴스의 보도와 보급에 대한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독재정권들의 능력이 점점 더 커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옛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가 미국에서 다수의 독자를 끌어들인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반면에 카다르의 알 자리라, 중국의 ccTV, 그리고 러시아의 RT를 포함하여 오늘날 국영방송이 생산하는 영상들은 수백만이나 되는 미국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외국 정부에 오염되지 않은 시민 공간을 유지할 능력은 종말을 고했을 뿐 아니라, 언론 보도에 대한 서구의 독점은 끝장이 났다.
서구 자유민주주의 시대가 저무는 징후들
민주적 안정의 오랜 기간 동안에, 미국은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패권적인 초강대국이었다. 소련과 같은 권위주의 경쟁자들은 경제적으로는 빠르게 침체되었고, 이데올로기적으로는 불신 받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민주주의가 더 많은 개인의 자유와 집단적 자기결정권을 약속할 뿐 아니라, 대단히 부유한 삶에 대한 훨씬 더 평범한 전망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배경 조건이 유지되는 한, 민주주의가 전통적 본거지에서 계속 안전할 것이라고 가정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듯 했다. 점점 더 많은 독재 국가들이 민주화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고 희망할 수는 그럴듯한 근거까지 있었다.
그러나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세계의 최고 문화적·경제적 강국인 시대는 이제 저물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유민주주의가 제도로서의 호소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강한 징후와 함께,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이 비자유 민주주의라는 형태로 이데올로기적 대안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명백한 독재자들이 서구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와 맞먹는 생활수준을 자국의 시민들에게 제공한다.
서구 자유민주주의가 다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희망에 마음이 솔깃해진다. 경제 때문에 권위주의의 우위가 종말을 고할 수 있다. 권위주의 국가들이 이룩한 최근의 경제적 성공은 단명으로 끝날지 모른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는 화석연료로부터 얻는 수입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중국의 최근 성장은 치솟는 부채 거품과 유리한 인구 구조 덕에 가속화되었다.
그러므로 부채를 줄이도록 압박을 받거나 노령인구의 효과가 국내를 강타하면, 성장을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동시에 선진국의 경제 성과는 향상될 수 있다. 대공황의 여파가 사라지고 유럽과 북미 경제가 되살아남에 따라, 자유민주주의의 거점 국가들이 다시 한 번 현대화된 독재국가들을 앞지를 수 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국가와 권위주의 국가 사이에 힘의 균형 변화에 관한 정확한 속도와 정도에 관한 예측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난 30~40년 동안 서구의 GDP 성장률을 대충 살펴봐도, 인구 감소와 낮은 생산성 때문에 금융 위기 오래 전부터 서구 경제는 침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중국과 많은 신흥 경제국들에는 따라잡기 성장을 할 수 있는 광대한 미개발 지역들이 있다. 이는 이 나라들이 자신들의 현재 발전 모델을 그대로 실행함으로써 상당한 이익을 계속 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 다른 희망은 브라질, 인도, 그리고 인도네시아와 같은 신흥 민주주의 국가들이 자유민주주의 동맹을 떠받치고 세계에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확산하는 데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려면 근본적인 궤도 수정이 필요할 것이다. 정치학자 마크 플래트너Marc Plattner가 주장하듯이, 이 나라들은 역사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자신들의 외교정책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브라질ㆍ인도 등 신흥 민주주의 국가들,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교정책의 우선순위에 두지 않아
예를 들면, 러시아가 크리미아를 합병하자, 유엔 총회에서 러시아의 행위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는데, 브라질과 인도 그리고 남아공은 기권했다. 이 나라들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제도 반대했다. 그리고 이 나라들은 국가가 인터넷을 규제하려고 하는 독재 정권을 편드는 경향이 있다.
설상가상으로, 신흥 민주주의 국가들은 북미와 서유럽 그리고 아시아 일부 국가 등 공고한 민주주의 국가들보다 역사적으로 훨씬 더 불안정하다. 게다가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멕시코, 그리고 필리핀에서 민주주의의 후퇴 징후뿐 아니라 터키에서 최근 민주주의의 퇴보는, 이들 중 몇 나라는 향후 수십 년 간에 ‘결함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가 되거나 아니면 명백한 권위주의적 통치체제로 되돌아 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나라들은 위축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힘을 보강하는 대신에, 독재 강대국들과의 제휴를 선택할지도 모른다.
현 민주주주의 국가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이전의 세계적 지위를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은 아마 헛된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민주주의 국가가 부와 힘과는 별 관련이 없고, 자신 내부의 도전적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 국가는 점점 더 매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지만 권위주의 국가의 국민들이 일단 상당한 정도의 생활수준을 누리기 된다면, 자유민주주의의 고무적인 원칙들은 권위주의 국가의 주민들에게 대단히 깊은 호소력을 가질 것이라는 사실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이란, 러시아,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처럼 큰 권위주의 국가들이 민주개혁을 단행한다면, 민주주의 국가의 전체 힘은 급격하게 향상될 것이다. 만약 중국이 그렇게 한다면, 권위주의 부활의 시대는 한 방에 끝장날 것이다.
민주주의가 글로벌 민주주의로 승화할 것인가, 아니면 특정 지역의 소수정치 체제로 전락할 것인가
그러나 이 말은 서구 자유민주주의가 세계를 지배했던 오랜 세기世紀가 영원히 끝장났다고 말하는 것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남아있는 유일한 문제는 이것이다. 민주주의가 확실하게 터 잡은 서구라는 한정된 지역을 지리적으로 뛰어넘어, 진정으로 세계적 민주주의 세기를 만들기 위한 조건을 창조해낼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가 기껏해야 경제적으로 인구人口상으로 쇠락해가는 세계의 한 구석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정부의 한 유형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끝)
※역자 주. 1)소프트 파워(soft power) : 정보과학이니 문화·예술 등이 행사하는 영향력. 군사력이나 경제제재 등 물리적으로 표현되는 힘인 하드 파워(hard power)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강제력보다는 매력을 통해, 명령이 아닌 자발적 동의에 의해 얻어지는 능력을 말한다. 문화의 세기인 21세기는 소프트 파워가 주도하는 시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두산백과). 2)세계적인 대학 순위 평가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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