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검찰로부터 출석 요구서를 받았다. 피의자로 끌려 다닌 지 10년 넘었다. 그래서 나를 법조인이라고 놀리는 사람도 있다. 취재를 하면서 법조인들을 많이 만난다. 검사·판사·변호사·수배자·전과자······. 그래서 행동반경이 판검사들과 겹친다. 밤에는 다른 얼굴을 한 비행 판검사들도 만난다.
판검사들은 골프를 많이 친다. 골프를 빼면 대화가 3분의 1로 줄어든다. 아무래도 골프 선수가 되려는 것 같다. 날씨가 좋아 붐비는 봄가을 골프장 부킹은 판검사를 통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하지만 자기 돈을 내고 필드에 나가는 판검사는 거의 없다.
판검사들은 룸살롱에 많이 간다. 노래를 열심히 부른다. 아무래도 가수가 되고픈 것 같다. 아직도 부서 회식을 룸살롱에서 하는 직업군은 판검사와 주가 조작을 하는 분들뿐이다. 하루 저녁에 월급만큼 술을 먹는 일은 쉽지 않다. 당연히 옆에는 사업하는 사장님이 꼭 앉아 있다.
판검사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계급이라고 생각한다. 판사들은 세상에 판사가 있고 일반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검사들은 세상에 판검사가 있고 일반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판사는 검사를 무시하고, 검사는 판사를 시기한다. 판검사 모두 승진에 목숨을 거는데 판사는 법복을 벗는 것을 두려워하고, 검사는 정치권으로 갈 궁리를 많이 한다.
사법고시에 붙어 판검사가 되면 일단 3급 공무원이 된다. 월급이 적지 않다. 하지만 만날 골프 치고 만날 룸살롱 갈 만큼 많지는 않다. 그들은 이게 불만인 듯하다. 내가 죽도록 공부해서 판검사가 됐는데 이 정도라니, 내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똑똑한데 이 정도라니,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어쨌든 그들은 스스로를 굉장히 특별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다. 그들이 암기를 잘해서 가장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것은 맞다. 그러나 내가 만나본 판검사 가운데 똑똑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고위직에 앉은 사람일수록 형편없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외고나 특목고 출신, 강남 출신 판검사들은 끔찍했다. 우리 판검사들은 암기 과목 공부만 몇 년씩 하다 보니 세상 물정에 어둡다. 그들에게 여행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조선일보만 읽지 말고 시사IN도 좀 읽으라고. 또 소설도 많이 읽으라고 권한다. 특히 연애소설을. 부족한 인성을 만회할 상상력과 공감능력이 절실하다. 어차피 법전은 적용하면 되는 것이고 소설을 좀 읽어서 ‘피고가 왜 그랬을까’에 대한 상상력을 키웠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때 1등이었는데 그때 20등 했던 친구보다 돈을 더 못 버는 것 따위로 고민할 게 아니라 말이다.”*
“미국의 검사는 우리 검사와 비교하면 휘두르는 권력 면에서 초라하고 오히려 우리의 경찰청에 해당하는 연방 수사국 FBI가 막강하다. 이민을 간 예전 아버지들은 법학 대학원에 진학하는 아들딸에게 한국식으로 무조건 판검사가 되라고 권하다가 검사의 약한 권력에 실망한다. 이런 검찰이 ‘권력의 시녀’라는 비아냥을 받는다. 공정하지 못하고 권력과 돈에 약하다는 것이다. 뻔한 사건에서 속이 들여다보이는 결정을 하고도 전혀 괘념치 않는다.”**
“대중은 오보의 처벌에 둔감하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언론사들이 자사의 오보를 감추는 경향과 오보를 너무 많이 봐온 탓이다. 『동아일보』는 1945년 12월 27일자 1면 기사에서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라고 보도했다.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미국이 조선의 독립을 주장한 반면 소련은 조선을 다시 식민지로 만들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오보였다. 훗날 역사는 신탁통치안을 제시한 쪽이 미국이었다고 기록한다. 우익 성향의 『동아일보』 기사 이후 한반도는 찬탁 대 반탁으로 갈라졌고, 미·소공동위원회의 실패를 초래했으며 한국전쟁과 분단으로 이어졌다.
편파와 왜곡 보도는 대표적인 오보 유형이다. 한국 언론은 5·16군사쿠데타와 유신 독재, 5·18광주민중항쟁 등 굵직한 사회적 사건마다 정부 권력 입장만 받아쓰며 오보를 냈다. 노동자에게 보장된 법적 권리를 주장하던 YH무역 여공들을 좌경세력으로 호도하고 파업은 불법으로 매도했다. 2005년 MBC <PD수첩>이 ‘황우석 신화와 난자 의혹’ 편을 내보냈을 때도 대다수 언론은 『사이언스』 논문에 대한 검증보다 황우석 측 입장을 대변하며 <PD수첩>을 비판했다.
시민들은 지금껏 권력의 부정부패에 눈감고 귀 닫으며 오보를 일삼아온 언론들이 수십 년간 별다른 처벌 없이 성장해온 과정을 보았다. 『보도의 진실, 진실의 오보』(1994)를 펴낸 김창룡 인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국은 오보의 자유가 있는 나라다. 왜곡·조작 등 오보를 아무리 내도 윤리적·사회적 책임을 추궁하거나 역사적 심판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가 오보에 둔감해진 이유다.”***
“프랭크 룬츠Frank Luntz라는 미국의 유명한 정치 홍보 전문가가 있습니다. 그는 줄리아니 뉴욕 시장, 뉴트 깅그리치 공화당 의원, 그리고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선거 전략가였습니다. 룬츠는 대중은 이성적이 아니라 매우 감성적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그는 대중의 감성을 잘 이용하면 충분히 그들을 현혹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의 ‘히트작’은 꽤 많습니다만 그중 백미는 역시 ‘사망세death tax’일 것입니다. 부시 행정부가 상속세율 인하를 추진하던 2003년, 룬츠는 부시 행정부에 상속세estate tax를 사망세death tax로 바꾸어 부르도록 권고했습니다.
상속세를 의미하는 ‘유산estate’이라는 단어는 ‘부유함’이라는 의미를 띠고 있는 반면 사망세는 이와는 전혀 다른 어감을 풍깁니다. 상속세는 7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80억 원이 넘는 자산을 상속하는 미국 최고 부유층에게만 과세하는 세금인데도 부시 행정부는 이 ‘명칭’을 사망세로 바꿈으로써 많은 미국 서민들이 “아니, 지금도 세금 내기 싫은데 죽으면서까지 세금을 내야 한단 말이냐?”하고 착각하게 만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의 극우 신문들이 창조한 용어 ‘세금 폭탄’도 참 잘 먹혔습니다. 덕분에 종합부동산세 대상자뿐만 아니라 달랑 집 한 채 가진 일반 서민들도 세금이 폭탄처럼 투하될까 노심초사했습니다.
한국 언론이 즐겨 쓰는 ‘국익’ ‘화합’ ‘안정’과 같은 애매모호한 추상적 단어에는 그들이 보호해 주고 싶은 사회 기득권의 이익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다원화된 이익사회입니다. 대기업, 중소기업, 자영업, 직장인의 이익이 모두 다르고, 또 그 안에서도 개별적 이익이 갈라집니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 어떤 집단은 혜택을 받고 어떤 계층은 거꾸로 불이익을 받습니다. 정부가 대기업의 법인세를 감해주고, 부자들의 종합부동산세를 깎아주면 나머지 사회 구성원들이 어떤 형태로든 그만큼의 세금을 더 내야 합니다. 한국 언론이 말하는 ‘국익’은 기실 신기루입니다. 우리는 현실의 매 순간 갈등하고 타협합니다. 그 과정에 등장하는 ‘국익’이란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포장하기 위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의 이미지를 선점해 자신의 이익을 포장하고 설득하는 것입니다.”****
“1984년 한국 시리즈는 역대 최고의 한국 시리즈 중 하나로 꼽힌다. 7차전의 숨 막히는 경기가 이어졌고, 끝내 혼자 4승을 거둔 최동원의 무쇠팔 덕에 자이언츠는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최동원은 ‘한국프로야구협회’ 활동을 보면서 개인적 교감을 넘어 사회적 유대감이 형성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스타급이 아닌 선수들의 인권과 복지는 취약하다. 당시 최고 대우를 받고 있던 최동원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총대’를 멨다. 최동원이 선수협을 조직할 때 법률자문을 문재인 의원이 맡았음은 이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후 최동원은 선수협 주동자라는 낙인이 찍혀 전 구단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1988년 팀에서 방출당해 라이온즈로 갔다가 1990년 반강제로 은퇴했다.
이후 최동원은 잠시 정치의 길을 걷는다. 만약 그가 고교 선배 김영삼을 따라 1990년 ‘3당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주자유당에 합류했더라면 국회의원이건 지방의원이건 떼어 놓은 당상이었을 터인데, 이를 거부하고 노무현, 김정길 등의 ‘꼬마 민주당’을 선택해 결국 낙선한다. 낙선 후 TV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를 보았을 때는 굴욕감을 느꼈다. ‘영웅’이 ‘광대’가 되도록 만든 현실에 화가 났다. 종국에는 2001년 한화 야구단의 코치로 복귀해 마지막 야구인생을 불태웠다. 그리고 이제는 자이언츠의 상징이자 구단 최초 영구결번(11번)의 주인공으로 영원한 전설이 되어 동료 선후배는 물론 팬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최동원 다음으로 박정태 선수를 좋아한다. 박정태는 특유의 ‘흔들 타법’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많은 자이언츠 팬들은 그를 ‘악바리 정신’의 대명사로 기억한다. 그의 끈질김은 패색 짙은 경기를 끝내 뒤집어놓곤 했다. 그는 최동원같이 찬란히 빛나는 스타는 아니었다. 최동원은 행군 대열 맨 앞에 서는 선수였다. 자기 앞에는 아무도 없는 길을 깃발 들고 걸어가는 향도와 같은 존재였다. 반면 박정태는 늘 선수들과 함께 길을 걸었다. 때로는 격려를, 더러는 질책을 하면서 팀을 이끌었다. 그가 최고의 2루수이자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리더로 인정받은 것은 무엇보다 포기할 줄 모르는 열정 때문이었다. 그는 늘 동료들과 함께하며 끈질긴 근성, 타오르는 투지, 무한대의 성실로 팀을 단결시켜 결국 준우승까지 올려놓았다.
세상을 살며 난관에 부딪치거나 좌절할 때 나는 자이언츠를 떠올린다. 정면대결을 피하지 않던 집념의 승부사 최동원, 나아가 부당한 세상과 싸움을 치렀던 최동원은 나에게 묻는다. ‘당신이 걷는 길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공격이나 비난을 받고 고비를 겪을 때 힘들다고 주저앉으려 하지 않는가, 조금 힘들다고 긴 호흡을 잃은 채 조급하게 대응하고 있지는 않은가’라고.
나는 풍진세속風塵世俗에 살고 있으며 탐진치貪嗔癡, 즉 탐냄, 성냄, 어리석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버리고, 처염상정(處染常淨. 더러운 곳에 살지만 항상 깨끗함을 유지한다)의 길을 걷고 있다고 전혀 말할 수 없다. 다만 돈이나 권력을 우선순위에 놓고 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당시 최고의 투수로 만족하지 않고 동료 선수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힘든 싸움을 선도하면서 고독한 스포츠인의 길을 걸었던 최동원은 나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다. 또한 박정태의 ‘악바리 정신’은 내가 힘든 상황에 처하고 어려운 과제를 맡아도,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 요가 베라Lawrence peter "Yogi" Berra의 명언인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냐It ain't over till it's over”를 되뇌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도록 해주었다.”*****
*주진우,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 주기자』(푸른숲, 2012), 32~34쪽. **신경민,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도서출판 참나무, 2009), 134쪽. ***이정환·김유리·정철운 외, 『저널리즘의 미래』(인물과사상사, 2016), 225~226쪽. ****최경영, 『9시의 거짓말』(시사IN북, 2010), 25~29쪽. *****조국,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다산북스, 2017), 250~253쪽.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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