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이런 것인가? (7)얼굴을 찡그려도 아름다운 여인(1/2)

조송원 승인 2020.10.23 10:09 | 최종 수정 2020.10.23 10:53 의견 0

얼굴을 찡그려도 아름답게 보이는 여인이 있겠지. 보통 천재는 악필이라고 한다. 그러나 악필에 천재성이 깃들여 있는 건 아니다. 아침이라 해가 뜨는 게 아니다. 해가 뜨니 아침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적으로 ‘원인과 결과’를 뒤바꿔 판단하는 버릇에 꽤 익숙하다. ‘효빈(效顰)’이란 고사성어도 생겼다. 그 출처는 『장자』의 「천운天運」 편이다.

“옛날 서시西施가 마을에 살 때, 가슴 병이 있어 얼굴을 자주 찡그렸다. 그 마을의 추녀가 그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도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찡그리고 다녔다. 마을의 부자들은 그것을 보자, 문을 걸어 잠그고 문밖출입을 하지 않았다. 또 가난한 사람들은 그것을 보자 처자식의 손을 끌고 마을을 떠나 달아나 버렸다. 추녀는 서시의 찡그린 모습이 아름다운 것만 알았지, 그 까닭은 몰랐던 것이다.”

서시는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여인으로, 호사가들은 양귀비에 버금가는 미인이라고들 한다. ‘3대 미인’이니 ‘4대 미인’이니 하는 호들갑은 사람들의 호사벽好事癖의 소치일 뿐이다.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서시가 미모는 출중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인 모양이다.

서시의 얼굴 찡그림(顰)을 본받은(效) 마을의 추녀는 참 억울하게 되었다. 잘 생기고 못 생김이 어디 자신의 탓인가. 못 생긴 것도 서러운데, 만세 후까지 어리석은 여인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자신도 예뻐 보이려고 얼굴 좀 찡그렸다고 마을 사람들이 문밖출입도 안 하고, 심지어 동네를 떠나버렸다니,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본디 장자는 과장법의 대가이다. ‘붕鵬이라는 새는 등의 넓이가 몇 천리나 된다. 큰 참죽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8천년을 봄으로 삼고, 8천년을 가을을 삼는다’ 고 하는 식이다. 상식에 안주하는 ‘정신적 나태’를 일깨우기 위한 언어적 장치이겠지.

생각해 볼 일은 얼굴을 찡그리고 다니는 추녀를 비웃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추녀보다 나은 구석이 있는가?

서시 [He Dazi (赫達資) / Public domain]
서시 [He Dazi (赫達資) / Public domain]

뛰어난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이 선전하는 나이키 운동화, 조던의 운동 능력과 나이키 운동화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가. 손흥민이 선전하는 그 무엇도 손흥민의 축구 능력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늘씬한, 매력 넘치는 배우 전지현이 BBQ인가 뭔가 하는 통닭 선전 팜플렛을 본 적이 있다. 전지현이 맛있게 먹는 모습에 적어도 전지현 팬들은 BBQ 통닭에 더 끌릴 성싶다. 하지만 그들은 전지현이 저렇게 통닭을 즐겨먹는다면, 저 몸매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의심한 적이 있을까?

사람은 사람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이다. 신神과 짐승의 그 어중간에 있는 사람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대학생들은 잘 생긴 교수가 가르치기도 잘한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교사들은 얼굴이 예쁜 여학생들이 교칙을 더 잘 지키리라는 선입견을 갖기도 한다. 판사들도 품위 있게 차려입은 우아한 여성의 증언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강하다. 유권자들은 잘 생긴 정치인이 정치도 더 잘할 것이라고 예단하기도 한다. 이웃 사람들은 한미한 출신의 수재보다 명문가 출신 둔재의 능력이 더 뛰어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기도 한다.

사람인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한 측면에서 긍정적인 느낌을 받으면 그것을 자동적으로 일반화해서, 그 사람의 다른 속성들까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후광효과(Halo effect)’라 한다. 아마 누구든 이 후광효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조송원

마이클 조던에게, 손흥민에게, 전지현에게 거액을 들여 상품 마케팅을 하는 기업의 영업 전략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끌려 그들이 광고하는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의 행위는 지극히 비합리적이다. ‘이미지’와 ‘본질’은 애초 그 번지수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던이나 손흥민이나 전지현에게 나는 무덤덤해 하기에, 그들은 내게 별 호소력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비합리적 행위에서 벗어나 있는가?

육체적 피로가 어느 한계를 넘어, 정신을 집중하기가 곤란한데도 잠을 자기에는 뭔가 아쉬울 때, <시네폭스>를 통해 영화를 보곤 한다. 기억에 꽂히는 배우가 있다.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의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퐁네프의 연인들>의 줄리엣 비노쉬, <그해 여름>/<국가대표2>/<나의 결혼 원정기>/<상류사회>의 수애다.

이들의 진면목을 나는 모른다. 그냥 영화에 나오는 그 이미지가 참 좋다. 목소리까지 매력적으로 들린다. 모르면 몰라도 수애는 여성복 모델인 것 같다. 수애가 남성용품 모델로 나온다면, 나도 기꺼이 그 상품을 구매하겠다.(계속)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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