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난 돌과 두루춘풍

조송원 승인 2021.05.01 16:58 | 최종 수정 2021.05.04 07:56 의견 0

#1. 모텔 5층 복도에서 두 쌍의 남녀가 우연히 눈을 마주쳤다. 눈이 휘둥그러졌다. ‘남자의 품안에 다소곳이 안겨 있는 여자는 바로 내 아내 아닌가!’ ‘여자의 손을 꼭 잡은 저치는 내 남편임이 분명하다’ 둘의 눈에는 쌍심지가 돋고, 이내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시끌벅적 와중에 모텔 주인이 달려왔다. 그리고 내뱉는 말, “단골끼리 왜 이러십니까?”

#2. 송나라에 한 부자가 있었다. 비가 내려 담장이 무너졌다. 그 아들이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 반드시 도둑이 들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이웃집 노인도 역시 같은 말을 하였다. 밤이 되어 과연 그들 말대로 도둑이 들어 재물을 크게 잃어버렸다. 부자는 아들을 대단히 지혜롭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웃집 노인은 도둑으로 의심하였다.(『한비자』「세난편」)

#3.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없다.” “그러면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그 역시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마을의 선한 사람(善人)들이 좋아하고, 마을의 선하지 못한 사람(不善人)들이 미워하는 사람만 못하다.”(『논어』「자로편」)

존경까지는 아니나 존중했던 띠동갑인 선배가 있다. 그는 선비가문의 장손이란 자긍심이 만만찮다. 그 선배의 동갑인 이장이 동네일에서 사적 착복을 했다. 선배는 안면을 몰수하고 동갑에게서 이장 직을 떼어냈다. 사적 인정을 넘어 공적 정의를 바로세움에는 높은 기개가 필요하다. 이런 일을 목도한 후로는 스쳐 지나는 길이라도 반드시 목례를 했다.

홍성모 화백 - 나의 고향은 부안입니다
홍성모 화백 - '나의 고향은 부안입니다' 중

마을 청소를 하고 난 후 마을 쉼터에서 국수를 같이 먹은 적이 있다. 면장까지 찾아와 수고에 감사해 했다. 면장 일행이 가고 난 후 자연스레 역임한 면장들에 대한 품평회 비슷한 대화가 열렸다. 고향 면 후배인 A와 B가 무대에 올려졌다. 이러쿵저러쿵

누구나 한마디 거들며 갑론을 설하는 중에, 선배가 싹둑 무를 잘랐다. “A는 틀렸고, B가 좋은 면장이다.”

놀랐다. 내심 ‘융통성 있게 원칙적’인 A를 ‘매우 정치적’인 B보다 높게 치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잣대가 뭐일까, 귀를 쫑긋했다. “내 집 앞 고랑 공사를 A는 예산이 없다고 안 해줬어. B가 와서 해 주더만. 예산이 없다고? 다른 큰 공사에서 돈을 좀 떼 오면 될 일을.” 한 번 더 놀랐다. 그 후로는 그 선배를 마주치면, 일부러 고개를 외로 꼬아버렸다.

무골호인인 동네 후배가 있다. 현직 이장이다. 그는 그 선배와 선배의 동갑과 나, 셋 모두를 좋아한다. 누구에게나 싫은 말 하는 걸 본 기억이 없다. 뒷공론은 어떻거나, 대면해서는 상대의 칭찬거리를 찾아, 들어 좋아할 만한 말만 한다. 재주인지 천품인지 계략인지 하여튼 기막힌 처세술의 소유자다.

조송원
조송원

모텔 주인은 싸움의 원인을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남편과 아내의 안팎 쌍불륜에 대한 가치판단도 논외로 친다. 오로지 자기 모텔의 단골임이 중요할 뿐이다. 그처럼 자기 이익에 애바르게 살면 인생이 좀 즐거우려나? 누구에게나 좋은 점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기준도 없이 ‘좋은 말’을 듣기 위해 무조건 ‘좋은 말’만을 해야 할 정도로 세상사가 간단한가. 이처럼 두루뭉술하게 처신하면 정은 좀 덜 맞으려나?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고 하워드 진이 말했던가. 이미 사태가 어떤 치명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중립을 지킨다면 이는 그 방향을 지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선인善人과 불선인不善人이 싸우는 데에서 중립을 지킴은 어떤 의미인가. 차라리 기회주의적 편당偏黨일 뿐이다.

어쨌건 세상은 두루춘풍이 미만彌滿해 좀은 부드럽고, 모난 돌이 더러는 존재하기에 덜 타락하는 것이리라.

<작가,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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