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4)누구는 떠나고, 누구는 남는다 ③나는 남았다

조송원 승인 2021.10.04 21:42 | 최종 수정 2021.10.06 20:26 의견 0

“암입니다. 위암 초기.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아보시지요.”

애가 탔다. 건강진단을 받은 지 1주일이 넘은 까닭이다. 면장 했던 친구가 면사무소의 ‘자원재활용 도우미’를 알선해 줬다. 1주일에 5일, 하루 4시간이다. 기간은 4개월, 예산 범위 내에서 연장될 수도 있다. 시급時給은 최저임금이나, 토·일 외의 공휴일은 유급휴가로 계산해 준다. 군청에서 시행하는 ‘일자리 창출’의 일환이다. 위상이 날로 높아가는 선진 대한민국의 복지정책을 실감한다.

요즘은 단기간 취업이라도 ‘채용신체검사서’가 필요하다. 면사무소 담당 주무관이 신체검사서를 5월말까지 제출하라고 했다. 별도로 검사를 받으면 비용이 들 테니, 정기건강검진으로 가름할 수 있다는 안내도 덧붙였다. 하여 하동읍내 중앙의원에 가서 정기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런데 1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 위 내시경검사 중에 적출한 조직을 타 의료기관에 조직검사를 의뢰했다. 그 결과를 받아보려면 2주일 정도 걸린다고는 했다. 의원 측 말대로라면 5월을 넘긴다.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작은 일로 담당 주무관의 업무에 폐를 끼친다면 추천한 친구의 면이 서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행히 5월말께 의원에서 ‘조직검사서’를 회부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내시경 검사 전문의가 오후에 학회관계로 출장을 가니 오전 중에 내원해주십사, 부탁을 했다. ‘정기검진 결과서만 주면 되지, 굳이 의사가 있어야 하는가’고 의아했다. 건강진단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정기건강검진 절차는 이런 모양이다, 하고 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의원에 가서 차례를 기다렸다.

진료실에 들어가 의자에 앉자, 의사는 간호사에게 진료실 문을 닫으라고 했다. 여느 환자의 경우와는 다른 조치이다. 그리고는 서류를 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암 선고’를 했다. “몸에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증상이라는 것도 없고요.” “암 초기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습니다. 자각증상이 없다는 게 더 무서운 겁니다.” 별스런 감정의 동요는 없었다. 무덤덤했다.

건강검진 종합소견은 ‘정상B’이다. 의심질환과 유질환은 ‘해당사항 없음’이다. 심뇌혈관질환 위험평가에서 심뇌혈관 나이는 59세로 나온다. 내 생물학적 나이보다 4년 더 젊은 것이다. 다만 절주와 금연은 필요하단다. 그리고 건강검진 결과통보서 마지막 페이지에 ‘위내시경 및 조직검사에서 위암이 확인되었습니다. 치료를 위해 빠른 시간 내에 의료기관을 방문하시어 진료 상담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라고 권고하고 있다.

경상대 병원에 전화를 했다.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자 우선 내시경검사와 CT 촬영을 해야 한다고 했다. 바로 다음날로 예약을 했다. 일반 다른 용무를 보듯 새벽 기차를 타고 진주 경상대병원으로 갔다. 하동 중앙의원에서 준 조직검사 CD를 제출하고, 검사용 피를 뽑고, 내시경검사와 CT를 촬영했다. 결과는 1주일 후에 나온다고 했다.

“위암 맞습니다. 그렇지만 위암을 이렇게 초기에 발견한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건강보험공단에 중증특례환자로 등록했습니다. 공단에서 전화가 오면 받으시고, 수술 수속을 밟으시지요.” 경상대 소화기내과 교수는 차분히 말했다. 진료실을 나와 수술 날짜를 잡는 데스크의 간호사에게 물었다. “얼마나 입원해야 합니까?” “환자분은 운이 좋으시네요. 이 정도 위암이면 수술이 아니라 ‘시술’입니다. 1주일이면 충분합니다.”

월요일에 입원해 화요일에 ‘내시경 위점막하 절제술’을 받고, 금요일까지 가료加療를 했다. 퇴원 직전 교수를 만났다. “이 화면을 보다시피, 악성 종양은 깨끗이 제거되었습니다. 환자의 몸 상태도 정상이구요. 이제 6개월에 한 번씩 추적 검사를 받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나면 저를 볼 일이 없을 겁니다.”

[사진=조송원]

털레털레 가방 하나 어깨에 메고 시내버스로 진주역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세워둔 동네를 지나는 횡천역으로 가는 기차는 3시간 후에 온다. 역 광장 공원에 앉았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악성 종양 발견, 입원, 시술, 퇴원을 일상생활의 연장이듯 어떻게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 기간 동안 평심을 놓친 적이 없다. 왜?

우선은 암에 대한 이해이다. 『의사는 수술 받지 않는다』는 책에서 정형외과 전문의 김현정은, “암 환자가 증가하는데, 그 이유는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 때문이다. 원래 우리 몸속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크기가 작은 암들이 생기고 또 저절로 없어지기를 반복하는데, 우리 몸에서 면역력이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덕분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고 말한다. 그리고 의학 전문 유튜브에서 암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나처럼 아무 증상 없는 초기 위암에서 진행성 암(2기 이상)으로 전이되는 데 40개월이 걸린다. 3년 후에나 내 자신이 자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행히 나는 지극히 초기에 악성 종양을 제거했다. 나는 내 몸과 내 몸의 면역력을 믿는다.

조송원
조송원

다음으로는 대한민국 국민건강보험의 위력 덕분이다. 위암을 포함한 5대 암의 경우, 치료비 전체를 건강보험공단이 95% 책임져준다. 위 일부를 절제를 한다 해도 1000만 원도 들지 않는다. 개인부담은 50만원 미만이다. 물론 내시경검사나 CT는 비급여항목이고, 부대비용이 만만찮다. 그렇지만 건강보험이 든든한 경제적 방패막이다. 고마움이 사무친다.

근본적으로는 사생관이다. 탄생이 내 의지와 무관했듯 사멸 또한 내 바람과 의지와 무관하다. 자연의 변화와 진화에는 목적이 없다. 나는 의지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의지와 목적을 가진 한 개체일 뿐, 자연의 지극히 작은 한 부분일 뿐이다. 자연은 나란 존재에 무관심하다. 하여 내 사멸은 단지 ‘무화無化’일 뿐이다. 자연은 내가 존재하든 무로 돌아가든, 상관치 않고 그냥 자연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어찌 한 인간으로서 인간적 애환이 없으리오. 남아 있음은 애당초 떠남을 잉태하고 있다. 떠남에 자유로우려면 주위에 애집愛執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 적어도 노욕老慾으로 인한 노추老醜를 보여서야 되겠는가. 너른 진주역 공원에 덩그마니 혼자 앉아 있다. 좀은 쓸쓸하지만, 이 또한 자유로움이 아니겠는가!

<작가, 본지 편집위원>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